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2년 5월 11일 자 대전일보 과학이야기 칼럼에 기고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 쓰기로 한 세 편의 칼럼 중 마지막이다. 칼럼을 쓸 때마다 느끼지만, 긴 글보다 짧은 글이 쓰기가 훨씬 어렵다.
과학자들은 왜 과학을 연구할까? 세 가지 목적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적 호기심 충족, 학자적 명성 제고, 경제적 부 축적. 물론 이외의 목적들도 있겠으나, 이 세 가지가 과학 연구의 중요한 동인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그중 지적 호기심 충족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물리학자다.19세기 영국의 흙수저 출신이었던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유년 시절부터 제본소에서 일해야 했다. 하지만 지식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도 커서 제본할 책을 읽고 혼자 실험을 하며 과학을 연구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에 불과했으나, 수년간의 진지한 노력 끝에 인류의 삶을 바꿀 업적을 쌓았다. 1831년 자석과 금속 코일을 활용해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패러데이는 당시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전기와 자기의 연관성을 규명해 하나의 이론으로 종합했다. 이는 현대 물리학을 뒤흔든 맥스웰 방정식과 특수상대성이론이 유도되는 계기가 된다. 또한 현대 전력공급 시스템의 핵심인 발전기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기도 했다. 이전까지 자석은 나침반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러다 패러데이에 의해 전류를 생성하는 도구로서 그 위상이 달라진다. 이로써 현대 인류문명의 핵심 기반인 전기의 자유로운 생산과 활용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전기가 없는 현대 인류문명은 상상할 수도 없다. 2019년 뉴욕 맨해튼에서 일어난 대정전은 4시간 동안 7만여 가구에 피해를 입혔다.
패러데이는 늘 지식을 갈구하면서 평생 새로운 발견에 천착한, 천생 학자였다. 전자기 유도 현상도 그저 자연의 신비를 밝히려는 순수한 탐구의 소산이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정립한 발전기의 원리가 인류 삶의 질을 크게 높이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죽고 한참 지난 뒤, 니콜라 테슬라가 교류 전력 공급 시스템의 이점을 보여 그의 발견이 본격적으로 실용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명예와 돈을 바라지도 않았다. “지적인 노력에 대해 상을 준다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며 기사 작위와 왕립협회장직을 거절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오직 ‘앎의 의지’야말로 패러데이가 기억상실과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말년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은 목적이자 원동력이었다.
패러데이는 오늘날에도 영국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과학자다. 여기에는 연구업적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한 그의 순수한 목적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다. 물론 그렇다고 패러데이를 기준으로 다른 과학자들을 가치판단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과학자들은 저마다의 목적과 이유에 따라 연구를 한다. 그들 모두가 패러데이처럼 살 수도 없을뿐더러, 그것만이 옳은 일인 것도 아니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순수한 학문 탐구에만 천착한 과학자로, 오늘날에도 많은 존경을 받는다.
다만 과학의 가장 본질적인 목적에 집중하여 위대한 성과를 이룬 그의 삶은 되새겨 볼 가치가 있다. 특히 오랫동안 과학 연구가 국가발전의 수단으로 기능했던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우리 정부의 과학 투자 규모는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으나, 이면에는 여전히 두 가지 목적이 존재한다. 이걸 지원해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와 ‘얼마나 돈이 될까?’다. 이런 환경에서는 과학자가 지적 호기심에만 몰입하기 어렵다.
우리도 패러데이와 같은 과학자를 바란다면, 과학자들이 새로운 발견이라는 과학의 근원적 목적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엉뚱해 보이거나 당장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워도, 빅퀘스천에 도전하는 연구들을 장기·안정 지원하는 체계를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고유한 질문에 대한 해결에만 집중하는 과학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위대한 과학자는 그중에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