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안 좋은 날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관통하는 보편의 진리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만큼은 그 보편성에서 한 발 벗어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일만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운이나 징조를 믿지 않는다. “이 정도면 대운이 든 거 아니야?”라고 하는 운명론자를 멀리하고, 조상님의 돌보심 같은 가르침은 찌라시 취급한다. 그보다는 잘된 일은 이유를 찾고, 안 된 일은 구조를 따진다.
그럼에도 2025년 앞에서는 이런 태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삶의 정체성은 세 갈래로 나뉜다. 아빠, 회사원, 그리고 작가. 보통은 이 중 하나만 잘 흘러가도 “올해는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할 텐데, 올해는 셋이 동시에 좋은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그게 기쁘기 이전에 좀 낯설다. 인생이 이렇게까지 한쪽으로만 관대해도 되는 건가 싶어서.
올해 가장 고마운 일은 딸아이가 건강했다는 사실이다. 이건 정말로 다른 어떤 성과와도 비교가 안 된다. 대단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일도, 책이 잘되는 일도, 아이가 아프면 그날로 의미를 잃는다. 삶의 우선순위는 그럴 때 놀랄 만큼 단순해진다.
딸은 올해 감기에 몇 번 걸렸고, 놀다가 손에 가시가 박힌 적도 있었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길 만한 병원 방문은 거기까지다. 지금 한 해를 되짚어 보면서도, 특정 병원의 이름이나 병동의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딸의 건강 상태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
요즘 딸을 보면 쑥쑥 자라는 게 느껴진다. 곧 만 60개월, 키 115cm에 몸무게 25kg. 아빠의 유전자를 그대로 복붙한 우량아 하드웨어다. 문제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초등학생으로 본다는 점이다. 유원지나 식당에서 딸을 한 사람 요금으로 계산하려 할 때, 나는 종종 억울해진다. “아니에요, 얘는 아직…”이라는 말에 괜히 힘이 들어간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납세자가 된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졌다. 이제는 아빠와 말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대충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말도 꼭 한 번 더 묻고, 설명이 흔들리면 바로 짚어낸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읽기와 쓰기가 있다. 한글을 제법 읽고 쓰기 시작하면서 말의 표면뿐 아니라 맥락까지 건드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글자를 읽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다가도, 곧 긴장이 된다. 이제는 말을 듣는 상대를 넘어, 말을 검증하는 상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관계의 단계가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결정적인 장면은 어린이집 크리스마스 공연이었다. 작년에는 연습 때는 곧잘 하다가 본 공연에서 몸이 얼어붙었다. 음악이 흐르는데도 거의 움직이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갔다. 아내와 나는 그때도 아이를 다독였지만, 무대 위에 멈춰 있던 그 장면은 오래 남았다.
올해 공연은 달랐다. 딸아이는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자리를 잡았고, 음악이 나오자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중간에 한 박자 늦은 순간이 있었으나 멈추지 않고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공연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았다. “응, 재밌었어.” 대신 아내와 나는 집에 와서 영상을 여러 번 다시 봤다. 작년에는 한 자리에만 서 있었던 아이가 올해에는 계속 다른 위치에 있었다. 그 차이가 이 녀석이 보낸 1년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회사 이야기를 하자면 문장 톤이 바뀐다. 아빠의 세계가 감정과 체온이라면, 회사원의 그것은 숫자와 문서라서다. 올해 내가 맡은 가장 큰 미션은 상위 부처인 과기정통부가 시행하는 연구사업평가 대응이었다. 지난 5년의 연구성과를 실적보고서로 작성해 제출하고, 평가위원들의 질의에 디펜스하는 일이다.
평가위원들은 대개 명문대 교수님들로 구성된다. 질문의 결은 국정감사 찜쪄먹을 정도로 날카롭다. “이 돈이 왜 필요했습니까?”, “이 성과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독일 막스플랑크협회와 비교해 뭐가 더 낫습니까?” 말하자면, 돈줄을 쥔 쩐주에게 “우리는 계속 투자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를 증명하는 일이다. 지난 5년간 우리 연구소에서 쓴 연구비만 1조 5천억 원이 넘는다. 웬만한 대학 캠퍼스 하나를 지을 수 있는 돈이다. 연구소든 회사든, 이 정도 예산이 투입된 사업의 평가는 조직의 생존과 직결된다. 그래서 이 업무에는 보통 전략기획부서 전체가 달라붙는다. 외부 컨설팅 용역도 쓰는데, 보고서 제작에만 1억 5천만 원 안팎이 든다.
그런데 올해 나는 이걸 혼자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부서장은 해외 파견을 가버렸고, 동료들도 도움을 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부 용역 따위는 꿈도 못 꿨다. 결국 “그럼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해버렸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노동의 이야기다. 실적보고서, 발표자료, 증빙자료, 답변자료, 지적사항 개선계획, 그리고 다음 5년의 연구사업계획서까지 줄줄이 만들었다. 다 합치면 거의 1,000페이지쯤 된다. 이 정도면 문서가 아니라 생물이다. 나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어떤 종류의 괴생명체.
그 괴생명체와 씨름하는 동안 지인들이 물었다. “그게 혼자서 가능한 일이야?” 가능한지 아닌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올해만큼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혼자 일하는 편이 오히려 편하다. 요즘 회사에서는 어떤 과업이 주어지든 “인력이 부족해서…”라는 말부터 하는 게 국룰 같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홍대병 환자인 나는 그 말부터 꺼내는 게 싫었다. 마 경력 15년 차 책임급의 가오가 있다 아입니까. “하려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냥 했다.
물론 그 과정은 우울할 만큼 반복적이었다. 숫자 확인, 논리 구축, 문장 쓰기, 근거 자료 붙이기, 질문 예상하기, 답변 만들기, 다시 숫자 확인. 이 일을 무한 반복하다 보면, 마치 내 삶이 ‘파일명_최종_v7_진짜최종_최최종’ 따위의 이름으로 저장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6개월의 대장정이 끝나고, 결과를 기다렸다. 나는 내심 기대했다. “이거 잘하면 우수가 나올 것도 같은데…” 그것은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 9회 말과도 비슷한 긴장감이었다. “궁내 채고에 싱카볼 투슌데…” “자 오다 증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 주면 좋은데요~ 자 투나씽” (딱!) “유격수 잡아서!” “어어! 으아앍! 뜨블플레이, 뜨블플레이! 고앵민, 고앵민! 아아앍!! 우승이에여!! 증대현!!” 그렇게 결과가 정말 ‘우수’로 나왔다. 2011년 우리 연구소가 생긴 뒤, 정부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이 성과는 회사의 것이었지만 내게도 의미가 있었다. 작가로서 책을 쓰면서도, 회사 업무 또한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공공기관에는 특유의 기류가 있다. 성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상하고 왜곡된 평등의식. 누군가 튀면 일단 까내리고 보는 분위기. 나도 예외일 수 없음을 느꼈다. 특히 『최소한의 과학 공부』가 나오고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일은 안 하고 자기 챙길 것만 챙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매우 빡쳤었다.
그 말에 대꾸하고 싶었다. 물론 무의미한 말싸움 말고, 문서와 결과라는 세련된 방식으로. 요컨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그럼, 너도 이 업무 혼자 해서 우수 등급 받아보든지” 어쩌면 이렇게 오기가 동반된 일이라서 결과가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로서의 2025년은 성과가 분명한 해였다. 미뤄두었던 『연구소의 승리』를 11월이 다 되어 마침내 출간했기 때문이다. 시작한 지는 오래됐고, 중간에 속도가 늦어진 시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럼에도 소처럼 쓰고 또 써서 끝까지 마무리했다. 이 한 권으로 올해의 작가 생활은 충분히 설명된다.
책이 나온 뒤 반응도 좋았다. 주요 언론에 서평 기사가 여러 편 실렸고, 국회도서관 ‘금주의 신간’에도 첫 번째로 소개되었다. 개인적인 작업이 공적인 평가의 테이블 위에 올라갔다는 뜻이다. 작가에게 이 정도면 분명한 성과다.
다만 이 성과가 특별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한 권이 잘 되었다는 점보다 중요한 것은, 같은 일을 다시 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는지다. 그래서 2025년 『연구소의 승리』는 잘된 책이기보다, 계획한 작업을 끝까지 완성한 책으로 정리해두려 한다.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에는 그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
올해 작가로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브런치에서 한 글쓰기 세미나였다. 새로 쓸 글쓰기 책을 준비하며, 될지 안 될지 불확실한 상태로 일단 저질러 보았다. 그럼에도 3기에 걸쳐 22명의 작가님이 함께해 주었다. 그중에는 나보다 뛰어난 분들도 있었고, 덕분에 나 역시 많이 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3기 세미나다. 미국과 캐나다에 계신 두 작가님이 함께했다. 시간대가 맞지 않아 운영이 쉽지 않았다. 보통 이런 난관이 있으면 결과도 흐지부지해지기 마련인데, 결과적으로 3기는 가장 많은 걸 남겼다. 1기, 2기가 토론 중심이었다면 3기는 강의에 가까웠다. 그리고 작가님들의 글에 내가 직접 피드백도 드렸다. 원래 내 스타일대로, 가감 없이, 어떻게 해야 글이 나아질지를 말했다. 친절한 말로 둥글게 감싸기보다는, 정확히 어디가 문제인지 짚고, 어떤 방향으로 고치면 좋을지 제안했다. 물론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그걸 잘 알아서 조심하려고 했는데, 그렇다고 또 생겨 먹은 성격상 완전히 둥글어지지는 못했다.
세미나가 끝난 뒤, 두 분이 나란히 등단했다. 고운미소 작가님은 미주한국문인협회 2026년 봄호 신인상을 받았고, 이수 E Soo 작가님은 캐나다문인협회 신춘문예에 입상했다. 물론 세미나 몇 번 했다고 안 될 글이 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내 시간과 노력이 누군가의 성과와 같은 시기에 맞물렸음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이수 E Soo 작가님은 감사하게도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보내주셨다. 아무리 메일과 SNS의 시대라지만, 카드라는 물성이 주는 감동이 있다. 텍스트화된 메시지는 건조하지만, 종이의 두께와 손글씨의 흔적에는 따뜻함이 스며들어 있다. 작가님은 등단을 알리는 브런치 글에서도 내 이름을 언급해 주셨다.
이 장면들을 끝으로 올해는 마무리되었다. 책은 책대로 자리를 찾았고, 세미나는 세미나대로 깊게 남았다. 둘 다 작가로서 거둔 성과였지만, 방향은 달랐다. 하나는 결과였고, 다른 하나는 과정에 가까웠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여러 일이 겹치면서 잘 흘러간 해였다. 그 모든 결과를 내 힘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었고, 그 덕을 본 부분도 크다. 그래서 이 한 해를 돌아보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다행’이다. 그저 해야 할 일을 제때 끝냈고,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정도로 마무리하면 충분하다.
아빠로서의 일상도, 회사에서의 업무도, 글 쓰는 작업도 크게 어긋나지 않고 한 해를 지나왔다. 그래서 올해 발행하는 마지막 브런치 글에는 이 문장을 꼭 남기고 싶다.
고마웠어, 나의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