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2년 1월 19일 자 대전일보 과학이야기 칼럼에 기고한 것이다. 늘 윗분들 칼럼만 대신 쓰다가, 어쩌다 기회가 되어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쓰게 됐다. 브런치에도 올려본다.
기초과학에 투자하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초과학 예산은 10여 년 전부터 정권과 무관하게 꾸준히 늘고 있다. 과거 큰 논란이 벌어졌던 4대 강 정비나 문화융성 사업을 떠올려보자. 그에 비하면 기초과학 투자는 범국민적 동의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정부별 기초연구비 투자 추이. 정권이 두 번 바뀌어도 꾸준히 늘고 있다.(출처 : News1)
그런데 기초과학의 어느 부분에 어떤 방식으로 투자할지를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기초과학이 불확실성과 우연성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학문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발견의 예측이 어렵고, 발견했다 한들 그것이 뭘 의미하고 어디에 쓰일지 당장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기초과학의 학문 범주 자체도 급속히 커지고 있다. 그만큼 국가가 예산 계획을 구체화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투자는 과학자들의 호기심 해결에 지원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자연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인류의 삶을 바꾼 발견이 나온 경우들이 많다. 빌헬름 뢴트겐의 X선이나 마이클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가 대표적 예다. 이것들은 과학자들의 호기심 어린 작은 실험이 현대 기술문명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쓸데없거나 황당해 보여도 과학자들의 독특한 아이디어에 많이 지원하면, 실생활에 유용한 성과를 얻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는 기초과학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투자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학적 아이디어에 비해 쓸 수 있는 예산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자 나라라 해도 모든 아이디어에 무한정 투자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초과학을 특정한 목적과 결부시키자는 논리도 나온다. 응용 효과가 큰 분야를 먼저 정하고 그에 필요한 기초과학을 연구하자는 것이다. 최근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이 그 사례다. 화이자, 모더나 등의 mRNA 백신은 첨단 생명과학 연구의 총체이나, 결정적으로 팬데믹이라는 상황적 요구에 대응하여 만들어질 수 있었다. 즉 뚜렷한 목적이 기초 지식을 혁신적 제품 개발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 다만 이 논리에도 맹점은 있다. 기초과학의 넓고 탄탄한 토대가 없으면 새로운 기술도 잘 개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로 든 mRNA 백신만 해도, 수십 년간 축적된 RNA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개발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더나의 mRNA 백신 개발은 수십 년 축적된 기초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가능했다.(출처 : IBS)
최근에는 기초과학의 대형화에 따른 투자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컨대 입자물리학이나 천문·우주 연구는 고도의 기술이 탑재된 대형 실험시설을 구축하고 실험을 할 연구자 집단도 확보해야 한다. 이는 기초과학과 공학 등을 망라하는 복잡한 체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며 융합을 만들어낸다. 이미 현대과학의 최신 지식은 이러한 빅 사이언스, 팀 사이언스가 주도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기존과 차원이 다른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분야에 투자를 결정하면 여타의 기초과학 분야들에도 재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고려해야 한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는 총길이만 27km에 달하는 초대형 연구시설이다.(출처 : CERN)
그렇다면 어떻게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할까?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국가별로 발전 단계, 재정 상황, 연구 풍토, 인재 경쟁력, 인프라 규모 등을 고려하여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긴 안목에서 최대한 다양한 연구자들이 뜻을 펼칠 수 있게 지원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