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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May 06. 2023

동네 카페 찬양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다. 내가 좋아하고 자주 가는 가게들은 결국 문을 닫는다는 것.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만큼의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나는 단골집을 잘 만드는 성향이 아닌데도 그렇다. 나만의 장소로 애틋하게 기억해 두었다가, 오랜만에 가니 없어진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인사동의 카페, 삼청동의 한식집, 이문동의 헌책방, 사직터널 위의 이자카야, 정동의 카페, 관악구청 앞의 삼겹살집, 안국동의 쭈꾸미집, 대전 도룡동의 북카페 등 당장 떠오르는 곳만 해도 대여섯 군데가 넘는다.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나는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가게를 좋아해서다. 아무리 맛집이거나 유명해도 사람이 많으면 잘 안 간다(이런 것도 홍대병인가?). 특히 카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러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도떼기시장처럼 사람이 버글거리는 곳은 질색이다. 힙합이나 일렉트로닉처럼 비트가 강한 음악을 틀어주는 곳도 피한다.

      

최근에 자주 가는 카페가 생겼다. 아파트 단지 앞의 아주 조그만 곳이다. 알바도 없고 사장님 혼자 운영하신다. 이 카페는 내가 원하는 모든 요소를 갖췄다. 한적하고, 인테리어도 차분하고, BGM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커피와 샌드위치가 맛있다! 나는 하루 5잔+α는 마셔야 하는 커피충이다. 하지만 세세한 맛 차이까지는 잘 모르는 커알못이기도 하다. 특유의 탄 맛이 강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정도만 구별할 수 있다. 그런 내가 느끼기에도 이 카페의 커피는 맛있다. 진하고 깊은 풍미가 있으면서도 과하지 않다. 샌드위치는 더 맛있다. 곰처럼 둔한 나도 사장님이 싱싱하고 좋은 재료를 쓰신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작년 육아휴직 중에 이 카페를 처음 알았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하듯 이곳에 갔다. 그리고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노트북으로 원고를 썼다. 커피를 마시면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오전에는 나 말고는 대부분 손님이 없었다. 따스한 햇빛이 스민 카페에는 사장님이 고른 은은한 음악과 내 노트북 타자 소리만 들렸다. 그 느낌이 좋아서 자주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장님은 거의 매일 오는 나를 분명히 잘 아셨을 것이다. 하지만 반갑게 해주시는 인사 외에 별다른 말을 걸지 않으셨다. “커피 부족하시면 더 드릴께요” 정도가 유일했다. 그러면 나는 굉장히 고마워하면서 한잔 더 리필해서 마셨다.

     

3월에 육아휴직이 끝나자 사장님께도 알렸다. “저 이제 휴직 끝나서 예전만큼 자주 못 올 것 같아요.” “어머 그래요? 아쉬워서 어쩌나... 그래도 시간 나면 종종 오세요.” “네 그럴께요.” 사장님은 내가 회사 다닌다는 사실에 살짝 놀라신 것 같았다. 하긴 평일 오전부터 늘 카페에 죽치고 있었으니 백수로 아셨어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졸업하려고 발버둥 치는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요즘에는 카페에 아이를 데리고 간다. 처음 데리고 간 날 사장님은 또 놀라셨다. “어유 젊어 보이셔서 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사장님의 이 멘트만큼은 영업용임을 알겠다. 아이는 하원 후 놀이터에서 1시간을 노는 게 루틴이다. 어느 날 기다리다 지친 내가 주스 먹으러 가자고 꼬셔서 겨우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함께 간 카페를 아이도 좋아했다. 아이는 카페 구석구석에 놓인 오브제를 신기한 듯 구경했다. 그리고 음료를 기다리며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이것이 요령이 되어서 이젠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을 30분으로 컷한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카페 가자고 하면 냉큼 따라나선다. 나는 커피를, 아이는 토마토주스를 먹는다. 무슨 27개월밖에 안 된 녀석이 큼지막한 토마토주스 한 통을 다 마셔버리는지.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은 나를 닮았다.

그런데 내 징크스 때문에 걱정도 된다. 이 카페도 얼마 안 가서 문을 닫으면 어쩌지? 막연한 걱정이 아니다. 일단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다. 내가 나서서 온 동네에 홍보해주고 싶을 정도다. 얼마 전에는 커피값도 내렸다. 한 잔에 3,500원 하던 아메리카노를 1,500원만 받는다. 놀란 내가 물었다. “아니 보통은 가격을 올리는데 왜 거꾸로 내리세요?” “아 그게... 주변의 컴O즈커피, 빽X방 같은 저가 브랜드들이랑 경쟁이 안 되어서 어쩔 수 없네요.” 사장님은 분명 원두도 좋은 제품을 쓰실 텐데 단가를 더 낮추면 어쩌나.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리필을 안 한다. 원고 작업을 하는 날에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다른 커피를 한두 잔 더 사 마신다. 물론 별 도움은 안 되겠지. 하지만 아끼는 카페에 그렇게라도 보답하고 싶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이 나오면 카페 사장님께도 한 권 드리고 싶다. 이 책에 담긴 원고 중에 적지 않은 양을 이곳에서 썼다며. 그때까지 카페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노래 가사에서 그랬던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고.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다. 소중한 것들이 되도록 오래 남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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