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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구름 Mar 04. 2021

zoom 강의와 스탠딩 데스크

또다시 zoom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코로나는 이번 학기에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지만, 다음 학기에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코로나 종식 선언이 되고, 학생 기숙사에 2인 이상 생활이 가능해야 캠퍼스에서 강의가 가능할 것 같다.


작년 처음 온라인 수업을 준비할 때에 정말 떨렸다. 내가 가르쳐야 할 강의 중 하나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영어. 아직도 영어 울렁증이 있는데, 화면을 통해서 영어로 강의 내용을 전달한다고 하니 너무 두려웠다. 이번 학기에도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다. 지난번에 한번 해봐서 그런지 한결 수월한 느낌이기는 하다. 그리고 오프라인보다 더 많은 장점이 보이기도 한다.


#첫째.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의외로 토론이었다. 수업시간, 나의 목표는 항상 같다. 내가 가르친 양 보다 학생들이 배운 양이 더 많게 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 한 강의에는 43명이 등록했다. 오프라인이었다면 제법 큰 강의실에서 강의를 했어야 했다. 큰 강의실에서 토론을 하면 난감할 때가 있다. 한쪽 구석에 있는 사람이 손을 들고 이야기를 한다. 목소리가 작으면 반대쪽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내가 듣고 이를 반대쪽에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토론은 나와 학생의 대화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zoom으로 토론 수업을 할 때에는 발표자의 얼굴과 목소리가 참석한 학생들이 켜 놓은 자신의 스크린과 스피커로 또렷하게 전달이 된다. 목소리가 작아도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음질로 전달이 되니 상대방의 이야기를 더 잘 경청하게 된다. 더 잘 경청하게 되면 더 잘 발표한다. 


#둘째. 온라인 강의를 통해 오히려 학생들과 개별적인 관계가 더 형성되기도 했다. 오프라인 때에는 개인 과제를 반드시 출력해 와야 했다. 내가 편해서다. 스크린으로 과제를 읽기보다는 종이로 읽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제출한 출력물을 읽고 코멘트를 달아 주기는 어렵다. 기껏해야 제출한 에세이에 밑줄을 긋는 것 정도와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다. (참고로 과제는 거의 매주 하나씩이었다.)


온라인 강의에서는 모든 과제를 BlackBoard라는 온라인 강의 시스템을 통해 제출한다.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되어있던지 개별 과제를 읽으며 바로 밑줄과 코멘트를 줄 수 있다. 손글씨가 힘들어 코멘트를 줄 수 없었다면, 키보드로 코멘트를 주는 것은 비교적 쉽고 빠르다. 이는 언제 어느 장소에서든 노트북만 있으면 가능하다. 그렇게 쌓인 과제와 코멘트는 각 개인별로 분류되어 학생들의 생각과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배움은, 특별히 내가 가르치는 "조직에서 사람을 관리하기"와 같은 것들은 단순 지식보다는 관계를 먼저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온라인 수업을 통해 개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강의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는 오프라인 강의로 복귀해도 가능하겠지... 힘들어서 그렇지. ㅠ



수업을 준비하면서 또 하나 고려했던 것은, 강의를 하는 나의 방식이다. 내 사무실에는 퇴직을 하는 동료 교수가 물려준 스탠딩 책상이 있다. 여기에 컴퓨터와 카메라를 설치하여 강의를 한다. 학생들의 얼굴은 모두 zoom의 화면을 통해 스크린에 나타난다. 서서 강의를 하면 살짝 걸음을 옮길 수도 있고, 두 팔을 휘젓기도 좋다. 중간중간 어깨를 활짝 펴는 스트레칭도 쉽다. 


파워 포즈(Power pose)에 관한 연구가 있다. 파워 포즈란 어깨를 쫙 펴고 거만(?)한 듯한 자세를 취하거나, 원더우먼 자세처럼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꼿꼿 하게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다리를 책상에 올려놓는 것. 힘이 있는 자만이 취할 수 있는 자세이다. 


연구자는 실험 참자가들에게 약 2분 동안 high power pose 또는 low power pose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Low power pose는 수줍게 앉아있거나 웅크리고 있는 자세이다. 물론, 실험 시작 전/후에 침 분비물을 채취하여 그 안에 담기 호르몬을 분석했다. 


실험 결과에 의하면 단 2분 동안이라도 힘 있는 자세를 취한 사람들에게서는 자신감을 상징하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증가하였고, 힘없는 자세를 취한 참가자들은 스트레스를 상징하는 코티졸 호르몬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 이는 스마트폰과 같은 작은 스크린을 웅크리고 보는 경우, 큰 스크린을 보며 일을 하는 경우에서도 호르몬의 차이를 만든다고 한다. (집에 큰 TV라도 놓아야 하나?)


나에게 있어 파워 포즈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서 눈높이의 스크린을 응시하며 진행하는 수업이다. 가끔 영어가 버벅거리고 할 말이 없을 때에는 어깨를 활짝 피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 있는 듯한 자세로 자신 있게 답변을 하려고 노력한다. 영어 울렁증도 있고, 스크린으로 강의를 전달해야 할 때에, 서서 강의하는 것은 나에게 훌륭한 power pose 전략이었다. 


온라인 강의를 하거나 듣는 것이 집중하기 힘들다면 나만의 power pose를 찾아보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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