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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플레이리스트

by 배대웅

여름을 싫어한다. 더위, 습도, 벌레, 곰팡이... 이렇게 비호감들만 모아놓은 계절이 또 있을까(그래도 겨울보다 낫다는 건 함정). 그런데 이런 여름도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이 되는 모양이다. 여름을 소재로 한 명곡들이 넘쳐나는 걸 보면. 몇 곡 골라봤다. 계절이 어떻든 음악은 계속 들어야 하니까.



1. 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사잔 올 스타즈), <TSUNAMI>

이 곡을 여름 노래로 한정하기에는 아깝다. 그야말로 불멸의 보편성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모든 가사 중에 가장 아름답다. 문득 생각해본다. 나도 이런 문장을 남길 수 있을까. 그럼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あんなに好きな女性ひとに出逢う夏は 二度とない
그렇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여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아
人は誰も愛求めて闇に彷徨う運命さだめ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찾기 위해 어둠 속을 헤매는 운명
そして風まかせ Oh my destiny
그리고 바람에 맡겨 Oh my destiny
涙枯れるまで
눈물이 마를 때까지


2. Aimyon(아이묭), <Marigold>

5년째 듣고 있지만 절대 안 질린다. 20대 록커의 풋풋함이 시원한 바람처럼 산들거린다. 여름의 홋카이도에서 자전거로 숲길을 내달리며 들으면 참 좋겠다(다시 갈 수는 있으려나ㅜㅜ).

麦わらの帽子の君が
밀짚모자를 쓴 네가
揺れたマリーゴールドに似てる
흔들리는 마리골드를 닮았어
あれは空がまだ青い夏のこと
그건 하늘이 아직 파랗던 여름의 일
懐かしいと笑えたあの日の恋
그립다며 웃을 수 있던 그날의 사랑



3. Chelsia Chan & Kenny Bee, <One Summer Night>

고등학교 때 즐겨 듣던 올드팝이다. 이 곡은 멜로디가 희한하다. 감미로운 것 같으면서도 우울하다. 듣고 있으면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그 교실이 떠오른다. 삭막했던 공기, 마음을 옥죄는 불안함, 색의 벽,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수학 문제까지.

Each night I'd pray for you
매일 밤 당신을 위해 기도해요
my heart would cry for you
내 마음이 당신을 위해 울어요
the sun won't shine again
태양도 빛을 잃었네요



4. Bryan Adams, <Summer of ’69>

브라이언 애덤스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바로 그 곡. 처음 기타를 사서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했던 1969년의 여름날을 그렸다. 노래 속의 록키드는 그때가 인생 최고의 날들이었다고 회상한다. 다만 브라이언 애덤스의 나이(1959년생)를 생각하면, 곡의 배경이 실제 1969년은 아닌 것 같다. 아마 어떤 상징성 때문에 1969년을 골랐으리라. 그해에는 이런 일들이 있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비틀즈의 해체, 그리고 68혁명의 좌절.

Oh when I look back now that summer seemed to last forever
지금 그때를 되돌아보면 그 여름은 영원할 것 같았지
And if I had the choice, yeah, I'd always wanna be there
만약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그래, 항상 거기에 있고 싶어
Those were the best days of my life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날들이었으니까



5. Fiji Blue, <Waves>

여름에는 적당히 그루브 있는 미디엄템포 곡도 잘 어울린다. 피지 블루는 팀 이름처럼 푸릇푸릇한 세련된 음악을 선보인다. 제목부터 파도인 이 노래는 여름휴가를 떠나는 차에서 들으면 딱일 것이다.

It's a beautiful morning, don't throw it away
아름다운 아침이야 버리지 말아줘
If I gave you the sunset, you'd wish for the rain
내가 일몰을 주었다면, 넌 아마 비를 바라겠지
Do you even notice what I'm tryna say?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어?



6. 백예린, <Square>

사실 여름이랑 아무 상관없는 곡이다. 하지만 청량한 인트로와 백예린의 독보적 음색이 여름과 찰떡이라서 그냥 골랐다. 그러니 너무 따지지 말고, 걍 듣자.

All the colors and personalities
모든 색깔과 성격들
you can’t see right through what I truly am
그것들 사이로는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넌 볼 수 없어
you’re hurting me without noticing
넌 예고 없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I’m so, so broke like someone just robbed me
난 그저 부서진 것 같아, 누군가가 날 턴 것처럼



7. 넬, <Still Sunset>


사실 여름이랑 아무 상관없는 곡이다(2). 하지만 청량한 인트로와 김종완의 독보적 음색이 여름과 찰떡이라서 그냥 골랐다. 그러니 너무 따지지 말고, 걍 듣자. 아 참, 가사도 예술이다. 김종완 이 천재가 하다 하다 이젠 라임까지 맞추는구나. 가사에서 전율이 인다면 나 너무 오바하는 걸까.

눈물은 감춰지되
눈물 고인 눈가에
네가 대신 맺힐 수 있게
해질 저녁 무렵에
빛과 어둠이 함께 깔릴 그때쯤에


8. 윤하(with 존 박), <우린 달라졌을까>


국내 가수 중에 여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는 윤하라고 생각한다(반박 시 님 말이 맞음). 몇 년 전 갔었던 어느 페스티벌이 계기였다. 초여름의 늦은 오후, 헤드라이너 윤하가 등장했다. 그리고 목소리 하나로 그 넓은 한강 공원을 꽉 채웠다. 마시던 맥주보다도 더 시원하고 청량한 공연이었다. 최근 히트곡인 <사건의 지평선>도 여름에 어울리지만, 괜히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해 좀 덜 유명한 노래로 골랐다.

내 가슴속을 낫게 하는 건
내 머릿속을 쉬게 해주는 건
너의 사랑밖엔 없어 덜어내려 해도
내 마음은 또 너에게로 가



9. Mrs. Green Apple, <青と夏>


한국어로 번역하면 <푸름과 여름>. 노래보다도 뮤직비디오 때문에 골랐다. 이 노래는 반드시 뮤직비디오로 감상해야 한다. 고시엔, 불꽃놀이, 수박, 바다 등 일본의 여름을 상징하는 클리셰들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를 타고 젊은 날의 푸르름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식상한 표현 죄송;;).

夏が始まった
여름이 시작되었는데
君はどうだ
너는 어떠니?
素直になれる勇気はあるか
솔직해질 용기가 생겼어?
この恋の行方はどこだ
이 사랑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10. ZARD, <夏を待つセイル(帆)のように>


한국어로 번역하면 <여름을 기다리는 돛처럼>. 제목 한번 시적이지 않은가? 듣고 있으면 정말 출항을 준비하며 돛을 올리는 멋진 요트가 연상된다. 경쾌한 리듬을 타는 ZARD의 설렘 가득한 보컬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다만 유튜브에는 이 곡의 공식 음원이 없다. 그래서 사카이 이즈미 사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ZARD 30주년 기념 공연 영상으로 올린다.

夏を待つセイルのように
여름을 기다리는 돛처럼
君のことを…ずーっと…
너에 대해서 계속
ずっとずっと抱きしめていたい
계속 끌어안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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