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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May 19. 2023

자연은 유용한 기계다

기계론과 인간-자연 관계의 변화

우리는 매일 자연을 극복하면서 산다. 현대 과학기술문명은 자연이라는 자원을 통제하고 가공함으로써 성립한다. 나는 도시에 사니까 자연과 거리가 멀다고? 당장 씻고 마시는 데 쓰이는 엄청난 양의 물을 생각해 보라. 어디 물 뿐인가. 매일 먹는 곡식, 고기, 생선, 과일 등 식량도 자연에서 온 것이다. 물과 식량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은 19세기 상하수도의 발명과 20세기 대형 댐의 건설을 통해 비로소 ‘물 쓰듯’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식량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암모니아를 인위적으로 합성하는 하버-보슈법(Haber-Bosch process) 등장 전까지 기아는 인류의 가장 큰 적이었다. 그걸로도 부족해 최근에는 유전자 변형 식품(GMO food)까지 시도되고 있다. 이렇게 몇 문장으로 적으니 그랬나 보다 싶지만, 여기에는 자연을 극복하기 위한 험난했던 역사가 있었다. 현대인에게 필수인 이동수단, 전자제품, 주거시설 등도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쳐 물리법칙을 극복한 결과다. 우리는 이러한 문명의 이기 덕분에 손쉽게 자연을 극복해 가면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인간은 어쩌다 자연을 극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나? 즉 인간을 자연에 도전하게 만든 철학적 근거는 무엇이었나? 물론 고대 이래로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자연보다 우위에 서서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은 근대 과학이 발전하면서부터다. 이는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가능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자연은 신비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인류는 자연을 분석 및 조절 가능한 대상으로 규정했다. 근대의 정신적 기초를 이룬 과학적 사유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탐구는 본래 철학의 몫이었다. 자연의 본질을 규명하는 철학 분과인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이 그 역할을 했다. 근대 초기만 해도 현미경과 미적분 같은 과학 연구의 기초 도구조차 없었다. 그래서 자연의 탐구가 철학적 사유의 성격을 띠었다.

 

중세까지 자연철학의 최고 권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독창적인 물질론, 운동론, 우주론을 창안했고, 더 나아가 이를 하나의 체계로 통합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의 핵심 명제는 “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자연은 뚜렷한 목적에 따라 운동하는 하나의 유기체다. 이를 목적론(teleology)이라고 한다. 목적론은 자연철학이 신학과 연결되는 매개가 된다. 한번 생각해 보자. 유기체로서 자연이 움직이는 목적을 과연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신 말고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자연을 논리적 탐구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가장 근원에는 신이라는 불멸의 절대자가 존재함으로써 (적어도 중세인이 보기에) 완벽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17세기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강력한 도전에 부딪혔다. 하필 17세기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럽 역사에서 17세기는 단절과 전복의 시기이다. 종교갈등으로 촉발된 30년 전쟁(1618~1648)이 전통적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가치를 구축했다. 전쟁의 결과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다. 대신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스위스 등의 근대국가들이 부상했다. 귀족들은 대거 소멸하고,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쟁취하였다. 사상과 학문도 예외일 수 없었다. 전쟁은 국가의 흥망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유에도 지대한 변화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새로운 학문의 기수들은 자연을 전혀 다르게 정의하며 아리스토텔레스에 반기를 들었다. 우선 이들은 자연현상에 목적 따위는 없다고 보았다. 이들이 생각한 자연이란 그저 물질들의 조합에 불과했다. 따라서 자연에 ‘왜(why)’라는 질문은 별 의미가 없다. 자연이 운동하는 이유는 (마치 기계가 그러하듯) 원래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있어서다. 왜 그런지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how)’다. 즉 자연이 운동하는 목적이 아니라, 메커니즘을 밝혀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목적론에 따르면 자연은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의 의지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자연이 물질들의 객관적 구성이라면? 인간은 관찰과 분석을 통해 그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을 통제하고 인간에 유리하게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철학적 입장을 기계론(mechanism)이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자연을 기계처럼,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조작할 것인가? 기계론은 이를 두고 크게 경험주의(empiricism)와 합리주의(rationalism)로 나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경험주의의 요체는 감각의 경험을 통해 자연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현실론이다. 현실과의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여 유용한 지식을 얻겠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절대적으로 올바른 제1원리로부터 모든 문제가 논증된다는 닫힌 체계였다. 이러한 연역법(deductive method)은 논증의 전제들이 참일 때만 올바른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각 전제의 진위 판별에는 무력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피상적 관찰로부터 일반화시킨 법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설사 이렇게 얻은 결론이 타당한들, 그건 그 논증 안에서만 유의미할 뿐이다. 새로운 지식으로의 확장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경험주의를 학문으로 체계화했다. 그는 지식을 얻는 방법으로 귀납법(inductive method)을 사용했다. 귀납법은 수많은 사실을 체계적으로 분류·정리하여 일반화 수준을 높임으로써 진리에 도달한다. 따라서 경험주의를 실천하려면 우선 방대한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치 있는 것을 가려내 분석·종합해내야 한다. 그래야만 사실의 일반화가 가능하다. 이렇게 일반화한 지식은 수집된 사실의 단순 합을 넘어서는 범위를 포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처음에는 없었던 새로운 사실도 예측할 수 있다.


베이컨에게 학문이란 사변적 이해가 아닌 실질적 기술을 의미했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진보(advancement)와 진전(progression)의 개념을 학문에 최초로 도입했다. 지식이란 그냥 앎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개선에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을 바라만 보는 관조적 삶에서 벗어나, 자연에 직접 개입하는 실천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실천을 가능케 하는 학문이 경험적 지식에 근거한 과학이다. 저 유명한 “아는 것이 힘이다(scientia potentia est)”라는 테제는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흔히 생각하듯 아는 것이 많아야 출세도 하고 권력도 누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주어인 ‘아는 것’, 즉 라틴어 scientia는 과학(science)을 의미한다. 서술어의 ‘힘’은 자연을 변화시키는, 강하게 표현하면 자연을 지배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 문장은 인간과 자연의 역사적 관계를 재규정하려 한 베이컨의 큰 그림을 반영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 '더 크라운'의 한 에피소드 제목이 'Scientia Potentia Est'다. 베이컨의 명언을 차용한 영국적인 제목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유럽 대륙에서는 영국 경험주의와는 다른 형태의 기계론이 대두되었다. 바로 합리주의(rationalism)다. 합리주의의 목표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변하는 절대적인 지식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이는 17세기 유럽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세적 세계관은 해체되고, 교회의 권위에 기댔던 학문의 정당성이 무너졌다. 하지만 새로운 지적 대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혼란을 틈타 극단적 회의론이 득세했다. 17세기 초반을 풍미한 고대 그리스의 피론(Pyrrhon) 철학은 확고한 진리란 없고, 있다 해도 그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 누구도 확실히 말해주지 않는 시대였다.


합리주의를 정초한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이론적 출발점이 이 지점이었다. 그는 절대 진리를 무기로 삼아 회의론으로 대표되는 지식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려 했다. 그 방법이 독특했다. 데카르트는 회의론의 논리적 힘을 받아들여야만 그들을 논파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데카르트 철학에서도 회의는 핵심 개념이 된다. 다만 회의 자체를 진리로 받아들인 피론과 달리, 데카르트의 회의는 수단일 뿐이었다. 이를 ‘방법적 회의’라고 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극한까지 몰고 갔다. 이에 따르면 진리란 전혀 의심의 가능성조차 없는, 100% 확실한 사실이다. 단 0.1%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면 진리의 후보에서 가차 없이 탈락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올해는 2023년이다”라는 명제는 진리인가?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적으로 의심해 보면 그렇지 않다. 2023년은 서기력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인데, 어떤 이유로 역법이 바뀌었고 그 정보를 나는 아직 모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떤 가능성도 남기지 않고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여 최후까지 남는 지식이 진리라는 것이 데카르트의 방법이었다.


합리주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진리를 방해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인간이라면 으레 가진 관습, 경험, 선입견 등이 그렇다. 특히 데카르트는 베이컨과 달리 감각에 의한 경험은 진리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인간의 감각 능력은 다 제각각이다. 실제로 같은 현상을 사람마다 달리 해석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하나의 원피스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파검(파란 바탕에 검정 줄무늬)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흰금(흰 바탕에 금색 줄무늬)이라 했었다. 이는 사람은 자신이 볼 수 있는 만큼만 본다는 것을 시사한다(심한 경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도 있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흥했던 원피스 색깔 논쟁은 합리주의자들이 경험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좋은 논거로 쓰일 수 있다.

경험주의가 현실론이라면 합리주의는 당위론이다. 합리주의자들은 사람에게는 진리에 이를 수 있는 이성의 능력이 있다고 본다. 수학적 지식이 대표적이다. 즉 삼각형의 꼭짓점이 세 개라던지, 두 점을 최단 거리로 이으면 직선이 된다는 것. 데카르트는 의심의 화신답게 이성이 진리를 얻을 수 있는지 스스로 검증했다. 우선 자신의 사유가 실은 악마가 조작한 것이라는 극단적 가설을 세웠다. 이때 아무리 악마가 방해해도 참일 수밖에 없는 명제가 있을까? 놀랍게도 절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나는 의심하고 있다”라는 사실이다. 의심은 곧 생각의 발로이다. 여기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가 도출된다. 데카르트는 이 명제를 제1원리로 삼아 절대적 지식의 체계를 쌓아 올렸다.

데카르트는 위대한 철학자인 동시에 수학자였다. 방 천장에 붙은 파리를 보다가 좌표평면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는 특히 유명하다.



     

자연철학에서 과학으로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는 진리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화해할 수 없는 차이를 보였다. 그래서 툭하면 논쟁이 붙었다. 경험주의자들은 인간이 타고나는 이성적 능력이란 없다고 비판했다. 합리주의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삼는 수학적 지식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수를 모르는 백치나 특정 수 이상의 개념이 없는 민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경험주의자들은 인간이란 하얀 도화지와 같다고 한다. 여기에 경험이라는 물감으로 지식이라는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합리주의자들의 반론은 이러했다. 인간 이성이 창조될 때, 미래에 생각하게 될 모든 관념이 잠재적으로라도 내포된다. 따라서 이성은 점점 고도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더 많았다. 여러 이견과 논점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조는 다음과 같은 기반을 공유했다.


첫째로 지식의 주체로서 인간을 자연보다 우위에 두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서 인간은 자연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의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지식을 사용해 자연에 개입할 수 있는 주체가 되었다. 베이컨은 인간이 자연을 마음먹은 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의 증대가 곧 학문의 진보라고 했다. 데카르트도 철학의 목적은 인간 전체의 복리를 도모함에 있다고 했다. 데카르트가 그렇게 수학에 집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자연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존재를 좀 더 수월하게 통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듯 경험주의자와 합리주의자 모두 자연을 일정한 법칙에 따라 돌아가는 기계로 인식했다. 그들의 철학이란 이 기계를 써먹기 위한 매뉴얼과도 같았다.

경험주의는 실험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뉴턴도 자신의 광학 이론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둘째로 고유의 방법론을 확립해 과학을 철학으로부터 독립시켰다. 당시 초보적이라도 과학으로 분류되는 경향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관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과학을 철학과 구별하는 독자적 방법론이 부족해서였다.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는 자연을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과학적 방법론의 발전에 기여했다. 경험주의는 실험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본래 학문은 고귀한 정신적 활동이었고, 손과 기구를 써서 자연을 직접 주무르는 것은 비천한 일로 여겨졌다. 경험주의는 이러한 관념을 반전시켜 무엇이 진리인지 학자가 직접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방법론을 확립했다. 합리주의는 수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철학, 문학, 예술 등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도 수백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하지만 수학에서는 모든 것이 계산 가능하며 확실한 정답을 도출할 수 있다. 그래서 수학과 이성은 찰떡궁합이다. 이렇듯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는 아직 미성숙했던 과학에 실험과 수학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전해주었다. 이로써 과학이 독자적 학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실험과 수학이 없는 과학은 상상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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