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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May 25. 2023

수학으로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

뉴턴역학과 결정론의 대두

수학은 왜 배워야 할까? 문과생이라면 특히 강하게 품었을 질문이다. 많은 학생이 수학에 대한 공포 때문에 문과를 선택한다(나도 그랬다). 문과 수학이 이과보다는 쉽기야 하다. 하지만 문과생의 대다수가 잠재적 수포자인 마당에 그 차이란 오십보백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문과 수학도 만만치 않았다. 집합에서 시작해 방정식, 함수, 미적분을 거쳐 확률과 통계로 이어졌다. 문과생에게는 복마전 같은 이름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수학교육은 지겹도록 반복적이다. 개념을 익히고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푼다. 그러니 질문이 생긴다. 대체 이 짓을 왜 해야 하지? 안 그래도 어려운데, 왜 해야 하는지 설명은 해줘야 하잖아?

왜 어려운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일단 설명부터 좀...;;

그 많은 수학 선생님 중에 이 의문을 해소해 주는 분은 드물다. 물론 수학에 대한 동기 부여의 말씀이야 늘 해주신다. 백이면 백 수학 못 하면 명문대 못 간다는 협박으로 수렴되어서 그렇지. 이런 협박은 수학에 대한 반감만 더 키운다. 솔직히 인정하자. 수학 시간에 배운 공식은 일상에서 쓸 일이 거의 없다.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그냥 사는 데는 아무 문제없다.

 

수학의 필요성은 실용보다는 가치에 있다. 수학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높여준다. 정연한 논리와 날카로운 통찰을 갖추어 준다. 수학으로 훈련된 사람의 사유는 장삼이사에 비할 수 없다. 문과식으로 말하면 이렇다. 칸트철학이나 근대유럽사를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교양의 차원이 다르다. 원래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보이는 만큼 삶은 풍요로워진다. 수학도 다르지 않다.



     

F=ma가 위대한 이유

    

수학이 얼마나 위대한 가치를 이룰 수 있는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을 보면 알 수 있다. 흔히 뉴턴은 물리학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뉴턴이 활동한 17세기에 아직 물리학은 학문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뉴턴은 자신을 수학자로 여겼다. 그의 직함은 케임브리지대학교 수학 석좌교수였다. 그리고 불멸의 명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이하 프린키피아)』를 썼다. 이 긴 제목을 줄여서 보통 『프린키피아』라고 한다. 라틴어로 ‘원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뉴턴의 책은 원리 그 자체로 통한다.


『프린키피아』에서 뉴턴은 자연의 운동을 세 가지 법칙으로 정식화했다.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우는 그 법칙 맞다. 관성의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설령 물리 시간에 졸았다고 해도 F=ma(힘=질량×가속도) 공식은 기억할 것이다. 자연의 가장 본질적 요소인 힘과 속도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가속도, 즉 속도의 변화 정도가 물체의 운동상태를 바꾸는 힘이라는 뜻이 된다. 짧은 공식이지만 여기에는 역사적, 철학적 함의가 있다. 오랫동안 인간에게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원리는 신의 뜻, 마법, 우연 등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뉴턴은 인간의 이성으로 자연의 인과적 체계를 파악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F=ma는 그 최초의 사례다.


『프린키피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만유인력이다. 만유인력은 모든 물체에 존재하는 끌어당기는 힘을 말한다. universal gravitation을 일본에서 萬有引力이라고 번역한 것을 우리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래서 영어 뜻에 따라 보편중력이 맞는 번역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력을 지구가 당기는 힘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일화 때문에 더 그렇다. 중력과 만유인력은 같은 개념이다. 지구만 사과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사과도 지구를 끌어당긴다. 지구는 달과 태양도 끌어당긴다. 태양도 마찬가지여서 지구, 달, 그리고 사과를 끌어당긴다. 그 작은 사과조차도 지구, 태양, 달을 끌어당긴다. 이렇듯 모든 것이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힘이 만유인력이고 중력이다. 그것도 무한히 멀리까지. 물론 멀어질수록 끌어당기는 힘은 약해진다. 뉴턴은 물체 간 끌어당기는 힘의 크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했다. 이른바 역제곱 법칙이다. 뉴턴의 설명이다.

     

만약 실험과 천문 관측으로 지구 주위의 모든 물체가 질량에 비례하여 지구에 의해 중력을 받는다는 것, 달도 마찬가지로 질량에 비례하여 지구에 의해 중력을 받는다는 것, 한편으로 바다도 달에 의해 중력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모든 행성이 서로 중력을 받는다는 것, 혜성도 태양에 의해 중력을 받는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드러난다면, 이 법칙의 결과로 우리는 모든 물체가 그것이 무엇이든 상호 중력의 원리를 갖고 있음을 보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뉴턴의 위대함은 이 ‘보편성’의 확립에 있다. 보편성은 예외란 없다는 뜻이다. 뉴턴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물들 속에서 예외 없이 관철되는 법칙을 찾아냈다. 나무에 달린 사과, 지구의 바다, 하늘에 뜬 태양과 달, 우주를 지나는 혜성에게는 모두 만유인력이라는 법칙이 작용한다. 이 법칙은 우주의 탄생부터 우주 공간의 모든 물체에 적용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렇듯 뉴턴은 수학을 이용하여 자연의 근원에 존재하는 보편의 원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법칙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과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이자 정체성이기도 하다.

우주의 모든 물체는 예외 없이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긴다.



     

수학의 보편성과 객관성

     

뉴턴은 중세와 근대가 겹치는 시대를 살았다. 30년 전쟁으로 교회의 권위는 무너졌지만 신 중심의 사유와 관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우주가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뉜다고 믿었다. 신이 통치하는 무한한 천상계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유한한 지상계는 전혀 다르게 운영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뉴턴은 하늘과 땅, 우주와 지구를 지배하는 단일한 원리를 증명했다. 지구상의 사과부터 저 멀리 태양과 혜성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도 예외는 없다. 수천 년 동안 인류를 지배해 온 이원론적 세계관을 하나로 종합해 버린 것이다.


뉴턴의 종합은 수학을 통해 가능했다. 수학이야말로 뉴턴이 확립한 보편 법칙의 기술에 유용한 도구다. 수학은 누가 어디서 어떻게 계산하든 모두 같은 결론에 이른다. 그야말로 보편과 객관의 학문이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합리주의자들이 수학으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설명하려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로망이었던 보편수학의 원대한 비전은 뉴턴에 의해 실현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뉴턴이 발명한 미적분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미적분으로 고생하는 학생들은 뉴턴을 원망해도 된다). 미적분은 동적인 변화를 다루는 수학이다. 그래서 운동의 계산에 적합하다. 운동을 계산한다는 것은 시간에 따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알아낸다는 의미다. 미분은 시간을 아주 잘게 쪼갬으로써 순간순간 달라지는 변화의 비율을 계산(적분은 그 반대다)해낸다. 그러니까 시간에 따른 위치변화율이 속도이고, 속도가 변하는 운동에서 속도변화율이 가속도다. 따라서 물체의 위치라는 초기 조건이 주어지면, 속도와 가속도를 계산해 그 운동을 예측할 수 있다. 뉴턴이 태양계 행성들의 운동을 한 방에 설명할 수 있었던 비결이 이것이었다. 행성의 공전주기에 따른 위치변화로 거리, 시간, 속도, 가속도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행성을 궤도에 묶어놓는 힘인 만유인력을 태양과 행성들 사이의 거리로 나타낸 것이다. 만유인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의 기술은 이렇듯 수학으로 가능했다. 미적분을 만유인력, 빛의 입자설과 함께 뉴턴의 3대 발견으로 꼽는 이유다.



      

결정론적 세계관의 확산  

   

수학에 의한 보편 법칙의 확립은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 냈다. 이른바 결정론이다. 결정론은 말 그대로 세상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얼핏 들으면 무슨 운명론이나 숙명론 같다. 그러나 근대 과학의 맥락에서는 의미가 좀 다르다. 근대 과학에서 결정론은 원인을 알면 결과도 예측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수학의 공리에서 출발해 행성을 포함한 모든 물체의 운동을 설명해 내는 뉴턴역학은 결정론의 전형을 보여준다. 뉴턴의 기획이 수학을 넘어 철학과도 연결되는 이유다.

    

동일한 자연의 결과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동일한 원인을 배정해야 한다. 인간과 동물의 호흡, 유럽과 미국에서 떨어지는 돌, 주방과 태양의 불빛, 지구와 행성에서의 빛 반사처럼.


결정론은 과학주의, 과학적 사고의 철학적 토대가 된다. ‘과학적’이라는 규정은 원인과 결과의 논리적 연계를 의미한다. 뉴턴은 자연과 우주를 인과관계로 구성했다. 이것은 물체의 현재 조건을 알면 과거와 미래까지 알 수 있음을 내포한다. 철학적으로 바꿔 말하면 이렇다. 모든 일은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다. 원인 없이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떤 신비나 우연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인과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뉴턴 이후 수많은 과학자가 이러한 패러다임을 따랐다. 18세기 과학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뉴턴의 법칙을 현실과 맞춰보는 과정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핼리 혜성이다. 1682년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는 혜성을 목격했다. 그런데 역사책을 뒤져보니 이것이 1456, 1531,1607년에 관측된 혜성의 궤도와 흡사했다. 핼리는 때마침 나온 『프린키피아』를 참조해 이 혜성의 공전주기가 75~6년임을 계산해 냈다. 이에 1759년 3월 혜성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핼리는 그때까지 살지 못했으나 예측은 적중했다.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프랑스의 뉴턴’으로 불렸던 이다. 그는 태양계 행성 운동이 보이는 불규칙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복잡한 계산을 동원하여 이것이 만유인력 법칙을 유지하면서 나타나는 주기적 불규칙성임을 입증했다. 뉴턴역학의 불충분함을 보완해 정확도를 높인 것이다. 더 나아가 뉴턴역학을 모든 과학에 적용하려는 원대한 계획도 추진했다. ‘라플라스 프로그램’으로 불린 이 계획은 열, 빛, 전기와 자기, 모세관 현상 등의 다양한 주제들을 수학화하고자 했다. 특히 프랑스의 과학적 우수성을 과시하려 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다만 라플라스 프로그램은 나폴레옹 실각과 함께 지원이 급감했고, 뉴턴역학 자체의 한계를 드러내며 비판도 받았다. 그래도 10년 넘게 진행된 이 계획 덕분에 뉴턴역학의 발전은 절정에 올랐다.


뉴턴역학에도 위기는 있었다. 1781년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이 천왕성을 발견했다. 그런데 몇 년을 관측해 보니 그 궤도가 뉴턴역학의 계산과 맞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당황했다. 뉴턴이 틀릴 리가 없는데, 왜 이렇지? 프랑스 수학자 위르뱅 장 조제프 르 베리에(Urbain Jean Joseph Le Verrier)가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만약 천왕성 너머에 미지의 행성이 더 있다면,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력 때문에 천왕성의 궤도가 틀어질 수 있다는 가설이었다. 이 가설이 맞다고 가정하면, 미지의 행성이 움직이는 궤도를 뉴턴역학으로 역추론할 수 있다. 1846년 르 베리에는 이 계산결과를 베를린 천문대의 요한 고트프리트 갈레(Johann Gottfried Galle)에게 보냈다. 갈레는 편지를 받자마자 관측해 보았다. 정말 미지의 행성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이것이 해왕성이다. 뉴턴역학은 위기조차 새로운 기회로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1846년 해왕성 발견을 풍자한 만화. 영국의 존 애덤스도 해왕성의 존재를 예측했지만, 프랑스의 르 베리에의 수학 계산이 더 빨랐다.



     

뉴턴역학의 일반화

    

뉴턴역학은 17세기 기계론의 완결판이다. 지구와 우주가 운동하는 보편 법칙을 확립해 우리가 접하는 자연현상을 대부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계론이 목표했던 ‘인과관계로서의 자연’을 완벽히 구현한 것이다. 이로써 자연에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신비나 미신적인 요소가 끼어들 가능성은 없어졌다. 무신론 성향의 라플라스는 아예 뉴턴역학을 기반으로 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우주론을 체계화했다. 나폴레옹이 농담조로 이를 지적하자, 라플라스가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라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뉴턴역학에 열광한 것은 과학자뿐만이 아니었다. 철학자들도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당시 절대왕정과 교회의 지배에 맞서 계몽주의가 퍼지고 있었다. 부르주아 계급을 대변한 계몽주의자들은 사회계약론과 무신론에 기반을 두었다. 그럼으로써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사회를 꿈꿨다. 당연히 왕권신수설과 같은 신 중심 세계관과는 대립했다. 이 지점에서 계몽주의자들은 구체제를 무너뜨릴 이론적 무기를 뉴턴역학에서 발견했다. 어떠한 신비나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이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뉴턴역학과 계몽주의는 궤를 같이했다.


이는 뉴턴역학의 일반화 과정이라고 할만했다. 뉴턴의 후예들에는 이과생뿐만 아니라 문과생도 있었다. 라플라스와 르 베리에 같은 이과 후예들은 뉴턴역학을 정교하게 다듬어 과학 전반으로 확장했다. 반면 볼테르(Voltaire), 존 로크(John Locke) 등의 문과 후예들은 뉴턴역학으로 새로운 사회를 설계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기존의 가치와 지식 체계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동반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중세의 인류는 이 혁명을 거치면서 근대로 나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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