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는 7만 명이 넘는 작가가 있다. 물론 그중 내가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최대로 잡아도 수백 명 정도다. 브런치는 글이라는 고상한 취미를 공유하는 곳이라 다들 지적이고 교양도 풍부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차이도 꽤 느껴진다. 특히 댓글에 작가의 성격이 드러난다. 나는 댓글을 많이 남기지는 않지만, 한 번에 길게(아주 길게…) 쓰는 편이다. 그에 대한 작가들의 반응(대댓글)은 다양하다. 아예 안 쓰는 분도 있고, 건성건성 짧게 쓰는 분도 있고, 나처럼 길게 쓰는 분도 있다. 중요한 건 길이보다 내용이다. 댓글 하나도 정성스럽게 쓰는 분들이 드물게나마 있다. 그리고 이런 작가들이야말로 ‘찐’이다.
윈지 작가는 찐 리스트에서도 첫 손에 꼽힐 만하다. 아마 브런치의 7만 대군이 와도, 진정성으로 일기토를 붙으면 그를 이길 장수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진정성계의 여포다.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사람을 어찌 그리 잘 아냐고? 글을 보면 안다. 글에는 그 사람의 삶이 스며있으니까. 궁금하면 직접 보시기 바란다. 따뜻한 진정성으로 가득한, 백허그해주는 듯한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윈지 작가는 음악으로 치면 브루노 마스다. 브루노 마스는 보컬, 작곡, 춤, 연주, 퍼포먼스까지 혼자 다 하는 괴물(키 빼고 다 갖춘 남자)이다. 윈지 작가도 혼자서 이거 저거 다 한다. 출간작가, 교사, 대학원생, 엄마까지. 아 참, 하나 빼먹었다. 시인이기도 하다. 작년 동네 시 공모전에서 화려하게 등단하셨다. 이렇듯 하도 뭘 많이 하셔서 소개 글을 쓰는 나도 난감하다.
그래도 여긴 브런치이니 출간 이야기부터 해보자. 윈지 작가는 2021년 『나는 공부하는 엄마다』라는 책을 냈다. 30대 중반의 여성이 두 아이를 키우며 1년 반 만에 임용고시에 합격한 스토리다. 일단 모티브부터 쩔지 않은가? 내용은 더 대단하다. 워킹맘이 임용고시에 붙을 수 있는 궁극의 비기를 조곤조곤 알려준다. 그거슨 분 단위로 쪼개 쓰는 나노급 시간 관리(…)로 요약된다. 이른바 ‘초단기 집중 공부법’이다. 어차피 워킹맘은 자기 시간 내기가 너무 힘드니, 할 수 있을 때 빡공하라는 가르침이다(와 쉽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실천에 옮기려는 분들은 각오 좀 하셔야 한다. 참고로 책을 읽은 나의 소감은 이러했다. “난 이렇게는 못 하겠다”(ㅋㅋㅋ) 그 옛날 출판계를 강타한 『7막 7장』이라는 베스트셀러와도 비슷하다. 홍정욱의 공부법을 소개한 책인데, 무려 131행짜리 영시를 암송해서 영어를 정복한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윈지 작가의 책은 보급형 『7막 7장』이라 할 만하다. 그만큼 훌륭해서 <매일경제> 같은 유력 일간지도 책의 소개 기사를 냈다.
하지만 윈지 작가의 진면목은 교사와 엄마로서 쓴 브런치 글에서 잘 드러난다. 교육과 육아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사회가 별로 도와주지 않는 일이다. 윈지 작가의 글에는 그 두 가지 업을 동시에 하면서 겪는 고민이 녹아 있다. 그것들은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수렴한다. 글의 소재가 본인이든, 학생이든, 자식이든, 난관을 이겨내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다. 실제로 윈지 작가가 글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성장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저 파편화된 단어가 아니다. 그의 모든 글에서 드러나는, 단단한 주제의식의 발현이다. 성장에 이렇게 진심인 사람이라 뒤늦게라도 교사라는 직업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교사로서 윈지 작가의 성장에 대한 관심은 집요하다. 그래서 생각을 앞질러 확실한 실천으로 구현한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새 학기 첫날 모든 학생의 이름을 쓴 다이어리를 나눠주는 선생님. 수십 명의 개성 넘치는 아이들에게 “너는 별난 사람이 아닌 별 같은 사람”이라며 웃어주는 선생님. 학생들의 진로 상담에 도움이 되고자 수험공부를 해서 진로진학상담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는 선생님. 요즘 같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이렇게 타인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진심이 순수함을 넘어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자랑스럽게도, 이런 윈지 작가가 내 글의 애독자다. 사실 나와 윈지 작가의 접점은 거의 없다. 나는 과학에 대해, 그는 교육에 대해 주로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창 시절 과알못이었을 것이 분명한 윈지 작가는 누구보다 내 글을 열심히 읽는다. 그 이유로 아마 둘째 딸 주니가 클 것이라 짐작한다. 논리적이고 수학을 잘하는 주니의 꿈이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윈지 작가는 내가 쓰는 과학 글을 읽고 주니에게 곧잘 이야기해준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주니가 내 청소년 과학교양서를 재밌게 읽기를, 훗날 내가 일하는 연구소의 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주니야 나중에 점수 더 나왔다고 의대 가면 안 돼?).
그런데 윈지 작가가 타고난 선생님이다 보니… 댓글도 선생님처럼 쓴다. 뭐랄까 숙제 잘해온 학생에게 칭찬의 코멘트를 적어주는 느낌? 그래서 인터넷 댓글이 아니라 노트에 빨간펜으로 쓴 글 같다. 이런 것들이다.
윈지 작가의 시그니처인 선생님 피드백.jpg
사실을 말하자면, 난 윈지 작가의 이런 선생님스러운 댓글이 너무 좋다ㅋㅋㅋ 옛날로 돌아가 선생님께 칭찬받는 느낌이 들어서다. 학창 시절의 나는 잘하는 것이 별로 없어서 칭찬과도 거리가 멀었다. 만약 어쩌다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면, 그날은 종일 기분이 좋았다. 공중에 두둥실 뜨는 느낌이었달까. 집에 가서 밥 먹으면서도, 잠들기 전에도 선생님의 칭찬을 되새기고는 했다. 그래서 이런 댓글을 선물로 받을 때마다, 그 시절의 선생님 같은 윈지 작가에게 고맙다.
브런치 시작하고 이제 3년이 넘었는데, 가끔 현타가 올 때도 있다. 나는 브런치를 통해 혜택을 꽤 많이 본 사람인데도 그렇다. 그럼에도 이 플랫폼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윈지 작가 같은 독자를 가질 수 있음이 그중 하나다. 내가 어디 가서 내 글을 이렇게 열심히 읽고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남겨주는 독자를 가져보겠나. 물론 온라인의 인간관계만큼 허무한 것이 없긴 하다. 그렇지만 윈지 작가와는 지금처럼 쭉, 오래 알고 지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런 분을 알게 해준 브런치에 감사하다.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이 훌륭한 작가이자 소중한 독자를 얻지 못했을 것이므로.
나와 윈지 작가의 유일한 접점은 밴드 넬이다. 넬의 모든 곡을 좋아하는 윈지 작가와 달리, 나는 일부 곡만 즐겨 듣는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에필로그로 골랐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