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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구름 Sep 24. 2020

일의 의미 (4.1) - 그럼에도 일이 의미 없는 이유

인문학 열풍이 한창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경영학은 사회과학 중에 하나이고, 나는 경영학에서도 인사/조직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 사람이 조직 내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인문학 열풍에 편승해 나도 나의 학문 분야인 인사/조직관리의 중요성을 어필한다. 

수업 첫날, 혹은 외부 강의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물어본다. 


-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공통점은?
-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점은?


매번 수업을 진행하면서 얻는 답변은 비슷하다. 사람들은 자연과학은 객관적인 것이라고 하고, 사회과학은 주관적인 것이라 한다. 사회과학이 주관적이라고 하면, 사회과학자들은 좀 억울한 면이 있다. 자세히 보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과학’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두 분야 모두 과학적 법칙에 근거하여 사회현상을,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두 학문 모두 보다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한다. 차이점이라면 연구하는 대상이다. 자연과학은 의지가 없는 언제나 같은 조건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자연물이 연구의 대상이다. 사회과학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사람이 연구 대상이다. 여러 가지 답변을 듣고 나면 학생들은 나를 본다. 질문을 했으니 정리해서 답을 알려달라고 하는 눈치다. 딱히 정답이 있는 문제도 아닌데.


나는 답변을 내놓기보다는 한 가지 연구 결과를 알려준다. 바로 '죄수의 딜레마'의 배신과 협력 게임이다. (관련되어서는 아래 브런치 글에 간략하게 적어놓았다.) '죄수의 딜레마' 실험에서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사회과학의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of social science)'이다. 이것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중요한 차이점 중에 하나일 것이다. 


https://brunch.co.kr/@woonkihong/5



사회과학의 자기충족 예언에서는 패러다임이나 우리 사회가 믿고 있는 가치가 진리인지 거짓인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믿는 대로 행동한다. 


예를 들어, 1973년대 대표적인 이론이 하나 발표된다. 옵션의 가격을 예측하는 블랙-숄즈 모형이다. 블랙과 숄즈라는 학자가 발표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세한 것은 몰라도 된다. 경제학자가 아니기에 나도 구체적인 공식들은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처음 블랙-숄즈 모형이 발표되었을 당시에 30~40%의 오차가 있었다. 그런데 그 모형이 급속도로 유명해지자 너도나도 그 이론을 배우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 이론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그 이론이 시키는 대로 옵션 가격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모형이 유명해질수록 이론과 데이터는 점점 더 들어맞게 되었고, 1978년에는 2%의 오차율 밖에 보이지 않았다. 경제학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로 추앙을 받았다.


지배적인 이론과 패러다임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사람이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행동하면, 그 이론은 현실이 '되어'진다. 


위의 죄수의 딜레마 실험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게임의 제목을 '월스트리트'라고 적어놓은 것만으로도 실험 참가자들의 믿음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월스트리트' 그룹의 무의식 속은 다른 참가자들의 행동 기준이 경쟁과 승리라고 말한다. 즉, 상대방은 경쟁과 승리를 위해 의사결정을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렇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니 어쩔 수 없이 자신도 경쟁과 승리를 위해 배신하는 선택을 한다.


'자신은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뿐일까? 어쩌면 '월스트리트' 그룹에 속한 실험 참가자 모두 '나는 그렇지 않은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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