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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ul 10. 2024

과학자의 자유로운 낙원

일본 이화학연구소 (1)

1949년 11월 온 일본이 흥분에 휩싸였다. 일본의 첫 노벨물리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수상자는 유카와 히데키. 15년 전 오사카제국대학 박사과정 중에 제안한 중간자 이론이 수상의 근거가 되었다.

      

중간자는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에 존재하는 입자다. 더 이상 쪼개지지 않을 줄 알았던 원자핵 내부에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음이 알려지자, 원자핵을 유지하는 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양전하를 띤 양성자는 전하가 없는 중성자와 전기력에 의해 서로 강하게 밀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떻게 이러한 반발력을 극복하면서 중성자와 양성자가 결합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유카와는 중간자가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를 오가면서 전기적 성질이 다른 둘을 결합하게 만든다는 해답을 내놓았다. 1949년의 노벨상은 이러한 이론적 예측이 수년 뒤 실제로 검증된 결과다. 이는 자연계의 4가지 기본 힘 중 하나인 강력(강한 상호작용)의 원인을 설명한 것이기도 했다.

     

유카와의 노벨상은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였다. 193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인도의 찬드라세카라 벵카타 라만이 첫 번째다. 그런데 라만은 영국령 인도제국 출신으로 영국의 교육을 받은 학자였다. 반면 유카와는 일본에서 학위과정을 마쳤고, 중간자 이론으로 유명해지기 전까지 해외에 나가본 적도 없었다. 그런 유카와는 일본인의 자긍심과도 같았다. 당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미군정이 통치하고 있었다. 사회는 혼란하고 국민들은 무력하던 시기였다. 이때 전해진 노벨상 수상 소식이 패전으로 추락한 국민적 자존심을 다시 높여주었다. 1949년 12월 12일 자 <아사히신문>의 보도다. “패전 일본은 문명의 파괴자라고 일컬어졌다. 일본은 박사의 노벨상 수상에 의해 새로운 일본이 세계의 문화를 위해 아름다운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일본 과학의 오래된 미래

     

유카와는 1940년부터 교토제국대학의 교수이면서 도쿄의 한 연구소에서도 연구했다. 그의 노벨상은 일본 과학의 희망이자 자신감으로도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 연구소에는 비슷한 수준의 인재들이 이미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카와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도모나가 신이치로가 대표적이다. 도모나가는 한 수 아래로 생각했던 유카와의 노벨상 수상에 충격을 받았지만, 16년 뒤 그 역시 일본의 두 번째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일본은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내고 있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이가 어린 시절 유카와와 도모나가를 보고 과학자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유카와와 도모나가는 일본 과학의 ‘오래된 미래’였던 셈이다.

유카와 히데키(왼쪽)와 도모나가 신이치로(오른쪽)는 일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다. 수많은 후학들이 그들을 롤모델로 삼아 과학자의 길을 택했다.


일본 과학의 부흥을 알린 두 과학자가 연구했던 곳이 바로 이화학연구소다. 이화학연구소는 영어로 Rikagaku Kenkyujo인데, 줄임말 RIKEN으로 더 유명하다. 1917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일본을 대표하는 국가 연구소로 운영 중이다. 오늘날 일본이 과학 강국이라고 하지만, 그 시작만큼은 서양보다 한참 늦었다. 그런 일본이 오랜 연구소 운영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서양에서도 국가가 연구소를 설립하는 시점이 20세기 초반인데, 일본도 그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서양을 따라잡으려는 치밀하고도 집요한 노력이 있었다. 추격의 비결은 정부의 효율적인 계획과 지원이었다. 서양에서 과학을 꽃피운 주체는 개인이었다. 사회 곳곳에서 개인들이 새로운 발견을 하고 지식을 교류하면서 자생적으로 과학이 발전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국가가 과학의 태동을 주도했다. 서양이 상향식이었다면, 일본은 하향식이었던 셈이다. 일본 정부는 근대화에 필요한 과학 엘리트를 키운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그래서 1868년 메이지 유신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서양에 유학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들이 돌아오면서 국내에도 연구인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특히 전국에 설치된 제국대학이 각지의 수재들을 과학자로 양성했다. 1886년 반포된 제국대학령 제1조에 그 목적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제국대학은 국가의 필요에 응한 학술 기예를 가르치고 또한 그 학문의 심오한 경지를 연구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수진은 서양 유학파들이 맡았는데, 이들은 당시 첨단을 달리던 과학자들에게서 직접 배운 경험이 있었다. 일본 물리학의 개척자들인 나가오카 한타로가 루트비히 볼츠만을, 니시나 요시오가 닐스 보어를 사사한 건 유명한 일화다. 이런 배경에서 일본에서도 통계역학과 양자역학이 동시대에 연구될 수 있었다. 유카와와 도모나가도 제국대학을 다니며 최신의 과학 지식을 배웠다. 현재까지도 일본 노벨상 수상자의 대다수는 제국대학 또는 그 후신인 국립대학 출신이다.

     

다만 연구보다 교육이 우선인 대학만으로 과학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선진국들은 연구소를 설립해서 과학자의 강의 부담을 없애고 연구에만 전념하게 했다. 20세기 초반 등장한 미국의 카네기 연구소, 록펠러 의학연구소,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협회 등이 대표적이다. 서양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따라 해보면서 근대화를 이룬 일본이 이 흐름을 놓칠 리 없었다. 유럽과 미국을 경험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우리도 국가 연구소를 만들자”라는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정‧재계와 황실도 가세했다. 그 결과 1917년 RIKEN이 탄생할 수 있었다. 막스 플랑크 협회의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 협회와 6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RIKEN이 선진국의 유서 깊은 연구소들에 비견되는 이유가 설립 시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구소를 운영하는 철학과 제도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카이저 빌헬름 협회는 황제가 통치하던 시절에 지원과 운영을 분리하고 과학자의 자율성을 보장했다. RIKEN의 설계자들도 이 점이 연구소라는 조직의 본질임을 꿰뚫어 보고 그대로 이식했다. 덕분에 RIKEN도 일찍부터 과학자 중심의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연구문화를 띨 수 있었다. 이는 학생 시절의 도모나가에게도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그는 RIKEN의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본 뒤 “형식적인 예의란 것은 연구소 내에서 별 필요가 없다”라며 “RIKEN이야말로 과학자의 자유로운 낙원”이라고 평했다. 이것은 현재까지도 RIKEN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2017년 RIKEN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열린 특별 기획전. 연구소가 100년의 역사를 쌓아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핵물리학에서 양자컴퓨터까지

     

‘이화학(理化学)’연구소라는 정식 명칭에서 보듯, RIKEN의 초창기 주력 분야는 물리학과 화학이었다. 이는 응용・개발 목적을 배제한 순수 기초연구에 집중한다는 설립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RIKEN을 대표한 분야는 핵물리학이었다. 1937년 니시나 요시오가 미국 다음으로 사이클로트론(입자가속기)을 개발할 정도로 연구 수준이 높았다. 그러나 이 가속기는 핵무기 개발에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미국이 폐기해버렸다. 실제로 니시나는 전쟁 중에 진행된 비밀 핵 개발 프로젝트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RIKEN의 핵물리학 연구는 한동안 단절되어야 했고, 1960년대가 되어서야 다시 가속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 오늘날 RIKEN의 가속기 실험과 핵물리학 연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니시나의 이름을 딴 가속기 연구조직인 니시나센터가 특히 유명하다. 이들은 2016년 가속기 실험으로 113번째 원소를 발견하여 ‘니호늄’이라고 명명했다.

     

설립 후 100여 년을 지나면서 RIKEN의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특히 생명과학이 최근 RIKEN의 주력 분야로 급성장해왔다. 2012년 유도만능 줄기세포(iPS) 개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가 RIKEN과 협업을 확대한 것이 계기가 됐다. RIKEN은 야마나카의 유도만능 줄기세포로 제작한 망막세포를 실명 위기에 있던 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줄기세포의 상용화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한 성과였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최근 유도만능 줄기세포의 임상 적용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시도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RIKEN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RIKEN이 1조 4천억 원을 투입해 후지쯔와 공동 개발한 후가쿠는 2020년 세계 슈퍼컴퓨터 랭킹 1위를 기록했다. RIKEN은 전통적인 이론수학을 이러한 인프라와 결합하여, 인공지능과 데이터 연구로 공격적인 확장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RIKEN의 전략적 가치를 알아보고 열심히 밀어주고 있다. 2017년부터 RIKEN은 문부과학성 지원으로 대규모 첨단 인공지능센터를 설립해서 운영 중이다. 인공지능의 차세대 분야로 꼽히는 양자컴퓨터 개발에서도 이미 세계적 선두그룹으로 올라 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보다 계산 속도가 1억 배 이상 빨라 원자나 전자 수준의 정밀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한데, RIKEN은 후가쿠 기반의 양자컴퓨터를 2025년부터 실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모습은 RIKEN이 전통적 의미의 기초과학 연구소이지만은 않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RIKEN의 포트폴리오는 기초학문뿐만 아니라 응용과학, 공학까지 포괄한다. 이 다양한 분야들을 크로스오버하는 융합적인 주제들도 많이 다룬다. 이렇게 전통적 학문의 구획을 넘어서는 대형화, 집단화된 연구시스템은 현대과학의 트렌드와도 잘 부합한다.

일본 사이타마현 와코시의 RIKEN 본원. 입구에 RIKEN 연구진이 발견한 113번 원소 니호늄의 기념조형물이 있다.



      

연구 목적과 기능에 따른 유연한 조직

     

RIKEN의 연구조직은 크게 센터와 클러스터로 나눌 수 있다. 센터는 기능에 따라 다시 전략연구센터와 연구인프라센터의 두 가지 조직으로 나뉜다. 반면 클러스터는 연구자 중심 조직이다. 연구자들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이끄는 연구팀으로 구성된다.

     

전략연구센터는 이름 그대로 국가전략적 주제를 탐구하는 조직이다. 앞서 언급한 니시나센터를 비롯, 인공지능, 뇌과학, 물질과학 등을 연구하는 10개 센터가 있다. 국가전략분야와 직결되는 만큼 조직의 설치와 해소도 유연해서 5~10년의 기간을 두고 운영된다. 반면 연구인프라센터는 주제가 아닌 인프라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는 차이가 있다. 슈퍼컴퓨터, 방사광가속기, 핵자기공명 시설 등 대학 또는 기업에서 운영하기 어려운 대형 인프라들이 이 센터에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RIKEN 자체 연구도 수행하지만, 외부 연구를 기술적으로 지원해주는 역할도 한다.

     

클러스터의 핵심은 RIKEN의 중추 인력인 주임연구원들이다. 이들의 임무는 전인미답의 혁신적 지식을 발견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다. 그만큼 탁월한 역량과 리더십을 보유한 우수한 과학자들이 주임연구원으로 임명된다. RIKEN에서 얼마 안 되는 정년 보장 연구직이기도 하다. 그만큼 선발 기준이 엄격한데, 3,000명이 넘는 연구인력 중에 주임연구원은 40여 명에 불과하다. 주임연구원이 되면 RIKEN 내에서는 연구의 ‘장인’으로 대우받는다. 즉 주제 선정, 인사, 예산 등에 있어 완벽한 독립성을 발휘한다. 독일 MPG의 디렉터가 그렇듯, 각 주임연구원이 그 자체로 하나의 연구 단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주임연구원들은 박사후연구원, 학생 등을 고용해서 독립적인 연구실을 꾸린다. 이외에도 젊은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소규모 그룹들도 클러스터에 포함된다.

     

이러한 연구조직들을 지원하는 체계도 있다. RIKEN의 정보시스템과 인프라를 관리하는 개발본부, 학계 및 산업계와 파트너십을 맺는 협력본부다. 특히 RIKEN은 설립 초창기부터 연구성과를 산업계에 적극적으로 이전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RIKEN의 기술로 창업한 계열사들의 규모는 웬만한 재벌그룹 수준에 이를 정도였다. 이러한 전통 덕분에 현재에도 RIKEN과 협력하는 기업, 병원, 재단 등이 매우 많다. 이들과 협력하기 위해 RIKEN은 상당한 규모의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기에 RIKEN의 기술과 지식재산을 전담 관리하는 기술지주회사까지 두고 있다.

RIKEN의 연구조직 체계. 각 단위별 기능과 특징을 살려 유연하게 운영한다.

      

요컨대 RIKEN의 연구조직은 목적에 따라 유연한 형태를 취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전략연구나 거대실험 등 자원과 인프라를 많이 투입하는 분야는 대규모 센터로 운영한다. 반면 연구자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프런티어 연구나 고위험‧고수익 연구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가까운 클러스터로 구성한다. 흔히 자연현상의 근원을 탐구해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는 활동을 ‘기초연구’라고 뭉뚱그려 표현한다. 그러나 기초연구도 일종의 집합명사이다. 이를 구체적인 맥락에서 들여다보면 주제, 방법론, 자원 규모 등에 있어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RIKEN의 조직 형태는 기초연구의 이런 특성을 효과적으로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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