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라길래 소녀시대 멤버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다이아몬드 반지를 만드는 회사란다. 10년 전, 결혼을 준비하면서 처음 들어봤다. 아마 많은 남자가 나와 비슷할 것이다. 미국의 고급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가 제작한 다이아몬드 반지는 여자들의 로망이다. 까르띠에와 함께 프로포즈와 결혼 반지계의 양대 산맥이다. 로망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게 오지게 비싸다. 크기에 따라 다르나 최소 다섯 장은 각오해야 한다. 결혼 준비할 때 거지였던 나는 “뭔 반지 하나에 그 돈을 태워?”라며 고민조차 안 했다. 구 여친 현 아내도 나의 이런 짠돌이 마인드에 동의해줬다. 아직도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김건모의 <미안해요>… 그대여 지금껏 그 흔한 티파니 하나 못 해주고~ㅜㅜ).
사실 다이아몬드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것이다. 미적으로 아름답고 물리적으로 단단해서 고대로부터 궁극의 보석으로 여겨졌다. 어원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이아몬드(diamond)는 ‘정복할 수 없는’을 뜻하는 그리스어 ἀδάμας(adamas)에서 유래했다. 중국에서는 ‘금속 중 최고로 단단한’을 축약한 금강석(金剛石)으로 불렸다. 그래서 결혼을 약속하는 상징으로도 쓰인 모양이다. 1477년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공(오스트리아의 최수종)이 부르고뉴 왕국 공주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로 청혼한 뒤부터 이런 풍습이 퍼졌다. 현대 보석업계에서도 다이아몬드의 위상은 넘사벽이다. 보석업자들은 보석을 크게 다이아몬드와 나머지들로 분류하는데, 전자의 총 거래 규모가 후자를 압도한다. 요컨대 서태지와 아이들, 강병철과 삼태기, 현철과 벌떼들과 비슷한 관계라 하겠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보면 다이아몬드란 별로 대단한 게 아니다(T발 C세요?). 다이아몬드의 성분은 100% 탄소이기 때문이다. 좀 어렵게 말하면, 다이아몬드는 탄소 동소체다. 동소체(同素體, allotrope)는 원자 한 종류로만 이루어졌으나 배열 구조가 상이해서 성질도 다른 물질들을 뜻한다. 그러니까 물리학의 동위원소(isotope)와 비슷한 느낌(물론 학문적으로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럼 탄소는 지구에서 흔한데, 다이아몬드는 왜 안 그런가? 이건 지구 환경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려면 5~6만 기압과 1,300~1,800℃에 이르는 극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인간이 사는 지표면에서는 어림도 없다. 지구 내부로 깊숙이 들어간 맨틀에서나 가능하다. 어마어마한 고압과 고온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야 탄소 원자는 다이아몬드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는 화산이 폭발할 때 땅 위로 올라온다. 우리가 사고파는 다이아몬드는 바로 이걸 채굴한 것이다. 다만 보석으로 거래될 만큼 질 좋은 다이아몬드는 그리 많지 않다. 끽해야 전체 채굴량의 20% 정도다. 나머지 80%는 공업용으로 쓰인다.
다이아몬드와 함께 탄소 동소체를 대표하는 것이 흑연이다. 흑연은 탄소 원자가 다른 탄소 원자 3개와 결합해 얇은 판 모양을 이룬다. 반면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가 다른 4개의 탄소 원자와 결합해 정사면체를 이루고, 이것들이 3차원으로 견고하게 연결돼 있다. 즉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본질은 같되 원자들의 결합방식만 다른 물질들이다.
그렇다면 흑연을 어떻게 조물조물하면 다이아몬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쌉가능하다. 1953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화학자 트레이시 홀이 고안한 제조법이 있다. 지구 내부의 맨틀에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환경을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핵심이다. 흑연 덩어리를 기계에 넣고 1~2시간 동안 5만 기압, 1,500℃ 이상의 고온을 가하면 다이아몬드가 된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고압이 아닌 표준 대기압(1 기압)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기초과학연구원(IBS)의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이 올해 4월 <네이처>에 낸 논문이다. 방법은 이렇다. 특수 제작한 가열장치에 갈륨, 철, 니켈, 실리콘을 합성한 액체 금속을 넣는다. 여기에 탄소 생성을 위해 메탄가스를 주입하여 1,025℃로 가열한다. 그걸 꺼내면 다이아몬드가 되어있다. 물리·화학적 성질이 천연 다이아몬드와 똑같다. 합성 금속에 들어간 실리콘의 구조가 다이아몬드와 같은데, 가열 과정에서 실리콘 원자가 탄소 원자로 바뀌면서 다이아몬드가 된 것이다.
이 제조법의 놀라운 점은 실험실의 대기압 조건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존 공법에서는 대기압의 5만 배가 넘는 초고압이 필요했는데, 이런 제약이 사라졌다. 따라서 제작 비용도 그만큼 급감하는 효과가 있다. 이 실험으로 0.5cm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데 들어간 금속 가격과 전기료는 몇천 원에 불과했다. 최신 인공 다이아몬드와 비교하면 꼴랑 10분의 1 수준이다. 이 제조법이 상용화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우리나라가 크게 낮아진 제조원가를 무기로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를 이끈 로드니 루오프 연구단장은 미국인 과학자다. 탄소 분야의 세계적 화학자로 노스웨스턴대학, 텍사스대학 오스틴 등에서 석좌교수로 있었다. 그러다 2013년 한국으로 건너와 IBS 연구단장 겸 UNIST 교수가 되었다. 미국에서 명성이 높은 석학이어서 그런지, 그의 연구단은 특히 외국인 연구자 비율이 높다. 이번 <네이처> 논문도 미국인, 한국인, 중국인으로 구성된 다국적팀이 같이 썼다. 기초과학에서 국제공동연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기초과학이 어렵고 쓸데없는 일만 하는 것 같지만, 이런 실용적인 연구도 꽤 한다. 전 국민이 맞은 코로나19 백신도, 지금 여러분이 이 글을 보고 있는 LED 화면도, 시작은 모두 기초과학이었다. 그러니 거기 들어가는 세금을 아까워하지 말자. 혹시 모르지 않나. 기초과학 덕분에 전 국민 25만 원 다이아몬드 반지 시대(티파니 지못미ㅜㅜ)가 열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