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대웅 Jun 08. 2023

사은품 받으려고 책을 질렀다

feat. 『국부론』 문진

알만한 분은 다 알 것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책 못지않게 굿즈도 유명하다. 서점답게 책이나 작가를 콘셉트로 생활용품이나 액세서리를 만든다. 퀄은 (내가 보기엔) 대부분 별로다. 다만 가끔 소 뒷걸음질에 쥐 잡듯 신박템도 나온다. 10여 년 전 후배가 생일선물로 준 셜록 홈즈 북마크가 그랬다. 후배는 별생각 없이 사준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아마 평생 받아본 생일선물의 Top5에 들 것이다. 그땐 몰랐지만 내 몸에도 오덕의 피가 흘러서 그랬던 것 같다.

셜록 홈즈 북마크. 종이에 꽂으면 파이프를 문 홈즈의 시그니처가 살포시 드러나는 게 참 예쁘다.


이후에도 알라딘에서는 꾸준히 굿즈가 나오고 있다. 그중에는 비틀즈, 하루키처럼 내가 혹할 만한 콜라보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경악스러운 저퀄에 기겁해서 한 번도 사지 않았다.      


그런데 알라딘이 다시 소 뒷걸음질로 쥐를 잡았다. 오랜만에 신박템을 내놓은 것이다. 무려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국부론』 문진이다. 이건 정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고전의 클래식함을 무심한 듯 시크하게 연출한, 이번 섬머 시즌의 릴랙스한 독서를 도와줄 머스트해브템임을. 어머! 저건! 사야 해~ 인류사 불멸의 명저를 깜찍한 굿즈로 디자인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토록 세련되고 깜찍한 자태라니. 이거 기획한 사람 직접 만나보고 싶다.


처음에는 애덤 스미스 책을 사야만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고민했다. 『국부론』이냐, 『도덕감정론』이냐. 두 권 다 없긴 했다. 하지만 고전답게 두껍고 어렵기로 유명한 책들이었다. 『국부론』은 대학원 때 『자본』 세미나를 하면서 일부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독일인만 책을 어렵게 쓰는 줄 알았더니 영국인도 그렇구나. 그래, 『국부론』만큼은 피하자. 어차피 원고 작업에도 필요할 듯하니 『도덕감정론』으로 가자. 장바구니에 넣으려는 순간, 이벤트 대상 도서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럼 그렇지. 누구나 알아도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인데 이런 걸로 이벤트를 할 리가. 대상 도서에 사려고 했던 책이 있길래 냅다 넣었다. 그런데, 2만원 이상 사야 한다고? 얼핏 보면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1만5천원 전후로 형성되는 요즘 책의 가격대를 고려하면, 어차피 두 권은 사야 그 선을 넘길 수 있다. 즉 3만원이나 마찬가지다. 이 꼼꼼함이라니. 여윽시 자본주의의 첨병 알라딘답다. 3만원이 넘는 거금은 회사 복지 포인트로 결제했다. 욕하면서 다니는 회사지만 애사심이 들 때가 최소 세 번은 있다. 첫째는 월급날, 둘째는 월요일 아침 아이 직장 어린이집 보낼 때, 셋째는 이렇게 복지 포인트로 뭐 살 때. 

    

아무튼 이러한 의식의 흐름을 거쳐, 혹시 그 사이 재고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쫄보다운 걱정도 하면서, 순전히 사은품 때문에 지른 책들이 이것이다. 

사은품 때문에 산 주객전도 책 두 권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이제 흥행 보증 수표가 된 장하준 교수의 신간이다. 10여 년 전 『국가의 역할』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아니 경제학 책이 이렇게 쉽게 읽혀도 되는 거야? 경제학에 역사학파, 제도주의라는 특이한 흐름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즉시 장하준의 팬이 되었다. 책이 나오면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심지어 언론 인터뷰도 챙겨 보았다. 그런데 인기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일까? 이 분도 점점 자가 복제 성향이 짙어졌다. 물론 장하준 정도 되는 대가가 일반 독자를 위해 책을 캐주얼하게 쓰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소재가 비슷비슷해지고 논지가 무뎌지는 것은 아쉽다. 비주류 학자로서의 선명한 문제 제기보다는 다 같이 잘해보자는 위아더월드 식의 일반론도 그저 그렇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로 쭉 그렇다. 시놉시스를 보니 이번 책도 그런 콘셉트인 듯하다. 국내에 아직 번역 안 된 장하준 교수 책들이 꽤 있다. 돈은 별로 안 되겠지만, 학술적 성격이 강한 책들도 번역되었으면 한다.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은 순전히 지적 호기심으로 고른 책이다. 예전부터 일본은 뭘 어쨌길래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하고 서양을 따라잡았는지 궁금했다. 그 이해의 출발점은 당연히 메이지유신이 되어야 할 게다. 다만 나 같은 문외한이 읽을 만한 교양서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책의 에필로그를 퍼온 것을 우연히 읽었다. 단박에 꽂혔다. 게다가 박훈 교수는 칼럼도 잘 쓰니 더 신뢰가 간다. 내 경험상 이론서 잘 쓰는 분이 칼럼을 잘 쓴다는 보장은 없는데, 칼럼 잘 쓰는 분은 대개 이론서도 잘 쓴다. 손호철, 송호근 교수 같은 분들이 그렇다. 그래서 이 책도 기대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된 『국부론』 문진. 언박싱해서 실제로 보니 더 예쁘다. 알라딘이 간만에 뒷걸음질로 쥐 제대로 잡았구나. 그런데 이거 실제로 쓸 일이 있을까? 어차피 나는 책 읽을 때 독서대를 이용하잖아? 하긴 붓글씨 쓰는 사람이면 몰라도 요새 누가 문진이 필요하겠어. 몇 년 전 하루키가 자기 책상을 공개하면서 선물로 받은 문진을 예찬했던 것도 같다. 번역 작업할 때 쓴다며. 하지만 나한테는 아무래도 무소용일 것 같다. 서재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내 MLB 피규어 컬렉션 마냥, 이것도 예쁜 쓰레기가 될 운명일 테다. 그래도 뭐, 예쁜 건 예쁜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네 카페 찬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