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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Aug 29. 2024

출간에 대한 몇 가지 고민들

지금 『최소한의 과학공부』를 돌이켜보면 아쉽다. 더 쉽고 가볍게 썼으면 좋았을 것 같아서다. 실제로 독자들의 리뷰를 보면 책이 어렵다는 평도 꽤 있다.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의도해서 그리된 것은 아니다. 집필할 때는 나도 책 속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제대로 판단할 여유가 없었다. 출간 후 반년쯤 지나서야 내 책을 냉정히 바라보게 되었다.

     

이는 최초의 콘셉트에서도 벗어난 결과다. 출판사는 깨알 재미 위주의 과학 상식 백과를 원했던 것 같다. 몇 년 새 유행했던 ‘알쓸신잡’ 같은 책 말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과학공부』 초고를 넘겼을 때도, 출판사에서는 책이 어렵다면서 난감해했었다. 특히 4부(철학)가 문제였다. 출판사 편집진 회의에서는 이 파트를 빼자는 의견도 나왔었다. 나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본래 1부였던 이 부분을 마지막 4부로 돌리는 선에서 합의했다. 그래도 출판사는 역시 난 사람들이다. 출판사의 예상대로 이 4부 때문에 『최소한의 과학공부』가 어렵다고 지적받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 의도대로 책을 쓰지 못한 이유는 (당연하지만) 내게 있다. 비록 중도 포기했지만, 어쨌든 나도 석사까지는 아카데미즘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책, 그것도 교양서라면 꽤 각 잡힌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예컨대 한울이나 까치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는, 연구자가 아니면 아무도 안 읽을 컬트적인 책들. 실제로 작가가 되기 전 내가 가장 많이 읽었던 책들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의 과학공부』를 쓰면서도, 은연중 이런 책들의 서사와 문체에 영향을 받았던 듯하다. 거기다 아무래도 첫 책이라서 힘이 빡 들어가기도 했고. 요컨대 “내가 아는 것들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다”라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게 욕심이었음을 안다. 책을 한 권 완성해보니 나도 철이 든 모양이다. 그래서 만약 『최소한의 과학공부』를 다시 쓴다면, 힘은 빼고 재미는 더할 것이다. 요즘 내 브런치의 <사회 속의 과학 이야기> 매거진 글들처럼 말이다. 즉 MSG 개발, 다이아몬드 제작, 칼스버그 재단, 메디어천가, 대학로의 기원 같은 주제들을 다룰 것이다. 기계론이니 진보사관이니 양자역학이니 하는 노잼 꼭지들은 빼버리고. @주경 작가님께서 메디어천가 글의 댓글에 “프로 출신이 조기축구 나와서 설렁설렁 한 골씩 넣는 느낌”이라고 평해주셨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 느낌으로 쓰고 싶다. 이 글들은 나도 쓰면서 피식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재밌어서(ㅋㅋㅋ). 이렇듯 쓰는 작가가 재밌어야 읽는 독자도 즐겁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세상에 내보낸 책을 도로 불러들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글들을 따로 책으로 낼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 『최소한의 과학공부』의 알쓸신잡 에디션이랄까? 『최소한의 과학공부』와 라임을 맞추자면, 제목은 『극소한의 과학공부』쯤 되겠다. 물론 이미 책 두 권이 계약되어 있어서 당장 실행할 수는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작업해보고 싶다. 『극소한의 과학공부』, 아주 재밌을 것 같다. 5쇄를 찍은 『최소한의 과학공부』보다 더 많이 팔릴 거라 확신한다(그러니 관심 있는 출판사는 연락 좀 주세요).

     

좀 더 중장기적인 고민도 있다. 일본의 과학사와 과학정책에 대한 써보고 싶다는 것이다. 내 브런치의 10명쯤 되는 애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과학 글에 일본의 사례를 많이 인용하는 편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과학은 서양이 발전시킨 학문이지만, 정작 서양에서 배울 건 많지 않다. 그들과 우리는 역사적 조건과 발전의 경로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다. 일본이 서양과학을 도입한 과정은 우리의 근대화와도 상통하는 면이 많다. 오랫동안 쇄국을 하다가 강압적으로 개항에 내몰렸다는 점도 그렇고, 개인보다는 국가가 과학을 주도했다는 점도 그렇다. 일본의 과학은 서양보다 몇백 년 늦었지만, 불과 몇십 년 만에 그들을 따라잡았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가 이런 위업을 이루었는데, 거기서 배울 점이 없을 리가 다.

     

사실 우리도 일본 과학의 대단함을 안다. 노벨상 수상자만 해도 25대 0으로 압도적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자세히는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건 아무래도 뿌리 깊은 반일 정서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사고체계는 알게 모르게 일본이 잘한 건 깎아내리고, 못한 건 키우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발전이 없다. 아무리 일본이 미워도 배울 건 배워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일본 과학의 성공사를 진지하게 살펴보고 싶다. 분석하고 책으로 펴내 국내에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그 성과는 우리의 과학에도 정책적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러자면, 두 가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는 언어다. 일본의 과학사는 국문으로 된 연구자료가 별로 없다. 과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과학사나 과학기술학은 우리나라에서 비주류 학문이다. 그마저도 미국과 유럽이 중심이 된다. 그렇다고 일본 과학에 대한 영어 자료가 많은 것도 아니다. 일본이 학문의 공용어인 영어를 활발히 사용하지 않는 탓이다. 그네들은 과학 논문조차 일본어로 많이 쓴다. 결국 일본 과학사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일본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일본어를 배우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일본어였는데, 지금 히라가나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웬만한 한자는 읽을 줄 안다는 거? 일본어 학습에 대해서는 현지에 거주하시는 @수진 작가님께 자문을 얻어보고 싶다.

     

둘째는 출판업계의 분위기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을 긍정적으로 보는 책은 인기가 없다. 반면 그 반대의 책은 흥행 보증수표다.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생각해보면 된다. 『최소한의 과학공부』 초고를 출판사와 검토할 때, 일본이 노벨상을 많이 받는 비결 부분을 빼자는 권유를 받았다. 독자들이 싫어한다며. 그럼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가 1,400만 부 넘게 팔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책을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은 대체 뭔가 싶은데, 뭐 어쨌든 현실이 이렇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일본의 장점 우리나라에 책으로 소개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본 과학사에 “힝 요건 몰랐지?!” 싶은 흥미로운 소재들이 많은데도, 출간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

     

이런 고민들도 작가라는 업을 진지하게 여겨서 생기는 듯하다. 그래서 고민이 꼭 싫지만은 않다. 긴 호흡에서, 내가 그리는 작가의 비전과 연관해서 해법을 찾아보려 한다. 동료 작가님들의 자문과 상담을 받아도 좋겠다. 그만큼 이곳 브런치에는 인사이트가 넘치는 훌륭한 작가님들이 많. 그렇게 나는 작가로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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