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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Mar 17. 2024

프로포즈할 때 어울리는 곡들

봄이 왔구나. 올해 들어 처음 그렇게 생각했다. 무려 3월 중순을 넘기고 봄을 실감하다니. 개강과 입학이 그렇듯 계절도 날짜를 기준으로 바뀌면 좋겠다. “3.1.자로 봄을 시행함” 이러면 얼마나 깔끔한가? 근데 날짜는 진즉에 봄인데 날씨는 왜 그리 추운지. 무정한 회사는 3월이라고 칼같이 난방을 끊지 않나. 꽃샘추위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단어 중 하나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봄이 오긴 왔다. 한껏 부드러워진 날씨를 실감하며 플레이리스트도 바꿨다. 봄은 그저 개구리만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계절이 아니다.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던 연애 세포도 되살아나는 시기다. 그러니 음악도 거기에 맞게 들어야 한다. 겨우내 처박아 뒀던 곡들을 꺼내어 보니 공통점이 느껴졌다. 이거, 죄다 프로포즈송이잖아? 하긴 봄처럼 프로포즈하기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 물론 나는 프로포즈할 일이 더 이상 없다는 건 함정이지만. 그래도 음악만큼은 즐기고 싶다. 브런치에도 올려 본다. 어쩐지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나처럼 프로포즈를 할 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 같지만(…).



     

정준일, <너에게>

     

만약 내가 프로포즈 컨설팅(?)을 한다면, 클라이언트에게 이 곡을 추천하겠다. 그만큼 이 곡은 프로포즈에 최적화된 메시지를 갖고 있다. 보통 프로포즈송이라고 하면, “평생 사랑하고 행복하자♥” 류의 상투적인 가사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커플도 그저 평탄하게만 사랑하지 않는다. 서로 좋아해도 생각보다 많은 위기와 주위의 겐세이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걸 못 이기고 결국 헤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프로포즈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 굴곡진 시간을 잘 견뎌내고, 이제야 너에게 청혼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곡은 그런 아프고 복잡한 마음을 담담한 용기로 승화해서 표현했다.

     

정준일은 한때 포스트 성시경으로 꼽힐 만큼 발라드의 기대주였다. 실제로 잘할 때는 대단했지만, 항상 그 폼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2015년 나온 이 곡만 들어봐도 그가 상당한 능력의 싱어송라이터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풍부한 감성을 언젠가 그의 앨범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태양보다 뜨겁게
저 달보다 따뜻하게
별보다 더 환하게
너의 날들을 비춰줄게
끝도 없는 푸른 지평선
달리고 달려
우리 처음 널 만났던 때로
약속했던 그곳에서 꼭 만나자

   

심현보, <사랑은 그런 것>

    

내겐 프로포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다. 왜냐하면, 10년 전 지금의 아내에게 프로포즈할 때 이 곡을 써먹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연은 이렇다. 당시 나는 2주에 걸쳐 프로포즈를 준비했다. 풍선, 초, 인형 등의 장식품을 사고, 반지와 장미꽃 100송이와 수제 케이크도 주문한 뒤, 대망의 디데이에 L호텔 스위트룸도 예약했다. 서울에 있던 구 여친 현 아내는 그때까지 한 번도 대전에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번 놀러 오라고 살살 꼬셨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이걸로 사전 작업은 끝.

     

당일에는 반차를 내고 일찌감치 세팅에 착수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도우미를 해줄 후배도 섭외했다. 그때만 해도 LED 촛불이 없었다. 그러니 여친과 방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 많은 초들을 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후배가 이걸 해주기로 한 거다. 그 착한 후배와 나는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여친이 대전역에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그날따라 여친의 퇴근이 늦은 것이다. 아놔 그렇게 10분만 일찍 나오라고 했는데!! 금요일 퇴근 시간 서울의 혼잡함을 알만한 사람은 알 거다. 여친은 결국 KTX를 놓쳤다. 그리고 피곤한 데다 기분도 별로니 오늘 안 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구 여친 현 아내는 지금은 사회화가 많이 됐지만, 그때만 해도 수틀리면 “나 안 해”를 남발하던 굉장한 시절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나도 비장의 카드인 “그럼 니 맘대로 해”를 시전했겠으나, 그날은 그럴 수 없었다.

      

무조건 달래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스무디킹 기프티콘을 보냈다. 내가 다시 표를 끊을 테니, 이거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그리고 미친 듯이 광클을 했다. 금요일 퇴근 시간 KTX 표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역시 알만한 사람은 알 거다. 거짓말 좀 보태서 김동률 콘서트 티켓팅보다 빡셌다. 그러다 운 좋게 한 장이 얻어걸렸다! 남친의 이런 정성을 긍휼히 여긴 여친은 (그보다는 스무디킹이 맛있어서였기 때문인 것 같기도) 마음을 바꿔서 기차를 탔다.

     

어찌어찌 계획대로 호텔방에 같이 들어섰고, 그 다음은…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여친은 눈물을 흘리다 못해 통곡할 지경이었다. 그 절정의 순간에 내가 튼 것이 바로 이 곡을 BGM으로 만든 영상이었다. 그동안 함께 찍은 사진들과 편지글로 만든.

      

결국 그렇게 나는 결혼에 성공했다. 이 곡은 그 험난했던 프로포즈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남았다. 그래서 아직도 이 곡을 들으면, 그날의 복잡했던 감정(당황, 빡침, 다행…)이 파도처럼 려든다.


사랑이란 그런 것 그냥 좋은 것
좋아할 이유가 날마다 점점 늘어가는 것
너라서 참 고맙고 너라서 행복한
사랑은 그런 것     


윤종신, <그대 없이는 못 살아(spring ver.)>

     

이 곡에도 개인적인 사연이 있다. 원래 나는 이 곡을 결혼식 때 셀프 축가로 부르려 했다. 가사도 축가로 딱 맞고, 무엇보다 부르기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아서… 근데 결혼식을 한 달인가 앞두고 변수가 생겼다. 우리 커플에게는 아이돌(ㅋㅋㅋ)이나 마찬가지인 김동률이 신보를 낸 것이다. 김동률 아재가 얼마나 앨범을 띄엄띄엄 내는지, 역시 알만한 사람은 알 거다. 그 앨범에 수록된 <내 사람>이란 곡이 참 좋았다. 여친과 나는 매일 같이 <내 사람>을 들었고, 결국 축가를 그 곡으로 바꿨다. 그리고 결과는 대폭망이었다(그 참상은 이 글을 참조하시길).

     

뮤지션 윤종신의 가장 뛰어난 점은 작사라고 생각한다. 그는 문장미가 뛰어나거나 세련된 가사를 쓰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필치는 진솔하고 진정성이 있다. 이 곡도 그렇다. 생활 밀착형 프로포즈송이라고나 할까? 한 편의 시처럼 멋들어지진 않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여자를 위해 평생 노력할 남자의 우직함이 느껴진다.


난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멀리서 내 지친 발걸음을 보아도
모른 척 수다로 가려주는 그대란 사람
기어코 행복하게 해준다


가을방학, <이름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프로포즈송이 꼭 발라드일 필요는 없다. 쌍큼발랄한 모던록도 프로포즈와 잘 어울린다. 이 곡이 딱 그렇다. 제목부터 깜찍하고 창의적이다. 통통 튀는 리듬에 흥겨운 어쿠스틱 반주가 더해지고, 거기에 청아한 계피의 목소리까지 살짝쿵 얹어진다. 그렇게 듣다 보면 노래가 너무 예뻐서 미소가 지어진다.

     

실제로 이 곡은 가을방학의 정바비가 계피의 결혼 선물로 만들었다고 한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표현했다. 계피의 남편은 인디밴드 전기뱀장어의 기타리스트 김예슬인데, 이름이 좀 여성스럽다. 이 점에 착안해서 이런 제목이 나왔다고 한다. 가사도 어쩜 이렇게 맑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정바비가 인성은 쓰레기일지 몰라도, 작사가로서 필력만큼은 인정 안 할 수 없다. 이런 것도 어쩌면 악마의 재능일지도.


그댄 절대 변하거나 하지 마요
내가 흔들릴 때는 꼭 안아줘요
이렇게 누군갈 좋아하게 되는
행운은 드무니까요     


김동률, <동행>

    

아마도 프로포즈송의 끝판왕, 또는 피날레가 아닐까 싶다. 연인에게 고백하는 내용은 앞에 소개한 곡들과 같다. 근데 누가 김동률 아니랄까봐,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참으로 진지하다. 김동률 아재의 시그니쳐인 오케스트라 편곡과 합창단도 그렇고, 인생을 관통하는 듯한 진중한 가사도 그렇다. ‘동행’이라는 간단한 제목에 이렇게 음악적, 철학적으로 묵직한 의미를 실어낼 수 있는 가수는 그밖에 없을 것이다.

     

오래전 갔던 그의 콘서트가 기억난다. 마지막 순서가 바로 이 곡이었다. 그런데 곡이 한창 클라이맥스에 오를 때, 세상에 그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김동률이 고개를 푹 숙이고 울먹이는 것을 봤다. 자신의 음악과 팬들과 함께 하는 그 순간이 울컥했나보다(아니면 노래의 주인공인 전 여친이 생각났을지도;;). 아무튼 저 양반도 사람이구나 하는 걸 깨달은 귀한 장면이었다. 워낙 좋아하는 곡이지만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봤다. 정말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만약 노래 잘하는 분이라면, 여친이나 아내를 위해 불러보셨으면 한다. 폭풍 감동을 장담할 수 있다.


언젠가 무엇이 우릴 또 멈추게 하고
가던 길 되돌아서 헤매이게 하여도
묵묵히 함께 하는 마음이 다 모이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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