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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ul 30. 2023

선진국의 과학 필수템

가속기와 입자물리학 연구

우리나라는 선진국인가? 여러 국제경제지표를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세계은행(WB)의 고소득 국가군, 국제통화기금(IMF)의 선진 경제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등이 그렇다. 우리나라는 세 범주에 다 포함된다. 1인당 GDP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이제 일본과 비슷하고 스페인에 앞서는 수준이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으면 다 선진국일까? 예컨대 카타르의 1인당 GDP는 미국보다 높고, 아랍에미리트의 그것은 영국보다 높다. 그럼 카타르는 미국보다, 아랍에미리트는 영국보다 선진국인가? 그렇게 말하긴 어렵다. 이것은 선진국의 정의에 경제력을 넘어서는 요인들이 있음을 함의한다. 아마 정치적 자유, 사회적 평등, 문화적 우수성 등이 포함될 것이다. 여기에 지적 리더십도 추가되어야 한다. 즉 선진국은 뛰어난 지식을 생산하고 전파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나라다. 과학도 그 지식 중 하나일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를 배출한 미국과 영국이 압도적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간 인류의 지식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봐도 한국인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는 유럽, 미국, 일본 등에 비해 과학을 연구한 시간이 훨씬 짧다. 오랜 식민통치와 내전으로 온전한 국가를 만들 수 없었던 탓이다. 정부 수립 후에는 산업화가 급했기에 과학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선진국들이 이미 완성해 놓은 지식과 기술을 도입해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했다. 이 따라잡기(catch-up) 전략은 성공적이어서,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선진국 대열에 오른 나라가 되었다. 결국 1990년대가 되어서야 과학 연구를 본격화할 수 있었다. 유럽과 미국은 고사하고, 일본보다도 100년 이상 늦는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이런 과학 지식의 기반 없이 빠르게 고도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 더 대단하다.

경제적인 소득 수준으로만 보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인 것은 확실하다.




우주와 자연의 원리를 찾아서

     

사실 과학, 특히 순수기초과학은 선진국이 아니면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과학은 우주와 자연의 원리를 밝히는 고도의 정신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걸 하려면 우수한 고급인력과 대규모 자원이 필요하다. 당연히 돈도 많이 든다. 하지만 돌아오는 보상은 별로 없다. 그저 “아 자연이란 그런 거구나, 우주는 이렇게 생겨났구나”하는 ‘앎’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이 과학적 발견이 기술 개발과 경제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과학이 소위 ‘대박’ 나는 것은 연구 자체보다는 응용과 개발의 결과다. 즉 공학이나 경영학의 영역에 가깝다. 과학은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깨달음으로 끝나는 학문이다.


가속기(accelerator)는 이러한 과학의 본질을 드러내는 대표적 도구다. 현대과학에서 실험의 비중이 커지면서 각종 기기와 장비들도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특히 과학의 대상이 커지거나(지구, 우주 등) 반대로 작아지면서(세포, 입자 등) 이러한 기기들도 대형화하고 복잡해졌다. 가속기는 그 첨단을 이끄는 대형시설이다. 이것은 작은 도시 하나를 이룰 만큼 규모가 크고 투입 인력도 많다. 그래서 국가적 의사결정을 통해 구축 및 운영된다. 가속기를 짓고 실험하려면 천문학적 예산과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 집단이 필요다. 거기서 나오는 실험 결과는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꿔 버리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현대의 가속기는 선진국 자격을 인증하는 필수템과도 같다.

 

가속기는 자연과 우주의 근원으로 들어가는 열쇠 역할을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입자를 빠르게 가속하면 그 심연으로 향하는 문이 조금씩 열린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입자여서 가능한 일이다.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거시세계와 미시세계가 서로 통한다니 흥미롭다. 이는 과학뿐만 아니라 문학과 철학에서도 다루는 테마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라는 시가 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특히 유명하다. 첫 연이 이렇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또한 노자는 도덕경에서 우주 삼라만상의 비밀을 이(夷), 희(希), 미(微)로 정의했다. 이는 너무나 커서 인간의 눈으로 못 보는 것, 희는 너무나 미묘해서 귀로 못 듣는 것, 미는 너무나 미세해서 감각으로 못 느끼는 것을 뜻한다. 우주와 입자를 연구하는 물리학은 이렇게 문학, 철학과도 맞닿는다.

 

가속기 실험은 입자에 전기장을 걸어서 속도를 빠르게 높이면서 이루어진다. 이때 가속하는 입자에 따라 장치의 종류와 실험 목적도 나뉜다. 우선 입자가속기는 양성자, 중입자, 중이온 등을 다른 입자나 물질에 충돌시켜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한다. 양성자가속기는 주기율표 1번인 수소에서 양성자를 분리하여 물질에 충돌시킨다. 여기서 쪼개져 나오는 소립자를 반도체, 소재 연구 등에 활용한다. 중입자가속기는 암세포 사살의 명사수다. 수소보다 무거운 탄소 입자를 빛의 속도 70% 정도까지 가속하여 암세포에 쏜다. 기존 방사능 치료에 비해 암세포를 더 많이 죽이고 정상세포는 덜 죽인다. 중이온가속기는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원소를 연구한다. 수소보다 무거운 원소(탄소, 우라늄 등)를 이온화하고 가속해서 표적 원자핵에 충돌시킨다. 그럼 핵반응이 일어나고, 알려지지 않았던 희귀동위원소가 발견될 수 있다. 즉 중이온가속기 실험에서 뭔가 나오면 화학 교과서의 주기율표가 바뀐다.

중입자가속기가 암을 치료하는 원리. 정상세포 피해를 최소화하여 '꿈의 암치료'라고도 불린다.

반면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가속하여 빛을 생산한다. 전자는 만들기가 쉽고 무게도 수소의 1/1800에 불과하다. 그래서 속도를 빛의 99.9%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이렇게 가속한 전자로 만들어 낸 빛은 태양 밝기의 100억 배에 달한다. 이걸로 원자와 분자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몇 년 전 국내 연구진은 수소 원자(H) 2개와 산소 원자(O) 1개가 결합해 물 분자(H2O)가 만들어지는, 1/1,000조 초(펨토 초) 순간을 포착했다. 방사광가속기가 초고성능 거대 현미경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물리학과 화학은 물론, 구조생물학, 의약학 등에도 폭넓게 쓰인다.



    

20세기와 원자 시대의 개막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의 키워드는 원자다. 고대 그리스 이래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기본 단위로 인식되었다. 1897년 영국의 조지프 존 톰슨(Joseph John Thomson)이 원자 내부에서 전자를 발견하면서 이러한 인식에 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양성자, 중성자, 원자핵 등이 발견되고, 그것들에 존재하는 새로운 힘이 알려졌다. 그리고 1919년,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가 원자핵을 다른 원자핵으로 변환시키면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이것은 인류가 원자핵이라는 물질 궁극의 한계를 인위적으로 바꾸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다만 원자핵을 자유자재로 연구하려면 일단 그것을 부숴야 했다. 원자핵은 양전하를 가지고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 이걸 부수려면 전자기력을 이겨낼 운동에너지를 갖도록 입자를 가속해 충돌시켜야 했다. 그래서 러더퍼드는 1927년 전 세계 물리학자들에게 고에너지 입자의 대량 공급 방법을 찾자고 제안했다.


해법은 꽤 빨리 나왔다. 1929년 미국의 어니스트 로런스(Ernest Lawrence)가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했다. 최초의 입자가속기였다. 자기장과 교류전압을 이용해 입자를 가속해서 원자핵에 충돌시켰다. 그럼으로써 방사성 동위원소를 분리해냈다. 로런스는 이 업적으로 193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노벨재단은 시상의 이유로 사이클로트론 실험으로 발표된 논문이 ‘눈사태처럼 불어났음’을 들었다. 입자들은 사이클로트론 안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다양한 새로운 원소들을 만들어냈다. 이미 알려진 원소들의 방사성 동위원소들도 여럿 발견되었다. 대량 생산된 원소들은 물리학은 물론 화학, 생물학, 의학의 발전을 급격히 견인했다. 이는 사이클로트론이 요즘 말로 ‘혜자’ 장비여서 가능했다. 이전까지는 그렇게 싸고 간단히 희귀동위원소를 얻을 방법이 없었다. 로런스가 최초 제작한 사이클로트론은 직경 5인치(약 12cm)에 제작비는 25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양성자를 8만 전자볼트까지 가속시켰다. 이후의 스케일업도 매우 빨랐다. 1946년에는 184인치 사이클로트론이 완성되었고, 그 출력은 100메가 전자볼트를 넘어섰다.


사이클로트론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이끈 전략 인프라이기도 했다. 원자폭탄의 재료인 우라늄-235를 분리하는 데 필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플루토늄이라는 새로운 원소도 발견해냈다. 이 두 원소로 만든 폭탄 두 방이 전쟁을 끝내는 결정타가 되었다. 물론 일본도 사이클로트론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일본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가 동양 최초로 개발에 성공했다. 그는 본래 보어, 로런스 등과 교류했던 양자역학의 권위자였다. 그래서 일본 군부는 니시나 요시오에게 비밀리에 원자폭탄 개발 임무를 맡겼다. 당시 이화학연구소(Rikagaku Kenkyujo, RIKEN)를 이끌던 그는 별로 내키지 않았던 이 임무를 맡았으나, 결국 실패했다. 애초에 맨해튼 계획에 비해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은 지원을 받았으니 성공할 리 만무했다. 종전 후 도쿄에 입성한 미군이 가장 먼저 할 일 중 하나는 RIKEN을 폐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이클로트론을 해체해 도쿄 앞바다에 던져 버렸다.

RIKEN의 가속기를 도쿄 앞바다에 던져버리는 미군. 제2차 세계대전의 상징적 장면 중 하나다.



     

집단연구로서의 가속기 실험

     

가속기는 과학 연구의 방법과 체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팀 사이언스(Team Science), 즉 집단연구로 요약된다. 이전까지 과학은 분야별로 개인들이 소규모로 연구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로런스는 사이클로트론을 중심으로 다분야의 과학자, 엔지니어, 전문가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대학의 학과보다는 연구소 조직이 과학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었다. 이것은 가속기가 특정 분야를 넘어 모든 학문체계에 유용한 실험 결과를 제공한다는 것과도 연관되었다. 이에 로런스는 버클리 연구소를 핵이라는 공통 주제를 기반으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 등이 협업하도록 구성했다. 물리학 그룹에서 원자핵 충돌 실험을 하면, 거기서 생성된 희귀동위원소의 특성을 화학 그룹에서 분석했다. 의학 그룹은 이를 환자의 암세포에 쏘는 치료법을 개발했다. 생물학 그룹은 탄소-14라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서 식물의 광합성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도 했다. 이렇게 현대적인 연구소 모델을 디자인했다는 점에서 로런스는 뛰어난 과학자이자 경영자이기도 했다.


연구소 조직은 전쟁 이후에 더욱 확산되었다. 대표적으로 맨해튼 계획을 수행했던 비밀 시설들이 국립연구소(National Laboratory)로 재편되었다. 1946년 로런스가 이끈 버클리 연구소를 포함해 아르곤, 오크리지, 로스앨러모스 등이 최초의 국립연구소로 지정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오늘날 에너지부(DoE) 산하에 17개 국립연구소가 운영되고 있다. 국가가 소유하되 운영은 민간 전문가에게 맡기는 형식은 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소와 비슷하다. 그러나 가속기와 같은 대형시설을 기반으로 핵물리, 에너지, 환경 등 거대연구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그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국립연구소는 특히 미국 전역에 분포하면서 각 지역의 대학, 기업들과 함께 연구한다. 한때 원자폭탄까지 만들었던 첨단 시설이 우수한 두뇌들과 결합하여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연간 이용자 수만 3만 명을 넘는다. 이러한 결과로 인류 지식의 최전선을 확장하는 성과들이 국립연구소에서 쏟아져 나왔다. 118개의 노벨상이라는 숫자가 이를 방증한다.

어니스트 로런스와 그가 만든 184인치 사이클로트론 실험 시설. 그는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과학자이자 연구소의 운영 모델을 설계한 경영자이기도 했다.


다른 선진국들의 가속기 경쟁도 만만치 않다. 일본은 그중 가장 극적인 경우다. 원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을 농업국가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RIKEN을 폐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1950년 바로 옆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이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일본을 공산주의에 맞서는 자본주의 진영의 최전선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전후 일본이 고도의 기술산업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이로써 일본의 과학도 부활할 수 있었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RIKEN은 다시 문을 열었고, 1966년 기존보다 훨씬 더 큰 가속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6년, 가속기 실험으로 113번 원소를 발견해 일본의 국호를 따서 ‘니호늄(Nh)’이라고 명명했다.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원소다. 현재에도 일본은 (과학 덕후답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형 가속기를 보유한 나라다.



     

선진국들의 치열한 경쟁

     

유럽에서는 아예 국가 간 협력으로 가속기 연구소를 지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라는 아주 긴 이름의 연구소다. 흔히 약칭 CERN으로 불린다. 1954년 영국, 프랑스, 서독 등 12개 국가의 합의에 따라 출범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었다. 첫째로는 입자물리실험의 거대화로 개별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원래 가속기는 국가 차원의 자원이 필요한 시설이지만, CERN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실험을 수행한다는 목표에 따라 출범했다. 둘째는 유럽의 미국에 대한 위기의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으로 떠올랐고, 과학의 주도권도 완전히 가져갔다. 유럽 과학자들이 미국행을 택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에 유럽 각국이 비용을 분담해 미국에 밀리지 않을 연구소를 만들고자 의기투합한 것이다.

 

오늘날 CERN은 역사상 가장 큰 실험 장치인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둘레만 27㎞에 에너지 출력은 무려 7조 전자볼트에 이른다. 2008년 구축된 이 LHC가 대중에게도 알려진 것은 2012년이었다. 모든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이른바 ‘신의 입자’로 알려진 힉스 보손(Higgs boson)의 존재를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세상의 근본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들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발견되었다. 그런데 유독 힉스만 수십 년간 발견되지 않아 마지막 퍼즐로 불리고 있었다. 결국 LHC의 이 발견으로 중력을 제외한 모든 물질과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입자물리학의 기본틀인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 완성되었다. CERN이 세계 최고 입자물리연구소의 권위를 확립한 것은 물론이다.

CERN은 스위스 제네바에 있으며, 인류 최대 실험 장치인 LHC의 둘레는 27km에 이른다.

그런데 힉스 발견 10여 년만에 또 다른 가속기 실험이 주목을 받고 있다. 뮤온 g-2로 알려진 이 실험의 주무대는 미국의 페르미 국립연구소(Fermi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다. 연구진은 기본입자 중 하나인 뮤온이 저장링이라는 실험 장치에서 움직이는 궤적을 분석한 결과, 표준모형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입자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즉 완성된 것으로 알았던 표준모형을 대체할 이론이 등장할 수 있는 상황에 마주한 것이다. 이 실험의 신뢰도는 4.2시그마로 과학적 사실에 매우 근접했다. 신뢰도가 3시그마(99.7%)면 ‘힌트’에 해당하고, 5시그마(99.99994%) 이상이면 과학적 ‘발견’으로 인정된다. 힉스 발견 당시 신뢰도가 5시그마였다. 만약 페르미 국립연구소가 주도한 이 뮤온 g-2 실험이 과학적 발견으로 인정된다면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 표준모형이라는 이론의 교체는 물론, 유럽의 CERN이 가지고 있던 권위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류의 진보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

     

여기까지 읽은 독자 중 일부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가속기고 새로운 원소고 표준모형이고 다 좋은데, 그게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아주 정당한 의문이다. 말로는 자연과 우주의 기원을 밝힌다고는 하지만,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여서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기본입자 따위 몰라도 그냥 사는 데는 아무 지장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연구들이 무의미하거나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인류 지식의 진보를 얼마나 이룰 수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선진국들이 가속기 실험과 인프라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자하는 이유도 결국 이 과정을 주도하고 싶어서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 시대를 풍미한 강대국들은 동시에 그 시대 지식의 지배자였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지식의 최전선을 확장하여 그 혜택이 전 인류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선진국의 역할이자 품격이다. 이런 관점에서 페르미 국립연구소의 설립자인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이 1969년 의회에서 존 패스토어(John Pastore) 상원의원과 나눈 대화는 되새겨 볼 가치가 있다.     


패스토어 : 이 가속기가 어떻게든 국가 안보와 관련될 희망이 있습니까?

윌슨 : 아니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패스토어 : 아무것도요?

윌슨 : 전혀요.

패스토어 : 그런 관점에서는 가치가 없습니까?

윌슨 : 그것은 오직 저희가 생각하는 다른 관점에서만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문화에 대한 우리의 사랑, 그런 것들입니다. 군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패스토어 :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윌슨 : 네.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응용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패스토어 : 그럼 이 프로젝트가 소련과 경쟁하는 우리에게 제시하는 바는 없나요?

윌슨 : 오직 장기적인 기술 발전의 관점에서만 그렇습니다. 그 외에는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화가, 조각가, 시인인가? 제가 말씀드리는 바는, 이 나라에서 우리가 진정 존중하고 명예롭게 여기는 것들, 그것으로 나라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새로운 지식은 전적으로 국가의 명예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지킬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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