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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Nov 28. 2024

세상에 전하는 음악의 온기

바오 응우옌(2024),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나도 한때 팝음악의 세련됨을 동경하던 K-소년이었다. 하지만 세계인의 송가라는 <We Are the World>는 거의 안 들었던 것 같다. 단순한 편곡과 동요 같은 메시지에 별 감흥이 들지 않았다. 이미 중2병이 시작된, 질풍노도를 유영하는 나의 귀에 그런 심심한 노래가 들어올 리 없었다. 게다가 이 곡을 부른 올스타 라인업에 좋아하던 뮤지션도 없었다.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는 내가 한창 팝을 듣던 1990년대에는 이미 아재 급이었다.

     

따라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은 별 기대 없이 봤다고 해야겠다. 1985년 1월 28일 <We Are the World>를 녹음하는 하룻밤을 그린 작품이다. 굳이 이걸 고른 이유라면, 좋아하는 두 분야 – 음악과 다큐멘터리 – 의 결합이라는 정도? 물론 음악을 결과로만 즐기는 팬으로서,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We Are the World>처럼 역사의 기념비로 남은 곡은 어떤 천재성에 의해 탄생하는지 알고 싶었달까.  


그런데 막상 보니 작품의 기조가 예상과는 달랐다. 그러니까 희대의 고수가 천하를 평정하는 무협지 스토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면모가 드러나는 일상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도, 영원한 미국의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예외는 없었다. 슈퍼스타의 아우라를 벗은 그들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뭐라도 하려 했던 동료 시민일 뿐이었다. 물론 그들이 제일 잘하는 건 역시 음악일 테다. 그래서 서로의 음악적 역량을 모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그 콜라주 같은 작품이 바로 <We Are the World>다.


본래 이 프로젝트의 발단은 저 멀리 아프리카였다. 1984년 에티오피아에 대기근이 닥쳐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그러자 아일랜드 뮤지션 밥 겔도프가 U2의 보노, 듀란듀란, 조지 마이클, 스팅 등을 모아 <Band Aid>를 결성해 에티오피아를 위한 자선 음반을 낸다. 요컨대 유럽판 록 드림팀이었던 셈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앨범이 600만 장이나 팔리고 유럽 음악 차트의 1위를 휩쓸었다. 특히 <Band Aid>의 1985년 웸블리 공연은 영원한 레전드로 남았다. 이 공연이 바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Live Aid>다.

   

이는 미국의 뮤지션들에게도 큰 자극을 주었다. 가수이자 사회운동가인 해리 벨라폰테가 가장 먼저 나섰다. 그는 마틴 루터 킹의 친구로서 1960년대 민권운동에도 참여한, 팝과 정치 양쪽에서 존경받는 원로였다. “백인이 흑인을 돕는 사례는 흔한데, 흑인이 흑인을 돕는 건 그렇지 않다” 벨라폰테의 일갈에 공감한 뮤지션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팝음악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 영향력이 미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던 시절이었다. <We Are the World>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이러한 팝 르네상스의 주역들과 거의 일치했다. 이것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이 거대한 기획의 중심을 잡았을까. 하다못해 대학교 조별 과제도 총대를 는 사람이 있어야 돌아가는 법이다. 세기의 아티스트들이 총집합한 <We Are the World>야 말해 무엇하겠나. 그 어려운 역할을 맡은 이가 라이오넬 리치였다. R&B 그룹 코모도스의 리더였던 리치는 막 솔로로 데뷔해 잘 나가고 있었다. 어찌나 인기가 좋았는지 1985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MC로도 낙점되었다. 음악 시상식으로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는 그래미 어워드에 버금가는 권위를 갖는다. 따라서 1985년 1월 28일 수많은 뮤지션이 시상식이 열리는 LA로 집결할 예정이었다. 이날이 녹음 D-day로 정해진 이유다. 라이오넬 리치는 시대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답게 가장 중요한 작곡도 맡았다. 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오래전부터 이 바닥에서 쌓아온 그의 짬(?)이었다. <We Are the World>를 부르겠다고 순식간에 40여 명이 모인 데에는 리치의 인싸력이 한몫했다. 1인 다역의 이런 혁혁한 공로 때문인지 라이오넬 리치는 작중에서 메인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라이오넬 리치는 녹음 당일 가장 바쁜 사람(시상식 MC + 5개 부문 수상자, 작곡자, 도입부 보컬)이었다. 그래서인지 작중에서도 메인 인터뷰이로서 분량이 가장 많다.


프로듀서는 퀸시 존스가 맡았다. 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을 만든 그 사람 맞다. 이 또한 라이오넬 리치의 미친 섭외력 덕분이었다. 리치는 연주자 출신인 존스를 “위대한 오케스트레이터”라고 불렀다. 그만큼 존스는 여러 가수의 개성 강한 목소리를 하나의 곡에 녹여낼 수 있는 뛰어난 지휘자였다. 다만 그에게도 하룻밤 안에 40여 명의 합창을 녹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스튜디오 입구에 이런 문구를 써서 붙여 놓았다. “Check your ego at the door(자존심은 문 앞에 두고 들어와)” 실제로 이 작품에서 퀸시 존스의 프로듀싱 역량이 얼마나 먼치킨인지 드러난다. 단 하룻밤 안에 그는 덜 다듬어진 멜로디를 유려한 편곡으로 바꾸고, 각 파트 최적의 목소리를 조합하며, 지친 가수들의 보컬 트레이닝까지 해준다. 존스도 농담처럼 말하듯, 정석대로라면 2~3주는 걸렸을 일이다.

퀸시 존스(가운데)가 왜 레전드 프로듀서인지 이 작품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대한 마이클 잭슨이 있었다. 이 ‘팝의 황제’야말로 <We Are the World>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1960년대를 비틀스 빼고 설명할 수 없듯, 1980년대는 마이클 잭슨이 지배한 시대였다. 그럼에도 잭슨은 자신을 ‘스페셜 원’이 아닌 ‘원 오브 뎀’으로 낮추었다. 그래서 작업 내내 두드러지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한다. 아무래도 슈퍼스타들의 협업인지라 똥고집을 부리는 이(feat. 스티비 원더)도 있었고,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이(feat. 신디 로퍼)도 있었다. 잭슨은 정말 그런 거 하나 없다. 작곡하고 녹음하고 모니터링하고 또 녹음하고, 작중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죄다 이렇다.

      

<We Are the World>는 라이오넬 리치 - 마이클 잭슨 공동 작곡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잭슨의 기여가 훨씬 크다. 악기를 다루지 못했던 그는 허밍만으로 기본 멜로디를 만들었고, 대부분의 가사도 썼다. 여기에 피아노, 현악기, 코러스, 드럼을 넣어 (시키지도 않은) 데모까지 녹음했는데, 그 절륜한 퀄리티에 리치와 존스 모두 놀랐다고 한다. 이 데모 버전은 잭슨의 베스트 앨범에도 실려 있다. 들어보면 그가 이 프로젝트에서 얼마나 중요한 음악적 역할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도 자신을 내세우지도, 돋보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가 인간적으로 훌륭한 뮤지션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마이클 잭슨은 녹음에 참여한 슈퍼스타들 중에서도 최고였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작업에만 충실해서 감동을 준다.


그 밖에도 수많은 스타가 최선을 다해 자기 몫을 한다. 스티비 원더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녹음 내내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가수들이 음감을 잡도록 돕는다. 아싸 기질이 다분한 록커 밥 딜런은 어색함에 어쩔 줄 몰라한다. 그는 스타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스티비 원더가 모창까지 하면서 가이드를 해준 덕에 겨우 자신의 솔로 파트를 완성했다(아무도 이 아싸 양반이 30년 뒤에 노벨문학상을 받을지 몰랐을 거다). 막내이자 당시의 MZ 세대였던 신디 로퍼도 열심이었다. 솔로 파트를 부르는 중에 미세한 잡음이 생기는 이유를 아무도 몰랐는데, 로퍼가 주렁주렁 달고 있던 목걸이 때문이었음을 알고 벗고 재녹음하는 장면이 특히 재미있었다. ‘미국 노동계급의 뮤즈’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투혼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콘서트 투어가 끝나자마자 테네시에서 LA로 날아왔고, 최악의 목 컨디션에도 쥐어짜듯 자기 파트를 불렀다. 덕분에 <We Are the World>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스티비 원더가 주고받듯 부르는 클라이맥스가 완성될 수 있었다. 감성이 넘치는 다이애나 로스는 뭔가 귀여웠다. 아직 어색했던 녹음 중간에 팬이라며 가수들에게 사인을 받고, 마침내 녹음이 끝나자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12시간에 걸친 녹음 작업이 완료될 수 있었다. 감격에 찬 포옹을 나눈 가수들이 어두운 스튜디오를 나오자, 그들을 격려하듯 햇빛이 환하게 쏟아진다.

스티비 원더(가운데)는 밥 딜런(뒤쪽)이 솔로 녹음을 힘들어 하자 직접 피아노를 치며 모창까지 한다.

    

두 달 뒤 공개된 <We Are the World>는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를 구하자는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 세계 8,000개의 라디오 방송사가 동시에 이 곡을 틀었다. 무려 600만 장이 팔렸고, 그 수익금은 모두 에티오피아로 전해졌다. 이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2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렇게 <We Are the World>는 1985년을 대표하는 메가히트곡으로 등극했고, 이후에도 세계의 화합을 상징하는 인류의 송가로 자리 잡게 된다.

     

음악사적으로 1980년대는 팝이 글로벌 시장으로 대폭발하던 시대다. 1981년 MTV의 개국으로 팝 뮤지션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총아로 올라섰고, 소니와 유니버설 같은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로 음반 공급망이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이로써 미국의 팝음악은 거대한 자본과 재능 넘치는 인재가 총집결한 ‘꿈의 산업’이 된다. 그런 시대에도 <We Are the World>처럼 보편적 인류애에 호소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니 이채롭게 느껴진다. 슈퍼스타들의 인간적 면모가 빛난 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덕분에 평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치나 사회운동 못지않게 음악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진심을 담은 음악은 변화를 바라는 사회적 실천과도 공명할 수 있다는 것.

<We Are the World>에 참여한 많은 사람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 엔딩 크레딧의 추모 메시지에서 나도 결국 울고 말았다(ㅜㅜ)

     

이대로 리뷰를 마치려니 조금 아쉽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일부를 에필로그로 덧붙이려 한다. <온기를 자아내는 소설을>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다. 혐오와 갈라치기가 판치는 요즘 세태에 ‘온기’라는 단어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We Are the World> 프로젝트에서 보듯, 팍팍한 시대의 한복판에도 인간 정신의 회복을 부르짖는 예술가들은 있어 왔다. 앞으로도 이런 온기를 자아내는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예술이 지향해야 할 본령이 아닐까 한다.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캄캄하고 밖에서는 초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밤에 다 함께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소설.

어디까지가 제 온기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온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자기의 꿈이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꿈인지 경계를 잃어버리게 되는 소설.

그런 소설이 나에게는 '좋은 소설'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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