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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Apr 07. 2023

그런 그에게 있어 슛 연습은 즐거운 것이었다

feat. 슬램덩크

책을 쓰고 있다. 내 브런치를 유심히 보시는 분들(아마도 한... 세 분쯤 되려나)은 아실 것 같다. 요즘 『사회 속의 과학 이야기』 매거진에 올리는 글들이 쓰고 있는 책의 초고다. 목표는 과학을 ‘이론’이 아닌 ‘관계’로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과학이 천재들의 두뇌에서 짠~ 하고 떠오른 것이 아닌, 사회와의 격렬한 상호작용을 통해 배태되었음을 보이고 싶다. 이 기획 의도를 최대한 다양한 관계들 – 역사, 철학, 종교, 정치, 산업 등 – 과 교차시키면서 드러내려 한다. 롤모델들도 있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콘셉트로, 장하석의 흥미로운 과학사·과학철학 소재들을 배치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꿈은 참 높다. 그러다 현실은 시궁창이 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어렵다. 일단 생업이 우선이라서 시간이 부족하다. 회사 업무를 마치면 가사와 육아도 해야 한다. 다 끝나면 밤 10시쯤 된다. 그때부터 새벽 3~4시까지 글을 쓰는 일상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곰처럼 미련해서 체력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도 젊을 때 이야기인가 보다.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10대 때 앓았던 알레르기성 비염이 30년 만에 도지고 있다. 계속 늘어지는 작업 속도도 마음을 초조하게 만든다. 이상적인 집필 작업을 그래프로 표현하면 직선으로 우상향하는 모양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작업은 계단식 그래프로 나타난다. 안 풀릴 때는 정말 징하게 아무것도 안 써진다. 그러다 뭔가 풀리면 겨우 몇 단락을 써 내려간다. 하지만 이내 또 벽에 부딪힌다. 책을 쓴다는 것은 이 과정의 무한 반복이다. 출판사에서 정해준 마일스톤은 이미 엉망이 되었다. 과연 목표대로 올해 안에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싶다. 예전에 좋아했던 밴드 언니네이발관이 당연하다는 듯 앨범 발매를 연기할 때마다 욕이란 욕은 다 했었다. 이제 아래와 같은 일기를 쓴 이석원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2017년 3월 21일     

화염방사기로
지금까지 녹음한 거 다
불태워 버리고
음악계를 떠났으면 좋겠다.


다루는 내용도 난해하다. 과학을 이론이 아니라 관계로 드러낸다는 것이 기획 의도지만, 그래도 이론을 건너뛸 수는 없다. 원래 구상했던 목차에는 양자역학의 세계관과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도 들어있었다. 하지만 문송한 나의 한계로 인해 포기해야 했다. 내용을 안다 해도 그걸 쉽게 풀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자꾸 꼬여가는 원고의 문장을 보며 내 공부의 얄팍함을 새삼 절감한다. 그나마 전공과 연관이 있는 역사적 사실이나 철학 이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책은 그 어떤 텍스트보다도 엄밀함이 요구된다. 그에 비해 내가 가진 지식은 듬성듬성하고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다. 그걸 메우고자 기본 사실 확인을 한 세월 하다 보면, 집필의 그래프는 다시 하염없이 긴 계단 모양으로 정체된다. 이 책을 분야로 보면 과학기술학(STS)으로 분류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STS는 비주류 학문이다. 역사도 짧고 연구자도 적다. 따라서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영어 논문이 튀어나온다. 토익 시험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요즘은 왜 진작 영어 공부를 열심히 안 했는지 한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쓰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변태인가?). 그간 정말 많은 글을 써왔다. 그러나 대부분 남의 이름으로 나갔거나 누가 썼는지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글들이었다. 이제야 처음으로 나는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쓴다. 글에 이름을 건다는 것은 곧 문장에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다. 나는 이 책이 우연한 계기로 선물처럼 와준 기회라는 것을 안다. 어쩌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을 쓰는 목적은 단 한 가지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 책을 다 쓰고 한참 지난 뒤에도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이상은 못 써"라고 말하는 것.

     

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전국대회 지역예선 도중 북산은 가능한 모든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풋내기 강백호에게 슛 특훈을 시킨다. 그때까지 강백호는 레이업과 덩크 말고는 득점이 불가능했던, 반쪽짜리 선수였다. 강백호는 며칠 동안 슛을 몸에 익히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한 마디 불평 없이 소화해 낸다. 슛 훈련이 자신이 진정한 농구선수로 성장해 가는 과정임을 잘 알아서 그랬을 것이다. 이때 나온 명대사다.


나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영혼 없는 글들을 썼다. 한때는 글 쓰는 일에 회의마저 들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 글들은 이 책을 쓰기 위한 기초연습이었던 것은 아닐까. 책을 쓰는 것은 농구 풋내기가 슛을 익히는 것처럼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내 인생에 가치 있는 일도 다시없을 것이다. 끝까지 즐겁게 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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