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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이 만드는 선진국의 조건

by 배대웅
회사 업무로 쓴 글을 브런치에도 올려봅니다. 저는 이런 일을 하고 월급 받습니다. 아마도 이 글이 세상에 나올 때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되어 있을 겁니다. 예전에는 이런 고스트라이터의 삶에 현타도 왔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과정이 작가가 되는 연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초과학의 가치는 흔히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조명된다.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기술개발이 활발해지고, 산업 경쟁력에도 기여한다는 논리다. 물론 기초과학의 발견이 혁신 기술로 이어져 경제에 큰 혜택을 준 사례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예외적 현상에 가깝다. 기초과학은 대부분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는 순수한 지식으로 남을 뿐, 곧바로 실용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양자역학은 1920년대에 기존 물리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러나 그 이론이 반도체와 컴퓨터 기술로 이어지기까지는 수십 년의 추가 연구와 응용이 필요했다. 기초과학과 경제·기술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길고 간접적이다.


그렇다면 기초과학은 왜 중요한가? 핵심은 지식 그 자체가 발휘하는 힘에 있다. 기초과학은 자연, 우주, 생명의 본질을 밝힘으로써 인류가 세계를 이해하는 폭을 확장한다. 이렇게 발견한 지식은 특정 국가에만 귀속되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이 쌓일수록 전 세계가 의존하는 공통의 학문적 토대도 커지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기여한 국가들은 국제사회의 리더로 인정받으며 발언권도 강해진다. 인류문명을 지탱하는 지식의 체계를 누가 만들어왔는가 하는 질문은, 한 국가의 위상을 가늠하는 기준으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기초과학은 국가의 리더십을 규정하는 요소가 된다.


선진국 = 부자나라?


전통적으로 선진국의 조건으로 거론되어 온 지표는 경제력이었다. 그럼 세계 선진국 순위는 국가별 1인당 GDP 순위와 일치할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중동의 산유국인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의 1인당 GDP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규범을 만들거나 글로벌 어젠다를 주도하는 국가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경제적 위상이 예전만 못해도 여전히 국제 질서의 중심에 있다.

richestcountries.jpg 경제력 순위가 곧 선진국 순위는 아니다.


이 차이를 설명하는 가장 분명한 요소는 국가의 지식 생산 능력이다. 1901년 이후 학문 분야(물리·화학·생리의학·경제학) 노벨상의 수상자 대부분이 미국과 서유럽에서 배출되었다. 현대 과학문명의 기초 개념 상당수가 이들 국가에서 태어난 셈이다. 전 세계는 지금도 그 지식에 의존해 사회를 운영하고 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식의 생산 정도가 국가의 성취를 넘어 문명사적 위상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그래서 지식 생산 능력이 뛰어난 국가는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기술·산업·정책의 표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은행과 OECD가 국가 경쟁력을 논할 때 ‘지식 자본(Knowledge Capital)’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지식 자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국가들은 대부분 기초과학에서도 강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 = 부자나라’라는 인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늘날의 선진국은 세계에 혁신적 지식을 보급하는 나라, 그리하여 인류의 지적 진보를 이끄는 나라다.


우리나라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산업화를 이룬 나라 중 하나였다. 그 방식은 분명했다. 서구 선진국이 먼저 쌓아 올린 지식과 기술을 재빠르게 흡수·응용해, 조선, 기계, 철강, 반도체, 통신 등 수출산업을 키운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은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대량 공급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덕분에 우리는 사상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자 OECD 회원국이 되었다. 이른바 ‘추격형 전략’의 모범 사례였다.


추격에서 선도로


그러나 인류 진보에 대한 기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남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활용해 성장해 왔다. 하지만 그 지식 체계 자체를 바꾸거나, 인류의 이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발견을 해낸 사례는 거의 없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과학 분야 노벨상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흔히 노벨상을 국가의 자존심으로만 생각하는데, 반대로 인류에 대한 기여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숫자가 '0'이라는 것은 한국이 그만큼 인류 공통의 지적 자산에 지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학 교과서를 뒤져봐도 한국인 과학자는 찾기조차 어렵다.


이 차이는 상징적으로도 드러난다. 서구에서는 국가를 대표하는 연구기관이나 과학 프로젝트에 과학자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 막스플랑크협회, 프랜시스크릭연구소, 허블우주망원경 같은 이름들은 그 나라가 인류 과학에 남긴 족적을 상징한다. 반면 우리에게는 세계 과학계가 곧바로 알아볼 만한 과학자의 이름이 거의 없다. 대신 국내에서는 과학 관련 시설이나 사업에 ‘세종’이라는 이름이 자주 쓰인다. 물론 세종대왕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아본 훌륭한 군주였다. 하지만 인류문명의 근간인 근대과학과는 무관한 인물이기도 하다. 세계 과학사에서 세종의 기여를 떠올리는 과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에 비해 지적 자산이 부족하다는 현실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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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png 한국의 경제성장은 서구 선진국의 지식과 기술을 모방함으로써 가능했다.


이 때문에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미묘한 불편함도 섞여 있다. 서구의 과학정책연구에서는 후발 공업국의 추격형 전략을 이렇게 보기도 한다. “선발국이 먼저 치른 기초연구·표준화·인프라 구축 비용에 올라타는 무임승차 효과(free-rider effect)” 한국은 이러한 구조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였다. 인류의 지적 자산을 이용만 했을 뿐, 우리의 독창적 발견으로 지식을 더해주지는 못했다. 이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우리로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지점이다.


더 큰 문제는 추격형 전략 자체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로 세계 기술의 최전선이 빨라지고 복잡해지면서 ‘따라잡을 여유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 누군가가 길을 닦아 놓으면,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도 되던 시대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중국·인도·동남아 국가 등도 추격에 뛰어들면서, 값싸고 효율적인 생산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졌다. 같은 추격 모델 안에서 경쟁자가 너무 많아진 셈이다.


결국 앞으로의 50년은 지난 50년과는 다른 길을 요구한다. 남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빨리 베껴 쓰는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미래의 경쟁은 누가 새로운 원리를 먼저 발견하고, 인류의 교과서를 새로 쓰는가의 싸움이 될 것이다. 바로 여기서 기초과학이 핵심이 된다.


다음 세대를 위한 지적 기반


한국도 선도형 전략으로의 전환 필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해 왔다. 지난 20년 동안 기초과학 예산을 꾸준히 확대했고, 그 결과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논문 수와 피인용 상위 1% 연구자 등 양적 성과 역시 급증했다. 연구 규모만 놓고 보면 한국은 이미 과학대국의 틀을 갖춘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양적 성장이 질적 도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과학을 뒤흔든 힉스 보손, 중력파,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 mRNA 백신 등의 성과는 몇몇 천재의 두뇌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기초과학 역량이 만든 성취였다. 한국은 아직 이렇게 ‘문명을 바꾸는 발견’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정책의 조정을 넘어서는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기초과학의 특성에 부합하도록 제도적 환경을 재설계해야 한다. 기초과학은 본질적으로 장기‧고위험‧불확실성 연구다. 그러나 한국의 연구 제도는 여전히 단기 성과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연구자들은 3~5년 단위의 과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성과를 입증해야 하고, 잦은 평가와 행정 부담으로 인해 근본적 질문에 몰입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초과학이 요구하는 느리고 깊은 탐구, 쓸모를 입증하지 않아도 되는 연구가 정착될 수 없다. 따라서 연구자들이 한 질문에 장기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지원, 실패를 감점이 아니라 탐구 과정으로 인정하는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현대 과학의 핵심인 국제 대형‧공동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힉스 보손을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중력파를 검출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 블랙홀 이미지를 만든 사상수평선망원경(EHT) 같은 프로젝트는 수천 명이 협력하는 거대한 플랫폼 위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한국은 지리적으로 세계 과학계의 중심에서 멀고,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일 만한 유인도 부족하다. 이 제약을 극복하려면 연구자들의 기본적인 처우를 맞춰 주는 정도로는 어렵다. 선진국보다 파격적인 수준의 연구 자유, 생활환경, 초기 연구비, 정주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대형 과학 프로젝트는 국가 간 파트너십에서 이뤄지는 만큼, 정부가 정식 출자와 공동운영에 참여해 국제 연구 플랫폼의 구조적 일부가 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한국의 지식 생산이 세계적 흐름 속에서 연결된다. 연구자들 또한 자연스럽게 글로벌 협력 생태계로 진입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bul-pho-2008-094.jpg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국제협력을 통한 대형 입자물리 실험을 주도하는 곳이다.


기초과학은 국가의 시간을 길게 설계하는 일과도 같다. 산업과 기술은 흐름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계를 설명하는 새로운 원리는 한 번 등장하면 세기를 관통한다. 국가가 기초과학에 투자한다는 말은, 곧 다음 세대가 의지할 지적 기반을 미리 세운다는 뜻이다. 이 기반이 깊을수록 국가는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미래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미래의 한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쟁이 아니라, 더 깊은 축적이다. 우리는 세계의 기준을 따라가는 나라에서 벗어나, 세계가 따라오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지식 강국이자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다. 기초과학은 그 길을 열어주는 가장 확실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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