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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un 09. 2024

제발 물리학도면 칼스버그 맥주 좀 마십시다

축구에 제한맨이라는 드립이 있다. “제발 한국인이면 맨유 좀 응원합시다”의 줄임말로, 박지성이 한창 맨유에서 뛸 때 해외축구 팬덤에서 유행했었다. 그러니까 한국인은 마땅히 한국인 선수가 뛰는 팀을 응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처음 쓰일 때는 진지했으나, 그 논리가 워낙 무지성이라… 역으로 국뽕 팬을 까는 조롱의 밈이 되어버렸다(야구 버전으로 국저스가 있다). 그만큼 박지성과 맨유의 위상이 높아서 가능했던 드립이다. 맨유는 요즘 한국 국대한테도 지겠다는 소리를 듣는 동네북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맨시티 따위는 나댈 수도 없는 세계 최강이었다.

제한맨 전설의 시작... 마지막 두 번째 줄에 "논리 시망이네요"가 킬포. 이때부터 이미 폭풍 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물리학에서도 제한맨의 바리에이션이 가능하다. 바로 제물칼이다. “제발 물리학도면 칼스버그 맥주 좀 마십시다.” 칼스버그는 덴마크의 그 맥주회사 맞다. 2023년 맥주업계 매출액 기준 세계 6위다. 그런 기업이 물리학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근데 칼스버그면 맨유가 아니라 리버풀이 더 맞는 비유 아닌가)

     

칼스버그는 자연과학을 비롯한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을 운영한다. 창업주인 J.C. 야콥센은 사업가이면서 과학 덕후이기도 했다. 그래서 덕업일치의 로망에 따라 1876년에 칼스버그 재단을 설립했다. 1876년이면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 자본주의의 시대였다. 자본가 타도를 부르짖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출간이 불과 9년 전이었다. 당연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니 ESG 경영이니 하는 개념은 있지도 않았다. 그런 때에 기업의 이윤을 떼어내 과학연구에 지원한다는 발상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 칼스버그 기업 내규는 매년 창출하는 이윤의 일정 비율을 재단으로 이전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니 재단의 재정이 탄탄할 수밖에 없고, “올해는 재단 사정으로 인해 지원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150년 가까이 수많은 연구과제와 사업들을 지원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닐스 보어는 칼스버그 재단의 지원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과학자다. 닐스 보어가 누구인가. 상보성 원리로 코펜하겐 해석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이어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며, 그 아인슈타인과 세기의 논쟁을 벌인 양자역학의 조상님 아닌가.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함의에 대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일갈하자, 보어가 “신이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마라”라고 받아친 것은, 그야말로 고수들의 일합이었다. 이런 보어와 칼스버그의 인연은 꽤 깊다. 1911년 박사학위를 받은 보어는 칼스버그의 지원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으로 갔다. 그러니까 박사후연수(포닥)를 한 셈인데, 그곳에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설립한 캐번디시 연구소가 있었다. 보어는 여기서 노벨상 수상 업적인 새로운 원자 모형에 대한 이론을 구체화했다(포닥이 한 일치고는 엄청나다).

     

코펜하겐대학 교수가 된 보어는 1920년 이론물리학 연구소를 열었다. 이때도 칼스버그의 지원금을 받았다. 보어는 연구만 잘한 것이 아니라 사회성도 좋았다. 그래서 뛰어난 학자들을 초청해서 협업하기를 즐겼다. 현대과학의 핵심 트렌드인 집단연구를 그때 이미 실천한 것이다. 이론물리학 연구소가 그 협력의 거점이 되었다. 이곳에 모인 면면을 살펴보면 엄청나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볼프강 파울리 등 양역학을 체계화하는 석학들이 다 이곳을 거쳐갔다. 오늘날 양자역학의 표준적 해석으로 인정받는 코펜하겐 해석은 이러한 집단연구의 결과로 확립된 것이다. 저 멀리 일본에서 온 학자도 있었는데, 그가 바로 니시나 요시오다. 후일 일본의 노벨상 1, 2호가 되는 유카와 히데키와 도모나가 신이치로가 그의 제자들이다. 칼스버그는 심지어 보어가 살 집도 마련해줬다. 2대 회장이 살았던 저택이었는데, 보어는 이곳을 기증받아 1962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

코펜하겐대학의 이론물리학 연구소. 양자역학과 코펜하겐 해석의 성지로서, 현재는 닐스 보어 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결국 양자역학의 성립 배경에는 칼스버그 재단의 지원도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이 현대물리학의 주요 분과로 자리잡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기존 물리학 패러다임과는 너무나도 단절적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물리학의 끝판왕 아인슈타인조차도 양자역학을 끝거부했다. 그런데 새까만 후배들인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아인슈타인에게 겁도 없이 대든 것이다. 이 논쟁은 몇 년을 이어갔다.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파상 공세를 모두 막아내며 양자역학의 난점들을 보완하고 이론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만약 칼스버그라는 든든한 물주가 없었다면, 보어가 세기의 슈퍼스타인 아인슈타인을 과연 그렇게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받을 수 있었을까?

     

흔히 물리학 같은 순수기초과학은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들 한다. 공공의 목적을 우선해서, 당장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장기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과 우주의 근원을 추적하는 입자물리, 이론물리, 천체물리 같은 분야들이 그렇다. 하지만 국가의 지원이 만능은 아니다. 국가의 정책과 제도에는 필연적으로 관료주의라는 덫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국가가 하는 모든 일에는 표준적인 규칙과 양식이 존재하며, 그걸 적용하는 공무원은 한 치의 예외라도 허용하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이 글을 읽는 공무원분들 죄송합니다). 이런 경직된 문화에서는 과학자라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마음껏 뜻을 펼치기 어렵다. 이보다는 과학에 뜻이 있는 민간단체에서, 과학자들에게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고 자유롭게 지원하는 것이 더 낫다. 어쩌면 우리나라 과학의 미래도 칼스버그 같은 민영 재단에 있을지도 모른다.

칼스버그의 창업주 J.C. 야콥센. 19세기에 기업 이윤의 일부를 과학연구와 문화예술 지원에 쏟아부은, 존경받을만한 기업가였다.

      

양자역학과 함께해온 칼스버그 재단의 역사는 신선하면서도 진지하게 다가온다. 이쯤 되면 칼스버그 맥주를 마실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어차피 맥주 맛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러니 물리학도라면, 아니 전공자가 아니어도 물리학을 존중한다면, 제발 칼스버그 맥주 좀 마십시다(나는 산토리나 기린 맥주가 없을 때 3옵션으로 마시기는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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