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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Oct 01. 2024

다시, 선화동 거리

언니네 이발관(2008), <산들산들>

나는 공간에 유난히 애착이 있다. 삶의 수많은 공간 중 특정한 곳들을 오래 기억한다. 그 기억의 형상은 아주 구체적이기까지 하다. 공간의 구조와 배치는 말할 것도 없다. 그곳을 채웠던 공기의 색감, 함께 있던 사람의 눈빛과 표정, 흘러나오던 노래의 가사까지, 많은 것이 뇌리에 또렷하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기억은 무시로 찾아와 그렇게 나를 그 공간으로 데리고 간다.

     

오래전 브런치에 썼던 <선화동 거리>도 공간의 기억에 대한 글이었다. 철저한 비문학적 인간인 나는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글은 잘 못 쓴다. 행보관이 말년 병장들 찾아내듯 몸속 곳곳에 숨은 감성을 끄집어내야 한다. 게다가 오글거림을 극도로 싫어해서 좀 드라이한 감성 글을 쓰고픈데, 그게 말처럼 쉬울 리 없다. 그런데도 이 <선화동 거리>는 쓰고 나서 퍽 마음에 들었다. 물론 “내가 봐도 잘 썼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평소 마음속을 떠돌던 감정을 다잡아, 적절히 정제해냈음이 만족스러웠다. 글의 BGM으로 고른 음악들도 그런 심상을 잘 표현해주었고.


선화동을 기억한 이 글을 이렇게 끝맺었다. “언제 또 찾아갈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거기서 다시 인생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소설의 열린 결말처럼 모호했던 이 문장은 며칠 전 현실이 되었다. 오랜만에 그 동네를 다시 찾아갔기 때문이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저 불현듯 떠올라 실행에 옮겼을 뿐. 추분에 가까웠으되 더위는 여전했던, 여름도 가을도 아닌 어느 날이었다. 동물원의 <혜화동> 가사처럼 -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 전철을 타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전철이 없어서 그냥 버스에 올라탔다. 갓 발매된 보이즈 투 멘의 CD를 사러 선화동 교보문고로 향하던 중학생 그때처럼.

     

쇠락한 부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중학생 때와 비교해도 큰 변화가 없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할 방앗간, 슈퍼마켓, 대중목욕탕, 열쇠집, 고물상 등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진기한 광경을 바라보다 궁금해졌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동네를 반가워해야 할지, 지겨워해야 할지. 나처럼 이방인으로서 가끔 이렇게 찾아오면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 변하지 않음이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숙명처럼 느껴질지도.

선화동의 풍경은 30여 년 전 중학생 때와 비교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이 동네의 재생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한 카페로 간다. <선화동 거리>에서도 소개했던, 2층 양옥을 개조한 곳이다. 서울 익선동이나 연남동에서 볼 수 있는 힙한 스타일이다(라고 나 혼자 주장하고 있다). 이곳의 2층에서 동네 풍경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러고 있으면 나도 이 동네의 일부가 된 것 같다. 물론 나는 매일 해야 할 일의 데드라인을 맞춰야 하는 촉박한 현실에 있다. 하지만 왠지 여기서는 여유를 부려도 될 것 같다. 나 말고도 모든 것이 그렇게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으니까.

선화동의 좋아하는 카페. 이곳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 든다.


카페를 나와 골목을 걷는다. 정말이지 이 동네는 <응답하라 1994>류의 추억팔이 드라마 촬영 장소로 딱이다. 그만큼 1990년대의 잔향이 짙게 남아있다. 저 앞에 고물상이 보인다. 어릴 때 본 고물상 사장님은 온갖 진귀한(?) 물건을 취급하던 능력자였다. 그래서 장래희망을 ‘고물상 주인’이라고 써냈던 친구도 있었다. 요즘 애들은 고물상이 뭔지 알까? 당근 마켓의 전근대 버전이라고 하면 이해하려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이 동네에는 폐가도 많다. 한때 대전의 부촌이었던 곳이라 고급 주택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서구와 유성구의 개발 붐을 따라 많은 사람이 떠나고 집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중 일부는 도시재생 사업과 함께 카페나 술집 등으로 개조되었다. 오래됨과 새로움이 공명하는 이 공간들은 선화동의 쇠락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꿨다. 다만 그렇게 개조될 수 있었던 주택들은 얼마 안 된다. 대다수는 그대로 버려져 있다. 그 집들에는 살았던 사람의 희로애락도 남겨져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나도 작가라고 상상력이 발동한다. 안으로 들어가서 버려진 집이 들려주는 사연에 귀 기울여 보고 싶다는. 어쩌면 거기서 새로운 글이 시작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선화동에는 버려진 집과 가게들이 많다. 그곳의 사연을 들어보고 싶다. 어쩌면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늘 그대로일 것만 같던 이 동네에도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다. 건너편에 들어서는 대형 아파트 단지가 동네의 형상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미국에 "죽을 때까지 피할 수 없는 것이 세금"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를 벗어나 살기란 쉽지 않다. 이 동네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유명 브랜드의 신축 아파트와 옛 건물들이 함께 서 있다. 아마도 옛 건물들이 있는, 내가 돌아본 구역도 오래지 않아 아파트로 채워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끔 이방인으로 찾아와 오래된 동네를 돌아보는 일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삶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모든 것은 사라지고, 그 폐허 위로 새로운 것이 들어서기 마련이니까. 그 옛날 사회과학자들은 자연의 보편법칙을 인간과 사회의 현실에도 적용하려 했다. 사라지는 모든 것이 새로운 무언가로 대체된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인생을 관통하는 그 불변의 진리와 또다시 마주한다. <선화동 거리>에서 마지막 문장으로 썼던, 이곳에 다시 찾아와도 인생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은 이렇게 실현되었다.

이 오래된 동네에도 변화는 찾아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음악이 필요할 것 같다. 이어폰을 끼고 언니네 이발관의 <산들산들>을 고른다. 그들의 최고작이자 2000년대 인디신을 대표하는 명반 <가장 보통의 존재>의 마지막 트랙이다. 제목만 보면 무슨 장범준 류의 봄 캐럴송 같다. 실제로 사운드도 경쾌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가사와 보컬의 톤은 그와 대조적이다. 인생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상실, 그 앞에 선 자신의 무기력함을 노래한다. 그건 마치 이 동네와도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새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다. 그런데 별로 타고 싶지 않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일까? 집까지는 7㎞, 걸어서 1시간 30분 거리다. 저 멀리 버스가 진입해오지만 결국 걷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노이즈캔슬링으로 음악이 아닌 소리들을 차단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많은 시간과 사연이 쌓인 이 동네를 뒤로하고, 다시 앞으로.


그렇게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게 어딘가 남아 있을 거야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피할 수 없어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멈출 수 없는 그런 나의 길

다가올 시간 속의 너는 나를 잊은 채로 살겠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게 조금은 남아있을 거야
새로운 세상으로 가면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맘처럼 쉽진 않겠지만 꼭 한번 떠나보고 싶어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많은 세월 살아왔지만
아직도 부족하지 그래서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두렵지 않아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네 그게 나의 길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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