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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Aug 07. 2024

MSG도 과학이 발견한 거랍니다

과학의 발견은 대부분 일상생활과는 관련이 없다. 20세기 이후 현대과학으로 올수록 그 괴리가 심해진다. 과학의 발전이 낳은 역설적 결과다. 이제 인간이 직접 인지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과학적으로 탐구할 만한 거리가 별로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최근 과학연구는 인간의 현실을 아득히 초월하는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다들 한 번쯤 들어보았을 초끈이론, 중력파, 암흑물질, 복잡계 같은 주제들이 그렇다. 이는 인류의 진보와 직결된 난제들이나, 여기서 뭔가 발견한들 우리 삶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이 인간의 삶을 직접 바꾼 사례는 많다. 이때 자주 인용되는 예시가 X선, 페니실린, 원자력 등이다(자세한 내용은 알기 쉬운 과학교양서 최소한의 과학 공부참조). 다만 이 발견들은 의도된 연구 결과는 아니었다. 우연히, 또는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의 발견을 엉뚱한 방향으로 활용한 경우다. 우연성과 불확실성은 그만큼 과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기도 하다.

     

반면 과학이 분명한 목적에 따라 인간의 생활에 기여한 사례도 있다. 바로 MSG(Mono Sodium Glutamate)의 발견이다. 음식 조리에 필수인 그 인공조미료 맞다. 이게 음식 맛 내는 데 하도 많이 쓰여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야기를 재밌게 하려고 “MSG를 친다”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MSG는 음식 문화, 나아가 인류 문명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 덕분에 인류는 맛있는 맛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MSG는 특히 나 같은 초딩 입맛에게는 인생의 동반자나 마찬가지다. 적어도 내게는 그 맛이 고향의 맛, 엄마 손맛보다도 우선한다. 소설가 김훈도 비슷한 모양이다. 그는 <라면을 끓이며>라는 글에서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박여 있다.”라고 했다. MSG의 위대함을 이처럼 잘 표현한 문장도 없다. MSG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라면처럼 맛있는 음식을 손쉽게 먹을 수 있겠는가.

요즘에는 MSG를 음식보다는 예능 프로에서 더 많이 쓰는 듯하다.

     

MSG, 또는 글루탐산 나트륨이라고 하는 이 화학물질의 기원은 20세기 초 일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케다 기쿠나에라는 화학자가 최초 발명자다. 1864년생인 그는 전형적인 메이지 시대 지식인이었다. 19세기말 메이지 정부는 서양을 배우려고 많은 인재를 내보냈다. 그들이 돌아와 국립 엘리트 교육기관인 제국대학의 교수가 되어 근대화를 주도했다. 이케다도 이 코스를 정확히 따랐다.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해서 빌헬름 오스트발트(190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사사한 뒤, 1896년 도쿄제국대학 교수가 되었다.

     

1907년 어느 날의 일이다. 저녁을 먹던 이케다는 국물이 맛있어서 그 재료가 궁금해졌다. 아내는 다시마로 우려낸 국물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케다는 과학자다운 질문을 떠올렸다. “그럼 이 다시마 맛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나?” 예나 지금이나 맛을 낸다는 건 까다로운 작업이다. 단맛, 짠맛, 신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케다의 입맛을 사로잡은 다시마 국물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한 조리 노하우에 따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우려내야 했다. 이케다는 이걸 손쉽게 표준화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 것이다.

     

그날 이후 이케다는 다시마의 성분을 분석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다시마의 핵심 성분이 글루탐산임을 발견했다. 글루탐산은 생물에게 필요한 20종의 아미노산 중 하나다. 거의 모든 식품에 들어 있는 천연 성분이기도 하다. 이 발견은 일본인이 오랫동안 “맛있다”라고 느껴온, 다시마, 다랑어, 멸치 등에 숨겨진 맛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밝힌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이케다는 글루탐산에 나트륨을 넣어 산성을 중화하면 맛이 더 좋아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글루탐산 나트륨은 이렇듯 여러 단계의 화학 실험을 거쳐 완성될 수 있었다. 이케다는 최종적으로 추출 및 합성한 성분을 결정화해서 조미료로 만들었고, 제조법의 특허도 냈다.

     

원천기술을 개발했으니 다음 차례는 사업화였다. 이케다는 스즈키 제약과 제조 기술을 공유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제품의 이름은 ‘맛의 근원’이라는 뜻의 아지노모토(味の素)로 정했다. 1909년 출시된 아지노모토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상품 자체로 새로운 시장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지노모토는 조미료계의 아이폰이었다(Think different). 처음에 사람들은 (아이폰도 그랬듯) 음식에 넣는 조미료라는 개념을 낯설어했다. 하지만 그 놀라운 효과를 체감하자 대번에 인식이 바뀌었다. 소금 간처럼 뿌리기만 하면 음식이 맛있어지는 ‘마법의 가루’로 여겨진 것이다. 이게 워낙 잘 팔리니까 스즈키 제약은 1946년 회사명을 아예 아지노모토로 바꿔버렸다. 1990년대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두 번 우승하자, 모 기업 럭키금성이 이름을 LG로 바꾼 것과 비슷한 경우다(…).

    

아지노모토의 대성공에는 메이지 시대라는 사회적 배경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당시 일본은 온 나라가 근대화와 서구화로 달려가던 때다. 그것은 서양의 근대사상과 과학기술을 사회 곳곳에 이식하고 체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 생활과 문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식문화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충분한 영양 섭취였다. 신체가 왜소했던 일본인들은 식생활을 개선해 체구를 서양인처럼 키워야 하며, 그 또한 근대화의 일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메이지 시대에 유독 서양식 식단이 권장되고, 음식 먹는 방법까지 교육된 이유다. 이 무렵에 일본에서 육식이 대중화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규나베(소고기전골)가 이 시대의 인기 메뉴였다. 그것은 미식을 넘어 문명개화의 정치적 상징을 함의했다.

이케다 기쿠나에는 해외 유학 후 근대화에 앞장선, 전형적인 메이지 시대 지식인이다. MSG를 개발한 공로로 1912년 일본 정부의 훈장까지 받았다.


MSG 개발에도 이런 메이지식 근대화, 즉 영양 강화에 대한 동기가 있었다. 이것은 이케다가 독일 유학 시절부터 관심을 가진 주제이기도 했다. 일찍부터 그는 일본인과 독일인의 압도적인 체구 차이가 영양 섭취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케다는 사람들이 MSG를 써서 영양은 좋지만 맛이 없는 음식을 맛있게 먹기를 바랐다. 그럼 자연히 섭취하는 영양도 늘어난다는 논리이다. 스즈키 제약의 광고도 이 점을 부각했다. 그들은 아지노모토를 “도쿄제국대학의 화학자가 과학적 방법으로 만든 실용적인 조미료”라고 강조했다. 이 캐치프레이즈는 메이지 시대에 만연한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동경과 잘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일본 전통의 다시마 맛을 서양의 과학기술로써 재현했다니, 일본인의 국뽕 또한 자극하는 일타쌍피의 한 수였다.

    

이케다가 개발한 MSG는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즈키 제약은 아지노모토가 국내 시장을 평정하자 1915년 조선으로도 판매망을 넓혔다. 이건 그만한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조선의 음식은 국물 요리 비중이 높고, 일본의 식문화와도 비슷한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즈키 제약은 이 점에 착안해 조선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이 전략은 그대로 적중하여, 아지노모토는 조선에서도 대박이 났다. 특히 냉면집, 설렁탕집 등에서는 아지노모토 없이는 음식을 못 만들 정도였다. 조선에서의 매출은 매년 급증하였고, 스즈키 제약에서 조선 지사장의 파워는 본사 사장 바로 다음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시 식량통제로 아지노모토 공급은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43년 조선 지사는 철수해버리고 만다.

     

문제는 조선인들의 입맛도 아지노모토에 길들여졌다는 것(…). 수요는 여전한데 공급이 끊기니 편법이 횡행했다. 밀수는 말할 것도 없고, 상표를 위조한 짭들도 시장에 등장했다. 대표적인 유사품이 1956년 출시된 미원이다. 미원은 상표명부터 아지노모토를 모방했다. 아지노모토(味の素)에서 素(흴 소) 한 글자만 바꾼 것이다. 그것도 일본어 훈독이 같은 もと(모토)인 元(으뜸 원)으로(…). 로고도 거의 비슷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아지노모토와 미원... 일본어 훈독은 둘 다 똑같다.


이렇게 미원은 아지노모토의 수요를 흡수하며 오랫동안 조미료 시장을 독점했다. 그런데 1960년대 말 경쟁자가 나타났다. 오늘날 삼성의 전신 중 하나인 제일제당이 내놓은 미풍이다. 미풍은 아지노모토사와 기술 제휴까지 해서 만들었지만, 미원에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미원의 독주가 깨지는 것은 절치부심한 제일제당이 1980년대 다시다를 출시하면서부터다. 아마 많은 사람이 김혜자가 외친 “그래, 이 맛이야”라는 카피를 떠올릴 것이다. 다시다에 밀려난 미원은 이제 아재들이나 기억하는 추억의 조미료(응답하라 1956)가 되었다.

  

이렇듯 MSG에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역사성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MSG는 음식 문화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본 과학의 위대한 성취를 상징하기도 한다. 흔히 일본 과학 하면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나 113번 원소 니호늄 같은 성과가 떠오른다. 하지만 MSG도 그에 못지않다. 이케다는 MSG의 맛을 느끼는 감각이 단맛, 쓴맛, 짠맛, 신맛에 이은 제5의 맛이라며, 이를 ‘우마미(うま味, umami)’라고 명명했다. 맛있다는 뜻의 우마이(うまい)와 맛 미(味)로 만든 합성어다.

웹스터 영어사전에는 일본어 우마미가 umami로 등재되어 있다. 번역할 수 없는 단어라 원어를 그대로 쓴다.


우리 말로는 감칠맛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우마미가 맞다. 우마미가 보통명사화되어 번역할 수 없는 표현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웹스터 영어사전에도 umami 그대로 등록되어 있다. 이는 이케다가 발견한 우마미가 제5의 맛으로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덕분이다. 기존에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맛이 4가지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케다의 발견으로 혀에 분포하는 미뢰 속에 우마미를 감지하는 화학수용체가 있음이 밝혀졌다. 제5의 맛, 우마미가 과학적 탐구의 영역으로 공식화된 것이다. 실제로 우마미와 관련된 수천 편의 논문이 생리학과 식품영양학 등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어 단어가 이제 만인이 쓰는 국제 학술용어로 인정받은 것이다. 아마 그들에게는 노벨상 수상보다도 더 값진 성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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