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대전은 철저하게 근대적인 도시다. 20세기 초 경부선과 함께 태동했고, 행정과 과학기술을 동력으로 삼아 대도시로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대전에서의 삶은 효율적이다. 하지만 시간의 아우라가 만들어내는 고색창연함은 거의 느낄 수 없다. 가까운 공주, 전주 등에 비해 역사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미미하다.
20대를 보냈던 서울에서 가장 좋아했던 동네가 삼청동, 부암동, 서촌이었다. 오래된 삶의 흔적들과 현대적 인프라의 어울림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살던 곳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특별한 일이 없어도 산책하러 가곤 했다. 이어폰을 꽂고 한양도성길을 걸으면 일상의 번민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골목에 숨은 아담한 카페를 찾아 들어가 책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공명(共鳴)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책 속의 문장보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에서 그 의미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었다.
대전에는 이런 동네들이 거의 없다. 물론 역사가 짧아서 그렇다. 하지만 도시의 공간들이 효율적으로 조직된 만큼 획일적이라는 이유도 있다. 대전의 라이프 스타일은 자본주의 대량생산의 수요-공급 교집합으로 대부분 수렴한다. 그걸 벗어나는 특이한 콘텐츠가 별로 없다. 대전 생활에 큰 불만이 없으면서도 특별히 애정이 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구의 선화동은 내가 좋아했던 서울의 동네들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한때 대전의 중심지이자 부촌이었던 곳이다. 대전역과 가깝고, 충남도청·법원·검찰청·MBC 등 권력기관들이 모여 있었으며, 고급 주택가도 있었다. 과거형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다. 1990년대부터 서구와 유성구에 개발이 몰빵되면서 기관들이 대부분 이전했다. 고급 주택지는 빌라촌으로 바뀌었다. 도심지 흥망성쇠의 전형적 서사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회사의 젊은 동료 중에는 선화동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 그나마 유튜브 먹방으로 유명해진 매운 김치 때문에 아는 사람이 일부 있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있다. 대전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던 대훈서적이 이 동네에 있었다. 부모님은 공부는 별로 못했지만 책은 좋아했던 나를 자주 대훈서적에 데리고 가셨다. 물론 무슨 책을 사서 읽었는지는 다 잊었다. 그래도 서점 안 광경은 기억난다. 높다란 서가에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그것은 공부라는 세계에 갓 발을 들인 초등학생의 로망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역시 선화동의 교보문고에 CD를 사러 자주 갔었다. 그때만 해도 해외 뮤지션들의 신보는 동네 음반 가게에 들어오는 게 며칠씩 늦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들어보려고 버스를 타고 교보문고 핫트랙스까지 가곤 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지금은 없다. 서점과 음반 가게는 사양 업종이 된 지 오래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단골이었던 나만 해도 한참 전부터 인터넷 서점과 스트리밍을 이용해 오고 있다.
대훈서적은 이제 그 흔적도 찾기 어렵다. 같은 이름의 손칼국수집에서 여기가 그 자리였구나 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 동네를 잊고 산지는 20년이 넘었다. 그러다 작년에 우연찮게 다시 가보았다.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건물들은 여전히 낡았지만 거리는 말끔히 정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옛 건물들을 개조한 카페, 음식점, 공방, 선술집 등이 눈에 띄었다. 서울 서촌이나 익선동에서 유행했던 뉴트로-아날로그 감성의 가게들이 생긴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선화동은 고급 주택가가 있던 동네이니 그런 리모델링에 적합했다. 그래서인지 새로 들어선 가게들이 튀어 보이지 않는다.
독립서점도 몇 군데 생겼다. 이제 오프라인 서점은 교보문고 빼고는 전멸의 수준이다. 그나마 비주류 독자들을 타겟팅한 독립서점이 최소한의 다양성을 유지시키는 것 같다. 나도 서울에 갈 때마다 들르는 독립서점이 두 군데 있다. 이대 앞의 추리소설 서점과 서대문의 사회과학 서점(다만 여긴 지난 5월 폐업했단다)이다. 대형서점과 다른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간혹 얻어걸리는 레어템 때문에 이곳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대전에 이런 서점들이 생길지는 몰랐다. 대전이 마이너 감성과는 별로 안 친한 도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독립서점도 이제는 주류문화로 올라왔나 싶기도 하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가게들은 동네 풍경과 꽤 어울린다.
선화동 골목 곳곳에 남아 있는 옛 모습들은 20여 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목욕탕, 방앗간, 구멍가게, 칼국수집 등이 그렇다. 단독 주택들도 꽤 남아 있다. 그중에는 새로 인테리어가 된 곳도 있으나,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도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폐가와 마주친다. 어떤 폐가는 잘 지은 이층 건물에 조경이 멋진 마당도 딸려 있다. 대충 봐도 몇십 년은 이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집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동네의 옛 모습들은 1990년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듯하다.
동네 한 복판에는 2층 양옥을 개조한 카페가 있다. 꽃 콘셉트의 인테리어가 예쁘고, 커피와 크로플 맛도 괜찮다. 물론 나도 평소에 스타벅스를 자주 이용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주로 커다란 창가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 인상적인 구절은 꼼꼼히 기록한다. 책이 지겨워지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이 가사를 쓴 사람은 이 맥락에 어떻게 이런 단어를 써넣었지, 하고 감탄도 한다. 창밖으로 눈을 돌려 동네 풍경도 한번 바라본다. 이 패턴을 반복하면 신산했던 마음이 여유를 찾는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곳이 오랜 시간과 많은 사연들이 더해져 만들어진 동네라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큰 창가에서 동네 풍경을 내려다보며 좋은 커피와 크로플을 맛볼 수 있는 카페도 있다.
선화동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 두 곡 있다. 모두 연주곡이다.
첫 번째는 프랑스 작곡가 얀 티에르상의 <Porz Goret>다. 2016년 발표한 그의 첫 피아노 솔로 앨범 <Eusa>의 수록곡이다. 이 앨범이 좀 독특하다. 제목인 Eusa(켈트어라고 한다)는 브르타뉴 지방의 섬인데, 티에르상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섬의 주민은 한때 수천 명에 이르렀고 브르타뉴어를 썼다. 그러나 최근 인구가 급감하면서 언어도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티에르상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고향에 다시 돌아왔다. 섬 곳곳의 풍경을 촬영하고 바닷가의 소리를 녹음했다. 50을 바라보는 중년의 눈에 비친, 사라져 가는 고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영감을 받은 장소와 같은 이름의 10곡을 썼다.
그중 하나가 이 <Porz Goret>이다. 곡 자체는 단출한 발라드이다. 그러나 메인 선율이 꽤 강렬하다. 감미로우면서도 우울하다. 선율이 표현하는 상반된 감정은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안타까운 회상일 것이다. 듣다 보면 이런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찾아오는 허망함. 무심해지고 싶지만 세월이 지나도 마음 한 곳에 여전히 남은 풍경. 힙하게 단장했지만 본래의 정체성은 잃어버린 선화동이 곡에서 느껴진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두 번째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환절기>이다. 2009년작 <긴 여행의 시작> EP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다. 이 앨범의 대표곡은 역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이다. 오늘의 에피톤 프로젝트를 만든 곡이다. 대곡 형식을 취하는 이 곡과 달리 <환절기>는 소품에 가깝다. 아련하고 처연한 감정을 간결한 멜로디로 표현했다. 다만 에피톤 공연에서 <환절기> 연주는 들어보지 못했다. 거의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갔는데도 말이다.
환절기는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는 기간이다. 계절이 바뀌면 온도와 습도가 변하고,생활과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적응이 필요하다. 인생에도 환절기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계절만큼이나 극단적인 시간대가 끊임없이 순환한다. 다만 언제 어떻게 온도와 습도가 변화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인생은 계절과 다르다. 버려진 폐가와 힙한 카페가 공존하는 선화동도 아직 환절기일지 모르겠다.
선화동은 그렇게 인생과 닮은 구석이 많다. 나는 그래서 이 동네가 좋다. 언제 또 찾아갈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거기서 다시 인생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