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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ul 24. 2023

온고이지신 플레이리스트

* 이 글은 @일상다반사 작가님의 2023년 5월 4일 글 ‘조용'필'링 of you', @램즈이어 작가님의 2023년 1월 30일 글 '눈오는 날의 브런치'에 단 댓글을 확장해서 써 본 것입니다.

     

옛날 노래가 무조건 촌스럽다고 하는 것은 편견이다. 요즘에도 시대에 뒤떨어진 곡은 얼마든지 있듯, 옛날에도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같은 곡들이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꿨듯, 아인슈타인이 시간과 공간을 재정의했듯, 후세에 전환점을 제시한 곡들이기도 하다. 그 자체로 뛰어나서 시대 보정 따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상이 즐겁다.



     

1. 조용필, <꿈> (1991년)

     

가왕 조용필은 가요사에서 어떤 기준으로 나래비를 세워도 다 짱먹을 분이다. 그중 압도적인 것이 음악적 스펙트럼이다. 천착한 장르의 깊이와 다양성에서 이분을 따라올 뮤지션은 단언컨대 없다. 요즘은 트로트나 록가수의 이미지가 크지만, 조용필은 가요에 현대적인 팝밴드 사운드를 처음 선보인 뮤지션이었다. 1991년에 나온 이 <꿈>을 한번 들어보라. 그야말로 세련됨의 극이다. 초등학교 5학년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딱 이렇게 생각했다. “우와 이거 뭐야 팝송 같다” 정말 듣다 보면 토토, 아시아 같은 팝록 밴드들이 연상된다.

     

1991년이면 서태지고 신해철이고 015B고 김현철이고 다 햇병아리인 시절이다. 이들이 공유한 시대정신은 가요의 팝화, 또는 장르와 사운드의 고급화였다. 달리 말하면 가요에 태생적으로 새겨진 뽕끼를 빼고 팝송처럼 들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각자 장르는 달랐지만 결국 이 한 길을 다 같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에게 가왕의 이 앨범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2. 이치현과 벗님들, <집시여인> (1988년)

    

밴드로서 이치현과 벗님들의 장르적 포지션은 좀 특이했다. 당시 유행하던 메탈이나 하드록(시나위, 부활, 백두산...)이 아닌 말랑말랑하고 팝스러운 음악을 했다는 것. 특히 라틴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리듬과 멜로디가 두드러졌다. 리더 이치현이 카를로스 산타나를 벤치마킹했던 탓이다. 때문인지 당시 가요계에서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신선하고 센스 넘치는 사운드를 선보였다. 무려 1980년에 나온 <당신만이>를 수많은 후배들이 꾸준히 리메이크하는 이유다.

    

1988년 작 <집시여인>은 그들의 장기가 제대로 드러난 불멸의 히트곡이다. 그해 가요톱10 골든컵(5주 연속 1위)까지 먹었다. 사실 이 곡의 멜로디는 지금 들으면 좀 촌스럽다. 약간 트로트 느낌이 난다. 그런데 연주와 편곡만큼은 범상치 않다. 특히 인트로 기타연주가 인상적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이 간지나는 인트로를 무심히 연주하는 이치현 아재의 모습을 보라. 신대철이나 김태원과는 또 다른, 지적인 록커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내 마음에도 사랑은 있어
난 밤마다 꿈을 꾸네
오늘밤에도 초원에 누워
별을 보며 생각하네


  

3. 패티김,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1983년)

     

한국 팝발라드 최초의 메가 히트곡은 1982년 이용의 <잊혀진 계절>일 것이다. 특히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가사가 유명해서 아직도 10월 31일마다 라디오에 리퀘스트가 쏟아진다.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은 그만큼 히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팝발라드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곡이지 않을까 한다. 패티김은 한국에 최초로 스탠더드 팝의 문법을 도입한 뮤지션으로 통한다. 이 곡도 1980년대 초반에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멜로디가 서구적이며 세련되었다. 악기들의 구성과 편곡도 정말 말 그대로 스탠더드하다. <잊혀진 계절>과 함께 한국 팝발라드 남녀 보컬의 장르적 원형을 보여준 기념비적 곡이다.

      

그런데 의외로 리메이크 시도가 별로 없다. 멜로디라인이 워낙 유려해서 지금 다시 불러도 충분히 통할 것 같은데도 그렇다. 박효신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정재일이 2015년 요조와 함께 리메이크했지만, 임팩트는 별로 없었다. 개인적으로 윤하가 부른다면 어떨까 싶은 곡이다. 가사도 시적이고 매우 아름답다.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4. 해바라기, <내 마음의 보석상자> (1986년)

     

가요사에서 포크가 주류였던 적은 없다. 그러나 포크는 1980~90년대 동물원, 김광석, 안치환, 여행스케치, 장필순, 박학기 등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을 형성했다. 최근에는 10㎝, 장범준, 볼빨간사춘기 등의 인디 뮤지션으로 그 명맥이 이어진다. 기타 중심의 어쿠스틱 사운드는 대중음악의 가장 기초적인 작법이기도 하니, 그만큼 시대를 덜 탈 수밖에 없다.

     

해바라기는 이 흐름의 조상님이다. 아직도 차트에서 우려먹는 <벚꽃 엔딩>의 오래된 미래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1980년대는 그들의 전성기였고, <사랑으로>라는 국민가요는 그 정점이었다. <사랑으로>는 하도 여기저기서 불러제껴서 오히려 그 가치가 떨어지는 곡이다. 중고생의 수련회는 물론 대학가 시위에서까지 불리는 통에, 뭔가 대동단결이 필요한 장에서 맥락없이 불리는 클리셰가 되었다. 그 가사가 하나의 시이자 철학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엄청난 명곡임에도 그렇다.

     

그래서 대신 이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골랐다. 해바라기 커리어가 정점으로 향하던 3집에 수록되었다. 시적인 가사,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사운드, 중후한 보컬이라는 그들의 시그니처가 그대로 녹아있다. 아주 잔잔하게 마음을 후벼판다. 일단 제목부터 그냥 시다. 가요사의 제목 명곡들만 추려도 반드시 들어가야 할 곡이다.

     

우린 알고 있었지 서로를 가슴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햇빛에 타는 향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기에
더 높게 빛나는 꿈을 사랑했었지

   


5. 여운, <홀로된 사랑> (1987년)

     

1980년대 흔치 않았던 남녀 중창단의 곡이다. 이 곡을 부른 여운은 경성대(당시는 부산산업대) 기타 동아리 출신이다. 1987년 강변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았는데, 동상이 또 저 유명한 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였다. 대상은 누구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대상이 은상과 동상에 묻힌 희한한 케이스다. 다만 이 역설은 다음 해 <담다디>가 대상을 먹으며 제 자리를 찾는다.

     

가요제 이후에도 꽤 히트했다. 가요톱10에서도 4주 연속 1위를 할 정도였다. 당시의 장르적 구분에서 보면 발라드도 아닌 댄스도 아닌 포크도 아닌, 희한한 곡이다. 근데 그때의 영상을 보면 나름 댄스 퍼포먼스(?)도 하긴 한다. 프로 뮤지션이 아닌 대학생들임에도 가창력들이 좋다. 그래서 남녀 중창단의 파워풀한 매력을 잘 살렸다. 특히 K팝에서 매우 중요한 훅의 원조격인 곡이 아닌가 싶다. 후렴의 '빙빙빙 맴돌다 떠난 님'의 중독성이 쩐다.

     

빙빙빙 맴돌다 떠난 님
미련만을 던졌어도
그대 그 빗속으로



6. 황치훈, <추억 속의 그대> (1988년)

     

가수 황치훈은 아역배우 출신으로서 17살에 이 곡으로 데뷔했다. 다만 연기에 비해 가수 커리어는 짧았다. 이 곡이 나름 히트했으나 원히트 원더에 가까웠다. 그러 2007년 뇌출혈로 쓰러져 10년간 투병하다 세상을 뜬, 안타까운 스토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곡의 작곡자가 바로 윤상이다. 지금의 윤상은 '뮤지션들의 뮤지션'으로 존경받는 대가다. 대가답게 음반을 자주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는 작품마다 작가주의 성향을 한껏 드러내며 평단의 찬사를 한몸에 받는다. 그런 그도 초창기에는 트렌디한 음악을 잘 만드는 감각적인 작곡가였다. 강수지, 김민우 등이 그래서 가요계의 신성으로 뜰 수 있었다. 이 곡도 윤상 초창기의 명곡으로 통한다. 오히려 처음 냈을 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가 올라가고 있다. 당시 가요계에서 흔치 않았던 세련된 리듬과 멜로디를 내세웠다. 언뜻 요새 유행하는 시티팝의 느낌도 있다. R&B 뮤지션 지바노프가 2019년 리메이크했는데, 영락없는 시티팝이다. 그리고 윤상은 2년 뒤에 이와 비슷한 스타일을 한 번 더 시도해서 대박을 터뜨린다. 그게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다. 곡의 전체적인 느낌과 전개가 서로 묘하게 닮았다.

     

그대의 사랑이 지나가는 자리엔
홀로 된 나의 슬픈 고독뿐
그때가 다시 올 순 없어도
지나간 추억만은 영원히

   


7. 변진섭, <숙녀에게> (1989년)

     

변진섭은 발라드를 가요의 주류 장르로 확고히 자리매김시켰다. 한국 발라드 계보는 유재하와 이문세에서 시작되어 변진섭과 신승훈에 이르러 정점에 오른다. 변진섭은 이 과정에서 <홀로 된다는 것>, <너에게로 또 다시>, <희망사항>으로 3경기 연속 홈런을 날렸다. 당시 그의 위상은 지금과 비교 대상조차 없다. 성시경? 김나박이? 다들 그냥 눈깔면 된다.

    

<숙녀에게>는 그 3경기 연속 홈런 중간에 낀, 2루타 정도 되는 중박작이다. 하지만 곡의 완성도는 어느 대박작 보다 앞선다고 생각한다. 일단 발라드의 기본 요소인 멜로디가 너무나 아름답다. 맑고 청아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는 인트로는 제목 그대로 사랑하는 숙녀를 수줍게 부르는 느낌이 들게 한다. 작곡자 하광훈은 세련된 멜로디 메이킹의 대가이기도 하다. 6년 뒤에 그 재능이 다시 한번 폭발하는데, 그게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다. 콘셉트적으로 두 작품이 같은 노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 그대 아주 작은 일까지 알고 싶지만
어쩐지 그댄 내게 말을 안 해요
허면 그대 잠든 밤 꿈속으로 찾아가
살며시 얘기 듣고 올래요



8. 신해철, <안녕> (1990년)

    

랩으로 한국을 들었다 놓은 건 역시 서태지다. 그런데 <난 알아요>가 나오기 2년 전, 예고편처럼 히트했던 곡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어 랩이라는 신해철의 <안녕>이다. 록그룹 무한궤도가 깨지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솔로로 데뷔한 그의 콘셉트는 의외로 아이돌이었다. 신해철은 아이돌답게 발라드와 댄스로 무장한 데뷔 앨범을 냈다. <안녕>은 그중 댄스 노선을 대표했다. 방송에서는 심지어 허리춤까지 췄다.  

   

그래도 중간에 삽입된 영어 랩은 문화 충격이었다. 지금 10대들이 들으면 이게 약 파는 소리지 랩이냐고 할 거다. 그렇지만 당시 초딩들에게는 비와이만큼 빠르고 지코만큼 간지나게 들렸다. 나를 포함한 초딩들은 영어를 안 배웠던 시절이다. 그래서 다들 노트에 '매니 가이즈 올웨이즈 터닝 유어 라운드'라고 한글로 적어가며 외웠다. 이후 신해철은 아이돌 시절 얘기만 나오면 흑역사 취급을 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이 곡만큼은 여러 앨범에서 리믹스하거나 라이브에서 부른 걸 보면, 그래도 애정이 꽤 컸던 것 같다.

     

선물 가게의 포장지처럼 예쁘게 꾸민 미소만으로
모두 반할 거라 생각해도 그건 단지 착각일 뿐이야



9. 이상우, <이젠> (1991년)

     

변진섭에서 신승훈으로 발라드 대권이 넘어가는 중간에 이상우가 있었다.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슬픈 그림 같은 사랑>으로 금상을 받은 그는 발라드 기대주였다. 꺼벙해 보이는 외모(실제 별명이 꺼벙이였다)와 달리 가창력이 절륜했다. 물론 그의 최대 히트곡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은 발라드가 아니었다(댄스곡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그래도 90년대 초반까지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하룻밤의 꿈> 같은 명곡들을 내며 발라더로서 입지를 굳혔다. 음색이 독특해서 누가 들어도 이상우 목소리인 것을 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젠>은 그의 곡 중에서는 빠른 템포에 속한다. 가요톱10 1위를 4번이나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의외로 곡 구성이 파워풀하다. 기본적으로는 록사운드다. 키보드가 이끄는 화려한 인트로 뒤로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 이어진다. 거기에 덧입혀지는 이상우의 미성이 묘하게 어울린다. 중간의 주고받듯 이어지는 기타와 키보드 솔로도 세련됐다. 듣다 보면 10여 년 뒤에 유행하는 미디엄템포 곡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멀리 있어도 떠나버려도
이젠 눈물 흘리지 않아
만남과 이별은
늘 함께 한다는 너의 말을
이젠 알 수 있어요

  


10. 현진영, <흐린 기억 속의 그대> (1992)

     

어느 분야든 1등만 기억하지 2등은 그렇지 못하다. 1992년 등장해 가요사를 이전과 이후로 쪼개버린 서태지가 그렇다. 서태지 이후 수많은 아류들이 등장했으나 기억에 남아 있는 뮤지션은 별로 없다. 현진영도 그중 하나다. 1980년대 말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이수만이 프로듀서로서 처음 발탁한 뮤지션이 바로 그였다. 그러니까 SM 엔터테인먼트의 시조새 격인 인물이다. 현진영은 당시 전국의 춤꾼이 모이던 이태원의 문나이트를 평정한 초일류 댄서였다. 게다가 댄서로서는 보기 드물게 가창력도 갖췄다. 이런 장점을 모아 최초의 뉴잭스윙 장르 앨범을 선보였다. 당시 토끼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현진영을 보면 정말 바비 브라운이 따로 없다.

    

정점은 2집의 이 <흐린 기억 속의 그대>였다. 듀스 이전에 거의 한국 힙합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곡이다. 당시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서태지에 비해서도 흑인음악적 색채는 이 곡이 더 진했다. <난 알아요>는 지금 들으면 촌스러운 느낌이 있는데, 이 곡은 그렇지 않다. 흑인음악에 메탈을 가미한 <난 알아요>와 달리 이 곡은 힙합 고유의 비트감과 그루브에 훨씬 충실해서 그런 듯하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냥 서태지 붐에 편승하려는 아류작 취급을 받았고, 현진영이 가수 커리어를 더 이어가지 못하면서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힙합 원류로서 곡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참 아쉬운 일이다.

     

싸늘한 밤거리를 걷다가 무거워진 내 발걸음
흐린 기억 속의 그대
그대 그대 모습을 사랑하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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