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는 의사나 변호사처럼 면허가 필요한 직업은 아니다. 회사원처럼 입사 시험을 보지도 않는다. 다만 최소한의 자격 요건은 있다. 바로 논문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를 실무적으로 정의하면 곧 ‘논문을 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연구 하면 떠오르는 계산과 실험도 다 논문을 쓰기 위한 과정이다. 과학자의 위대함은 그가 내는 논문의 우수성에 따라 결정된다.
저널(학술지)은 과학자가 낸 논문을 심사해서 출판한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과학자라도 연구주제가 다르면 동료가 쓴 논문의 가치를 알아보기 어렵다. 이럴 때는 논문이 출판된 저널을 보면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물론 논문을 출판하는 저널 수는 엄청나게 많다. 유명 학술 DB인 Web of Science에 등록된 것만 14,000여 개다. 그러나 이 저널들의 네임밸류 편차는 매우 크다. 특히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저명한 저널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세계 3대 과학 저널로 불리는 NSC가 대표적이다. NSC는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셀(Cell)>의 첫 글자를 합친 것이다. 그러니까 축구의 레바뮌, 야구의 엘롯기, 가요의 김나박이, 대학의 SKY와 비슷한 조어다. NSC에 실린 논문은 세계 과학계 상위 0.01%의 공식 인증과도 같다. 한때 국내 과학자가 NSC에 논문을 내면 언론에서 인터뷰하던 시절도 있었다. 저자가 대학원생이거나 박사후연구원이라면 교수 임용의 보증수표로 여겨지기도 했다.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다.
세계 3대 과학 저널인 NSC는 축구로 치면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26번 휩쓴 레바뮌(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과 비슷하다.
<네이처>는 1869년 영국에서 창간되었다. 그 시작은 진화론의 대부 찰스 다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한 다윈이 엄청난 비난을 받자, 동료들이 방어에 나섰다. 그중 토머스 헉슬리(소설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는 내성적이었던 다윈을 대신해 온갖 논쟁에 참전한 키보드워리어였다. ‘다윈의 불독’도 그래서 얻은 별명이었다. 헉슬리는 다윈의 지지자를 모아 ‘X클럽’을 결성하고, <자연사 리뷰(Natural History Review)>를 창간했다. 인기가 없었던 이 저널은 폐간되었다가 <리더(Reader)>라는 제목으로 부활했는데, 재정 부족으로 또 폐간되었다. <리더>의 편집자 중 한 명인 노먼 로키어가 1869년 재창간한 것이 바로 <네이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초창기 <네이처>는 진화론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다윈도 죽을 때까지 40여 편의 글을 발표했다. 그러나 다윈을 지지하는 의견만 존재하는 저널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늘 이견과 논쟁이 있었다. 이렇듯 <네이처>는 석학의 권위보다는 과학의 다양성을 지향했고, 덕분에 진화론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 <네이처>는 자연과학 종합 저널이지만, 태생이 태생인지라 생명과학 분야의 논문 비중이 훨씬 높다. 그럼에도 그 엄청난 권위 때문에 물리학이나 화학에서도 논문을 내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네이처>는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 등과 같은 자매지도 수십 권 발행하고 있다. 물론 이 자매지들은 <네이처>의 이름값을 내세워 돈을 벌려는 상술이라는 욕도 먹고 있다.
1869년 <네이처> 창간호. 초창기에는 다윈의 지지자들이 중심이 된, 진화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저널이었다.
<사이언스>는 1880년 미국에서 창간되었다. 영국의 <네이처>와는 세계 최고 저널을 두고 라이벌 관계에 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저널인데, 바로 2004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의 진원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이언스>에 게재된 황우석 논문에 대한 의혹을 <네이처>에서 제기했다(이것만 봐도 둘의 라이벌리를 알 수 있다;;). <네이처>를 다윈이 유명하게 만들었다면, <사이언스>에는 토머스 에디슨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있다. 이렇듯 미국에서 손꼽히는 두 발명왕이 후원했는데도 초창기 <사이언스>는 폐간과 창간을 반복했다. 그러다 1900년 미국 과학진흥협회가 인수하면서 점점 권위와 명성을 얻게 된다.
<사이언스>의 편집 방향은 <네이처>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우선 <사이언스>는 종합 저널로서 물리학, 천문학, 화학, 지구과학 분야의 논문도 많이 싣는다.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를 처음 쓴, 월러스 브로커의 기념비적 논문도 1975년 <사이언스>에 실렸다. 또한 정통 자연과학 저널의 성격이 강한 <네이처>와 달리, 게임이론이나 통계분석 등 사회과학적 방법론에도 개방적이다. 과학대중화 단체인 미국 과학진흥협회의 성격에 부합하는 글도 실린다. 1992년 아키히토 천황이 투고한, 일본 근대 과학의 개척자들에 대한 논문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사이언스>는 <네이처>처럼 자매지를 마구 양산하지 않는다.
1880년 <사이언스> 창간호. 재벌 발명가 에디슨과 벨이 투자했지만, 초창기에는 여러 번 망했다. 1900년 미국 과학진흥협회가 인수한 뒤에야 발간이 안정화되었다.
<셀>은 NSC 중 가장 늦은 1974년 창간되었다. ‘세포’를 뜻하는 이름에서 보듯 생명과학 전문 저널이다. 역사도 짧고 분야도 제한적인데 3대 학술지가 된 이유가 있다. 그만큼 현대과학에서 생명과학의 위상이 높기 때문이다. 생명과학은 순수학문이면서도 의‧약학과의 응용 효과도 뛰어나서 산업적 파이도 크다(바이오주에 투자하신 분들 손~). 그래서인지 생물학, 발생학 같은 기초 분야뿐만 아니라, 공학적 성과에 대한 논문도 꽤 게재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인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단장(서울대 석좌교수)이 <셀>의 편집자를 지내기도 했다.
이렇듯 NSC가 높은 권위를 누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세부 분야로 들어가면 NSC보다 더 인정받는 저널들도 꽤 있다. 그러니까 레바뮌이 아무리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휩쓸어도, 세리에 A로 가면 AC 밀란에게 못 비비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일례로 내가 일하는 연구소의 어떤 이론물리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이론물리학자들에게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그저 잡지일 뿐이다”.
물리학에서는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가 독보적이다. 미국 물리학회가 1958년 창간하여 발행하는 저널이다. 특히 입자물리학과 이론물리학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논문들이 이 저널에 많이 게재되었다. 스티븐 와인버그가 표준모형의 토대를 확립한 1967년 논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힉스 입자를 증명한 2015년 논문이 대표적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저널의 논문들은 본문보다 저자 이름이 차지하는 페이지가 훨씬 많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본문은 많은 경우 수식의 전개로 파바박 증명이 끝나므로 짧다. 물리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는 와인버그의 논문도 꼴랑 4페이지였다. 다만 입자물리실험은 워낙 대규모라 참여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게 고스란히 논문 저자가 된다. 일례로 힉스 입자를 증명한 논문은 저자 수가 무려 5,154명이었다. <피지컬 리뷰 레터스>의 ‘레터스’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식인들이 편지로 학술 토론과 의견 교환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 <피지컬 리뷰 레터스> 외에도 ‘레터스’를 제목에 쓰는 저널은 꽤 많다.
힉스 입자를 실험적으로 증명한 2015년 <피지컬 리뷰 레터스>의 논문. 전체 33페이지 중에 24페이지가 저자 명단이다.
화학에서는 <저널 오브 디 아메리칸 케미컬 소사이어티(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와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가 양대 산맥이다. 전자는 미국 화학회지로 흔히 잭스(JACS)라고 부른다. 후자는 독일 화학회지로 응용화학이라는 뜻이다. 둘도 <네이처>와 <사이언스>처럼 라이벌이다. 여기에 논문을 냈다면 적어도 화학 분야에서는 톱클래스로 인정받는다. 우리나라가 화학에 강하다 보니, 한국인 저자나 편집자가 상대적으로 많기도 하다.
의학에도 의사들이 논문을 내는 저널이 있다. 이 분야 영혼의 트로이카는 <란셋(Lancet)>,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저널 오브 디 아메리칸 메디컬 어소시에이션(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이다. 이중 두 번째인 약칭 <NEJM>는 미국 매사추세츠 의학회가, 세 번째 <JAMA>는 미국 의학회가 발행하는 학회지이다.
그럼 <란셋>은 뭘까? 1823년 영국에서 창간된 가장 오래된 이 의학 저널의 제목은 동명의 수술 도구에서 따왔다. 즉 란셋은 중세 외과 의사(지금보다 지위가 훨씬 낮았던)가 자주 시술했던 방혈에 쓰인 뾰족한 침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지만, 그때만 해도 환자의 피를 뽑는 방혈은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각광받았다. 실제로 효과도 없는 이 피 뽑기가 그토록 오래 지속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게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널리 애용되었던, 체했을 때 손가락 따기와 비슷한 플라시보 효과 아니었을까? 피를 뽑는 행위는 의사에게도 환자의 신체를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1823년 창간된 <란셋>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빛을 들여보내는 아치형의 창문, 또는 불순물을 솎아내는 날카로운 수술기구. 창업자 토머스 웨이클리의 철학이기도 하다.
하지만 19세기 의학에 과학적 방법이 도입되면서 방혈은 설 자리를 잃었다. 역설적이게도 <란셋>이 그 ‘의학의 과학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의사들은 <란셋>에 보고된 사례를 읽으면서 방혈에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이유 없이 피를 뽑으면 환자의 상태가 악화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자 방혈은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요컨대 <란셋>이 란셋을 퇴출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