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만나요

1월 15일 <윤고은의 EBS 북카페> 출연

by 배대웅

저는 흔히 말하는 라디오키드였습니다. 지금은 음악 듣는 일이 쉬워져서, ‘어디서 무엇을 들었는지’가 기억에 잘 남지 않지요. 그런데 1990년대의 음악 감상은 장소와 시간, 그리고 매개체가 분명했습니다. 제게 그 매개체가 바로 라디오였지요. 당시 학생 용돈으로는 카세트테이프나 CD를 마음껏 사기 어려웠습니다. 반면 라디오는 하루 종일, 꽤 괜찮은 음악을, 그것도 무료로 틀어주었지요. 그때는 가성비라는 단어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라디오는 단연 최고의 가성비 취미였습니다.


특히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는 밤 시간대는 라디오키드의 황금시간이었습니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교실의 소음과 시험 걱정을 잠시 밀어내고, 다른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으니까요. 제 기억에 가장 먼저 애청한 프로그램은 <박소현의 FM데이트>였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생기가 있는 박소현의 목소리가 공부할 때 잘 어울렸습니다. 요즘은 아이돌의 전자음악으로 방송을 채우고 있지만, 그때의 박소현은 고등학생의 밤공부를 책임져주던 꽤 근사한 큐레이터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이소라의 밤의 디스크쇼>, <신해철의 FM 음악도시>가 이어졌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라디오는 점점 진지해졌고, DJ의 목소리도, 선곡도, 사연도 더 어른스러워졌습니다. 그 시간대의 라디오는 더 이상 배경음악이 아니라, 고백과 고민 상담이 오가는 작은 세계에 가까웠습니다. 세상일이라고는 아직 겪어보지 않은 학생이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괜히 한 발 앞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어요. 학교에 안 가는 주말에는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를 듣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팝송을 유난히 많이 틀어줬거든요. 막 팝음악에 관심을 갖던 제게는 일종의 교과서 같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라디오키드 인생의 정점은 역시 <정지영의 스위트뮤직박스>였습니다. 군대에서 알게 된 심야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일주일에 서너 번은 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위병소 근무를 서던 제게 그 두 시간은 유일하게 사적인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고참들 없이 혼자서 근무를 섰고, 그래서 무려 ‘독서’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거든요. <정지영의 스위트뮤직박스>는 그 소중한 시간의 동반자였습니다. 정지영 아나운서의 낮고 지적인 음성,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톤, 그리고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선곡. TV와 라디오를 통틀어 제가 가장 열성적으로 들었던 프로그램이었을 겁니다. 글솜씨가 조금만 더 있었어도 사연을 보내봤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쉽습니다.


제대와 함께 그 시간도 끝났습니다. 학교로 돌아오자 밤은 더 이상 조용하지 않았고, 하루는 늘 다음 일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학생회에서 일하고,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미래를 걱정하다 보면, 밤의 라디오를 기다릴 여백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라디오를 ‘끊었다’기보다는, 어느 날 문득 찾지 않게 된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연스럽게 라디오키드였던 시절에서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마치 좋아하던 노래를 여전히 기억은 하지만, 굳이 다시 재생하지는 않는 것처럼요.


그런데, 그런 제가 요즘 다시 라디오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청취자가 아니라 출연자로 말입니다.


얼마 전 <윤고은의 EBS 북카페>라는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초대석 코너에 나와 제 책 『연구소의 승리』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EBS 하면 저는 아직도 수능 강의부터 떠오릅니다. 라디오 방송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담당 작가님과 통화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가, 잠깐의 정적과 함께 미묘한 당황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고요. 진행자가 소설가 윤고은이라고 들었을 때는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싶어서요. 어쨌든 책 덕분에 팔자에 없던 방송국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1월 15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윤고은의 EBS 북카페 - 목요 초대석>에서 『연구소의 승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보이는 라디오로도 진행된다고 합니다. 일과 시간대라 쉽지는 않겠지만, 브런치의 작가님들이 같이 들어주시면 더없이 힘이 될 것 같아요. 혹시 본방을 놓치더라도, 보이는 라디오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간다고 하니 그걸로 보셔도 됩니다.

이렇게 보이는 라디오로도 진행됩니다.


라디오키드였던 제가 그 세계에 직접 들어가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저 어두운 교실이나 위병소에서, 누군가의 목소리와 음악을 빌려 하루를 버텼을 뿐이니까요. 그런데 이제 그 매체를 통해 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제 책 이야기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브런치의 작가님들과도 꼭 함께 하고 싶습니다. 1월 15일 오후 1시, EBS 라디오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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