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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Apr 13. 2024

곁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가을방학(2020), <나미브>

세상에 꼭 어울리는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고, 심지어 어울릴 수 없는 관계에서도 사랑은 시작된다. 물론 그 결말은 대부분 비극으로 수렴할 것이다. 사랑의 당사자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결말을 안다고 멈출 수 있다면 그게 사랑이겠는가. 그만큼 사랑은 무모하고, 그렇기에 또한 순수하다.

     

이런 사랑을 그린 노래가 있다. 보편적이지는 않아도 세상 어딘가 분명 존재할 서글픈 사랑을. 가을방학의 네 번째 앨범에 실린 <나미브>라는 곡이다. 나미브는 아프리카 남서부의 나미비아 해변에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해안 사막으로, 바다와 사막이라는 극단적인 지형이 맞닿아 있다. 나미브는 원주민어로 ‘아무것도 없는 광대한 땅’을 뜻한다.

      

이 곡에서 바다와 사막은 어디에도 자기편이 없는, 고독한 두 사람을 상징한다. 수억 만 개의 모래알만큼이나 황량한 사막. 그리고 수심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외로움을 간직한 바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은 점점 커지다가 급기야 서로 만난다. 이 곡의 가사는 여기서 시작된다. 가사의 화자는 뜻하지 않은 둘의 만남을 사랑으로 은유한다.

      

바다가 사막에게 묻는다. 나는 너에게 싹을 틔워주지도 못하는데, 왜 자꾸 내게 오냐고. 내가 가진 건 소금물뿐이라 네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줄 수 없다고. 그러자 사막이 답한다. 이건 네가 그렇듯 나도 내 의지대로 된 일이 아니라고. 그저 물 흐르듯, 마음 가는 대로 따라왔더니 어느새 네게 닿았을 뿐이라고.

     

그렇게 한없이 외로웠던 둘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하나가 된다. 비록 서로 안을 때는 다른 모든 세상을 등져야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토록 확실한 나의 편이 있으니까. 설사 모래 위에 꽃 한 송이 틔우지 못한다 해도, 모든 것이 바다의 심연 속으로 침잠한다 해도, 우린 서로의 편이니까 괜찮다.

     

이 둘은 결국 행복할 수 있을까. 가사를 쓴 정바비는 작가노트에서 이 곡이 열린 결말이라고 했다. 즉 둘이 어찌 될지는 듣는 이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상상해본다. 확실한 서로의 편이라 믿었던 이 둘은 끝내 헤어질 것이라고. 물리적으로는 곁에 있지만, 마음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관계로 남을 것이라고. 각자의 세상을 등진 채 서로 안을 때 빛나는 별들이 잠시 위로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가사도 묘사하듯, 흐드러지게 붉던 정원은 한낱 찰나의 꿈일 수밖에 없다. 꿈은 늘 그렇듯 익숙하게 산산이 부서진다.

     

서로 어울리지 않아도 사랑은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냉엄한 현실까지 극복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리하여 한없이 고독하고 외로웠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거기까지다. 나미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이름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으로 돌아갈 것이다.


네 품에 안겨 있으면 내 귓가에는 파도가 치네
이토록 가까운데 우리 사이 부는 아득한 바람
제때 울 줄을 몰랐기에 혼나곤 하던 아이의 맘속
사막은 커지다 못해 급기야 바다에 이르렀네

넌 묻지 "왜 또 자꾸만 싹도 틔워줄지 모를 내게로 와"
난 웃지 "너와 마찬가지야 제멋대로 흘러넘쳐 온 것뿐"
수억만 개 내 모래알들이 네 바다에 닿으면
답장 없는 저 밤하늘에 잠겨있던 모든 별들이
산호초처럼 깨어났으면

난 묻지 "왜 안을 때면 다른 모든 세상과 등지게 될까"
넌 웃지 "그래도 그 덕분에 이토록 확실한 네 편이 있어"
수억만 번 네 파도 소리가 내 사막을 적시고
두 번 다시 들추기 싫어 잠가놨던 설레임들이
낯선 꽃으로 피어나

흐드러지게 붉던 정원은 한낱 찰나의 꿈이었던가
익숙해 또 한 번 산산이 부서져 낱낱이 흩어져
수억만 개로

내, 내 모래알들이 네 바다를 채우면
답장 없는 저 밤하늘에 잠겨있던 모든 별들이
산호초처럼 빛을 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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