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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Nov 24. 2022

한국의 과학기술 거버넌스 (1)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개념

과학기술정책에서 거버넌스(governance)처럼 자주 쓰는 개념도 없다. 거버넌스는 연구개발의 자원배분, 주체형성, 상호협력, 성과파급 등을 이루어지게 하는 기본체계다. 그만큼 과학기술정책의 핵심 범주를 구성한다. 정권이 바뀌어 과학기술정책의 기본방향을 새로 정할 때마다 가장 먼저 거버넌스 개편부터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거버넌스의 의미가 사용하는 사람과 맥락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거버넌스 개념이 형성된 역사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어서, 과학기술정책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국가정책의 핵심 전제는 무엇보다 보편성과 객관성에 있다. 따라서 정책의 개념적 기초가 불명확하다면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과거 신한국, 신지식인, 녹색성장, 창조경제, 4차 산업혁명 등의 역점 정책들이 그랬다. 뭔가 있어 보이고 그럴듯한 수사를 앞세웠으나, 기초 개념에 대한 보편적 합의 부족으로 동력을 키우지 못했다. 거버넌스도 마찬가지다. 이 개념이 대중화된 지는 수십 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 물론 거버넌스는 그 자체로 매우 유용한 개념이다. 엄밀한 정의만 선행된다면, 이 개념 도구를 적용해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국가정책의 작동 양상을 한눈에 포착할 수 있다.

     

이 글(시리즈)의 목적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전개 과정을 특징화하는 것이다. 즉 거버넌스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거쳐온 역사적 면모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 연구의 발전 궤적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일 수 있다. 특히 과학기술이 시대정신, 정치철학, 국가발전전략 등 사회와 형성하는 관계의 역동성에 초점을 두어 흥미롭게 조명하려 한다.



     

거버넌스 개념의 사회정치적 배경

     

우선 거버넌스의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거버넌스라는 용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사회에 대한 통치 방식을 의미한다(Pierre & Peters, 2000). 그것은 사전적으로도 통치, 관리를 뜻하며, 이 정의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최근 학계, 언론, 시민사회 등에서 쓰는 거버넌스 개념은 넓은 의미의 통치로 환원할 수 없는, 특수한 의미 맥락을 갖는다. 후술하겠지만 이때의 거버넌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국가-시민사회 관계를 재규정하는 새로운 관리양식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렇다면 거버넌스 개념이 무엇을 계기로 이런 특수한 의미를 부여받았는가? 여기에는 나름의 사회정치적 배경이 존재한다.

     

최근 쓰이는 거버넌스 개념은 1970년대 세계 자본주의 변동과 관련이 깊다. 1970년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자본주의 황금기(Golden Age of Capitalism)가 끝나는 시기다. 이 무렵 자본주의는 외부적으로는 오일쇼크, 내부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이중고에 빠져 있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 경기 침체, 실업이 함께 위기를 가중하는 악순환 속에서 기존 케인스주의 처방은 통하지 않았다. 경제위기는 다시 정치의 위기를 유발하고, 그 결과 복지국가를 만든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계열 정부들이 다수 실각했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보수정부의 집권이 이어진다. 1979년 영국 보수당, 1981년 미국 공화당, 1982년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이 대표적 예다. 이 정부들은 집권 직후 위기 대응을 위한 전면적 혁신을 선언한다. 이는 특정 정책들에만 머무르지 않고, 30년 넘게 이어진 복지국가의 철학과 시스템을 재검토했다는 점에서 국가발전전략의 전환이라 할만했다. 흔히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이 혁신 패키지는 사회보장예산 축소, 재정 건전성 확보, 자본 자유화, 공공부문 민영화, 시장경쟁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주도했다. 사진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두 보수정치인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포스터로 풍자한 것.

거버넌스도 신자유주의적 위기 대응 패키지의 일부로서 등장했다. 우선 비대화·비능률화된 전통적 국가 역할을 재조정한다는 뚜렷한 실천적 목적을 갖는다. 이에 따라 국가의 일부 기능을 시민사회(또는 시장)로 이전한다는 새로운 계약, 또는 파트너십으로서 거버넌스가 재정의되었다. 즉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 진행된 정치경제 재구조화, 행정 패러다임 변화와 맞물리며 현재적 의미를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외 학자들도 이러한 배경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우선 잰 쿠이만은 거버넌스의 등장 원인을 국민국가 중심의 통치체제 약화에서 찾는다(Kooiman, 2000). 그에 따르면 세계화, 정보화, 분권화의 진전으로 국민국가 세력은 약화된 반면, 통치의 대상이었던 시민사회와 지방정부 등이 국가운영의 주체로서 부상했다. 이는 국가 중심의 단원적 통치 양식이 자율, 협치, 조정을 강조하는 다원적 분권 양식으로 변화했다는 논지로 이어진다.

     

김석준 등도 국가의 축소와 시민사회의 부상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쿠이만과 유사하다. 이에 따르면 거버넌스는 대의민주주의 정부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김석준 외, 2000). 이러한 관점은 정치를 사고하는 데 있어 기존의 전통적 체계를 벗어나는 시민사회 중심 접근을 수용한다. 즉 거버넌스는 시민사회(기업, 시민단체 등)와 국가(정부, 공공부문 등)의 상호협력에 의해 불확실성과 변동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국정운영의 틀로서 현대자본주의의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대안 모델이 된다.

     

한편 김정렬은 1970년대 이후 거버넌스의 등장 요인을 7가지로 정리한다(김정렬, 2001). 이는 ① 1970년대 경기침체로 인한 서구 국가들의 재정 위기, ② 1980년대 마거릿 대처(영국)와 로널드 레이건(미국) 집권으로 촉발된 시장주의와 정부를 사회적 문제 그 자체로 인식하는 경향, ③ 세계화 및 지방화 추세로 인한 국가의 통제력과 주권 손상, ④ 국가의 정책실패, ⑤ 1990년대 이후 조직화된 다양한 행위자들의 출현과 정책결정 네트워크의 전문화, ⑥ 참여민주주의, 환경, 젠더 등 새로운 이슈와 복잡성 증가, ⑦ 전통적 책임성의 변질 등으로 요약된다.



     

학문 분야별 정의

     

이렇듯 거버넌스의 등장 배경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통된 합의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개념이 사용되는 현실의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다. 이러한 개념적 혼란 또는 남용을 지적하는 연구도 있을 정도다(임의영, 2004, 최성욱, 2004). 우선 분야별로는 다음과 같이 쓰이고 있다.

     

경영학에서는 주로 지배구조를 의미하는 기업 거버넌스로 쓰인다. 최근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 요소로서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경영이 각광받으며 이러한 용례가 더 늘었다. 기업의 가치 측정은 회계·재무 관점의 수량적 판단에 의존해왔으나, ESG는 기업의 책임이라는 정성적 판단 기준에서 접근하는 시도다. 여기서 거버넌스는 특히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지배구조를 의미한다. 즉 다분히 가치 판단적 함의를 갖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ESG가 각광받으면서, 행정학이나 정치학보다 경영학에서 거버넌스 개념이 더 활발히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행정학에서는 전통적 행정에 경영학적 기법을 도입한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신공공관리는 복지국가의 관료적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시장지향 관리 패러다임으로서 도입되었다. 그것은 정부의 주요 기능을 시장이 대체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요약된다. 즉 수직적 통치보다는 수평적 서비스, 전통적 국가권력보다는 현대적 공공서비스의 관점에서 행정을 사고한다. 이에 따라 정부 기능 및 규모 축소, 성과주의, 행정관리의 책임성, 고객지향적 서비스 등에 중점을 둔다(강제상·임영제, 2002). 이때의 거버넌스는 실용적인 맥락에서, 국가가 새롭게 제공하는 대국민 서비스 전략으로 이해된다.

     

정치학과 사회학의 정의는 좀 더 추상적이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거버넌스를 사고한다. 현대에 이르러 국가 역할의 다운사이징 필요성이 제기되고, 정부 못지않게 전문화된 시민사회의 정책 엘리트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핵심 전제다. 따라서 이때의 거버넌스는 국가와 시민사회(또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사이의 상호 협력, 역할 보완 등으로 개념화된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흔히 쓰는 협치(協治) 개념도 넓은 맥락에서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학문적 의미들이 존재한다. 경제학에서는 시장과 비시장적 제도를 아우르는 정치경제모델로 거버넌스를 지칭한다. 또한 국제정치학에서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 개념을 쓰기도 한다(김의영, 2012).



     

학자별 정의

     

학자들이 사용하는 거버넌스 정의도 다양하다. 정치학에서 거버넌스 이론을 대표하는 R. A. W. 로즈는 현재까지 가장 널리 인용되는 정의를 제시했다. 그는 거버넌스가 통치 활동(또는 과정), 정돈된 규칙의 상태, 통치자, 사회의 통치 방법(혹은 시스템)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Rhodes, 1996).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정의도 이와 유사하다. 그는 거버넌스가 규칙을 제정 및 시행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의 능력이라고 본다. 이러한 능력은 관료집단의 역량과 자율성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Fukuyama, 2013).

    

이러한 정의들은 정치와 행정의 제반 영역에 거버넌스 개념을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1970년대 이후 거버넌스가 각광받은 사회정치적 배경, 즉 국가의 규모와 기능 감축이라는 실천적 함의를 포착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그러므로 전통적 정부 기능의 민간부문 이전이라는 관점에서 거버넌스를 바라보는 논의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이 피터스와 존 피에르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정의는 앞서도 언급한 현대국가의 위상 변화를 반영한다. 따라서 거버넌스는 외부의 행위자들과 전략적 협력을 통해 정부 능력을 높이는 과정이라고 본다(Peters & Pierre, 1998). 게리 웜즐리와 라킨 더들리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그들은 가치 판단의 관점에서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를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사회의 모든 주체가 책임을 공유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할 때 올바른 거버넌스가 성립한다(Wamsley & Dudley, 1995).

     

국내 학자들의 정의도 분야와 주제에 따라 상당히 다양하게 제안된다. 이는 크게 기존의 통치양식, 새로운 조정양식, 협력 네트워크의 세 가지 접근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박희봉, 2016).

     

첫째는 기존의 통치양식과 유사하게 정부가 거버넌스를 주도하는 핵심 행위자라고 보는 접근이다. 이에 따르면 정부 및 산하기관들의 운영 방식(김판석·홍길표·김완희, 2008),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 간 관계(이주헌, 2013), 정부가 민간기관을 포용하거나 시민단체가 정부 활동에 참여하는 행위(강현철·서순탁, 2012, 조성은, 2014)가 모두 거버넌스로 정의된다.

     

둘째는 정부가 공공목적을 조정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접근이다. 이는 앞서 거버넌스를 정의한 해외 학자들의 관점과도 맞닿아 있다(Kooliman, 1993, Pierre & Peters, 2000). 이에 따르면 거버넌스는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목적의 달성 또는 사회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제라고 정의된다(이명석, 2002, 장현주, 2006, 정수용·이명석, 2015).

     

셋째는 정부 외부의 행위자들과 협력하는 네트워크라는 접근이다. 이때의 거버넌스는 다양한 주체 또는 이해관계자들의 자율적 의사결정체계(유재원·소순창, 2005)이거나, 정부와 민간기관 및 시민단체의 상호작용(김태운, 2012)으로 개념화된다.



    

과학기술의 세 가지 특징

     

이제까지 검토한 거버넌스 정의를 종합하여 과학기술 거버넌스 개념을 구체화할 수 있다. 다만 그 전에 이 글에서 다루는 과학기술의 핵심 특징들을 추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앞서 살펴봤던 거버넌스의 다양한 정의와 접합할 수 있는 논리적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만약 두 개념이 명확한 기준에 의해 연결되지 않는다면, 거버넌스의 일부 용례가 그러하듯, 이 글에서 사용할 과학기술 거버넌스 개념도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혼란을 피하려면 과학기술과 거버넌스라는 전혀 다른 두 개념을 하나의 맥락으로 조직하는, 의미의 연계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과학기술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로 과학기술은 국가적 규모의 과업이다.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개별 주체는 대부분 민간영역에 속하나, 집단으로서 이들에 대한 가장 큰 후원자는 역시 국가일 수밖에 없다. 물론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민간의 R&D 투자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과학기술 연구는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연구비 지원은 물론, 인재 양성, 제도 설계, 인프라 확충 등이 갖춰져야 하며 이를 중장기적으로 감당하는 것은 여전히 국가의 몫이다. 이는 과학이 점점 대형화, 집단화하는 현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국제공동연구가 빈번해졌지만, 그에 대한 재정 지원도 역시 국가가 주로 담당한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과학기술을 제도화하여 국책사업으로 육성한 것은 19세기 말 ~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국주의 경쟁, 세계대전, 냉전 등을 거치며 국가와 과학기술은 불가분의 파트너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과학기술 연구는 국가의 물적·인적·제도적 지원을 근간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로 과학기술은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이다. 오늘날 과학기술 연구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도 수년의 수련 과정을 거친 최고의 인재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고도의 기술과 고비용이 투입된 최첨단 시설·장비에 의해 실험이 수행된다. 여기서 다루는 지식의 성격 또한, 인류 지식체계의 최전선이라고 할 만큼 전문화된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도의 전문성은 과학기술 연구에 딜레마를 낳기도 한다. 즉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직접 나서서 수행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 연구는 필수적으로 국가와 민간 사이의 계약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존재하는 여러 연구비 지원제도나 정부출연연구소 등이 그러한 계약의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과학기술은 여러 복잡한 체계들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한 나라가 과학기술 연구를 수행한다고 할 때, 거기에는 어떤 요소들이 뒷받침되어야 할까? 과학자, 연구비, 연구소, 교육기관, 전문지원기관, 연구시설·장비, 중장기 계획, 평가·자문 그룹, 학문 커뮤니티 등 엄청나게 많다. 이러한 요인들이 유기적 체계를 이루고 정책적 일관성에 따라 운영되어야 비로소 과학기술을 연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요소들을 한꺼번에 기획·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컨대 몇 년을 주기로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의 재편 필요성이 반복 제기되는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과학기술 연구의 기본 조직체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가 쉽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결국 국가가 대규모 자원을 투입해서 정책과 제도를 확대한다 해도, 과학기술 연구가 필요로 하는 제 요인들을 전부 포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과 거버넌스의 개념적 접합

     

이러한 과학기술의 세 가지 특징을 전제로, 이와 부합하는 거버넌스 정의를 도출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거버넌스 정의를 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 거버넌스 개념의 정의 요약

국가적 과업으로서 과학기술의 목표는 연구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집약된다. 따라서 대규모의 자원 투입과 정교한 정책체계를 필요로 하며, 여기에는 국가의 주도적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국가의 과학기술 연구 과정에는 전문성과 복잡성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국가 자체가 이를 전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전문가 집단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거버넌스 이론은 이러한 협력 체계의 틀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치학과 사회학에서 규정하는 국가-시민사회 역할 분담을 기초로, 피터스·피에르와 쿠이만 등이 제시하는 공공목적 달성을 위한 사회적 조정 양식의 거버넌스 개념을 과학기술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화 작업에 따라, 이 글에서는 과학기술 거버넌스를 ‘과학기술 연구역량 강화를 위한 국가 기구와 시민사회 전문가 간 조직적, 정책적, 제도적 협력 체계’로 규정하고자 한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개념

위 도식에 의하면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핵심 주체는 국가의 통치 기구와 시민사회의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상호 협력과 역할 보완을 통해 과학기술 연구라는 고도로 대형화, 전문화, 복잡화된 활동을 수행한다. 이러한 협력의 프레임워크는 크게 조직 편제, 정책 입안, 제도 운영의 세 가지 층위로 구성된다. 조직 편제는 과학기술 연구를 직접 수행하거나, 이를 지원하는 집단적 실체를 구성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출연연구소, 과학기술 행정부처, 정부 지원을 받는 대학 또는 기업 연구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정책 입안은 과학기술 연구의 당면 과제 혹은 나아가야 할 목표와 방법을 논리화하는 과정이다. 정치권이나 싱크탱크 등에서 제시하는 미래 과학기술 담론과 정부가 수립하는 R&D 계획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제도 운영은 정책 목표의 달성을 뒷받침하는 법적, 재정적, 사회문화적 체계를 이행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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