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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구름 Sep 24. 2020

일의 의미 (4.2) - 그럼에도 일이 의미 없는 이유

유튜브에서 re:work with google라고 검색을 하면 구들이 어떻게 업무를 조직하고 일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소개를 한다. 자신들의 일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해외 석학들의 강연들도 많아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중에 구글의 인사책임자인 라즐로 복이 구글의 인사관리에 관해 강연하는 20분 정도의 비디오 클립이 있다.


영어로 강연을 하고, 한글 자막도 없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말도 빠르다. 다행히 유튜브는 자막을 자동적으로 생성해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 강연자의 음성이 정확하면 꽤 좋은 자막과 함께 동영상 시청이 가능하다. 물론 여전히 영어자막이긴 하다.


영어가 귀에 잘 안 들리긴 하지만 끝까지 참고 듣다 보면 귀에 번쩍 들어오는 단어 세 개가 있다. 나는 그 세 단어가 20분 넘는 강연의 핵심 키워드라 생각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 good
- evil
- choice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이 선(good)한가, 악(evil)한가? 

만약 회사가 직원을 선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자율성과 권한을 위임한다. 그들이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성취하기를 바란다.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만약 회사가 직원을 악하다고 생각하면, 그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엄격한 규율을 만든다. 성과평가를 시행하고 잘하면 상을, 못하면 벌을 준다.  


성선설의 맹자와 성악설의 순자도 토론만 하다 결론을 내지 못했다. 우린들 어떻게 정답을 내릴 수 있겠는가?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질문에 정답은 없다. 


그렇기에 good와 evil의 다음으로 중요한 키워드는 choice였다. 


직원들이 선한가 악한가의 문제는 이성적 합의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 선택에 기반해 조직을 운영하면, 직원들은 그 선택에 맞는 대응을 한다. 


이는 앞서 설명한 '공동체 vs. 월스트리트 게임'의 연구와 '사회과학의 자기충족 예언’과 일맥상통한다. 직원들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직원들이 선할지, 악할지에 대해선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그것은 기업이 직원들을 선하다고 생각하느냐, 악하다고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인사 철학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의 의미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의 A대표는 직원들에 대한 불만이 많다. 직원들은 회사를 사랑하지 않으며, 주인 의식도 없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은 성과를 더 내는 것에 관심이 없고, 적당히 일하고 월급을 받아가려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A대표는 신상필벌에 대한 강력한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한다. 성과를 더 정확하게 평가한다. 고성과자에게는 더 높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성과가 낮은 직원은 퇴출한다.


새로운 성과주의 원칙이 발표되자 직원들은 불만이 많다. 성과를 어떻게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느냐는 둥, 이제 남이 잘 되는 꼴이 나의 못 되는 꼴이라는 둥, 협력을 해야지 경쟁을 시키냐는 둥. 


그런데 막상 성과평가를 시행하게 되자 직원들은 퇴출되지 않기 위해, 많은 인센티브를 위해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경쟁한다. 기업의 성과도 조금 개선되는 듯 보인다. A대표는 자신의 경영 스타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직원들은 대체로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했었다는 자신의 관점이 더욱 확실해진다. 신상필벌의 문화를 더욱 공고히 한다. 


사람에 관련된 생각과 철학은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묘사(description) 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처방(prescription)의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람에 대한 생각과 철학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일을 하기 싫어하는 이유, 일을 하는 이유가 오직 '돈'뿐인 이유, 자신을 '일벌레'로 여기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회사가 (혹은 사회적 패러다임이)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거대한 판 위에서 우리들은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존재로 '만들어지고'있다. 그러니 '일의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너무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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