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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Jan 15. 2024

돈 없는 거지랑 결혼하려고 그러냐. 下.

그러는 이모부님은요?

----- 上편 마지막 부분 보기 -----

이모부 : 부모님은 뭐 하시고?

나 : 네, 어머님은 쉬고 계시고 아버지는 택시하고 계십니다.

이모부 : 개인택시 하시는 건가?

나 : 아뇨, 회사택시 하십니다.

이모부 : 사납금 맞추다 보면 돈벌이가 좋지는 않을 텐데. 그럼 결혼할 때 부모님이 경제적인 지원은 못해주시겠네?


조금씩 열이 받기 시작합니다. 그래. 물어볼 수 있다. 이 정도는 예상하고 왔잖아. 평정심을 유지하자.

마인드컨트롤. 마인드컨트롤....



나 :.... 네. 별도 지원받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이모부 : 부모님은 그럼 택시회사 다니시는 아버님이 버는 돈으로만 사시는 건가?

나 : 네 그렇습니다.

이모부 : 경제적인 지원은 쉽지 않겠구먼.

나 : 네,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

이모부 : 집은 어떻게 하려고? 이러다 결혼하고 원룸 사는 거 아냐? 오피스텔 전세는 가겠어?

나 :....(딥, 빡.)


밥상을 뒤엎어 버리고, 그분 면전에 쌍욕을 시전하고 나오고 싶었습니다. 네 압니다. 저 가진 거 없고, 능력 없는 부모에, 남들 다하는 아파트는 꿈도 못 꾸는 거 다 압니다. 그리고 저분이 대표해서 저한테 독설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평정심을 테스트하려는 건가?

내 인성을 보려고 궁지로 모는 질문을 하는 건가?

무슨 대기업 압박면접 같은 그런 건가?

근데, 부모까지 들먹이면서 이 정도의 질문을 한다고?

너무 예의 없는 거 아닌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찹니다. 마음속으로 큰 심호흡 두 번.


나 :.... 제가 열심히 벌어서 앞으로 해도 됩니다.

이모부 : 아니 지금 당장 결혼하면 원룸으로 들어가야 될 거 같은데? 어디 전세 갈 돈은 있고?

나 : 저희 부모님은 경제적 지원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와준다고 하셔도 저는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 힘으로 잘 헤쳐왔고, 앞으로도 자신 있습니다.


내적 흥분이 극에 달해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와이프가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느껴집니다. 글로 써서 이러지 저 대화가 사실 3분도 안 걸린 대화입니다. 장모님이 급히 말립니다. 뭘 그런 걸 물어보냐고. 둘이 어련히 알아서 잘 살지 않겠냐고.(사랑합니다. 장모님.)


이모부 : 난 둘이 결혼생활 시작을 원룸에서 할까 봐 그러지. 원룸밖에 갈 곳이 없을 거 같은데.


아... 저놈에 원룸얘기 진짜.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른 채로 후딱 먹고는, 차 막힐 테니 일찍 출발하라는 장모님 말씀. 밥 먹은 게 체할 거처럼 거북합니다. 어르신들께 차례로 인사를 드리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내는 같이 오지 않았습니다. 결혼 전이었기에 장모님 댁에 있어야 했으니까요.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차 안에서 온갖 쌍욕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분이 가라앉질 않습니다. 그분의 표정, 말투, 단어선택, 내뱉은 문장, 쳐다보는 눈빛, 제스처까지.


하지만 현실을 냉정히 생각해 보고는 이내 마음은 누그러집니다.

결혼할 때 빚이 3천만 원 정도 있었습니다. 어머님 거처문제로 서울에 전셋집을 얻는데, 7년간 모은 5천만 원이 전부 들어가 있었거든요. 그 와중에 원하던 외국계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어 저는 인천으로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 때문에 서울 전셋집을 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인천에서 전세자금대출 3천만 원을 얻어 3천5백짜리 원룸 전세를 들어갔던 것입니다.

전세 3천5백만 원. 이건 말이 집이지. 그저 몸만 뉘이고 잠만 자는 그런 곳이었죠. 월세도 있었는데, 월세 내느니 대출을 얻어서 이자 내는 게 더 싸더라고요.


나중일이지만, 결혼할 때 이 빚을 장모님이 대신 갚아주셨거든요. 그걸 갚고 작지만 지금의 오피스텔 사는데 대출 새로 내라면서 말이죠.


누그러진 마음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비참한 기분이 느껴지더군요. 돈 없는 서러움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다른 분들은 너무나 다 좋으신데, 유독 그 이모부님 한분만 저한테 모질게 그랬던 게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테스트라고 하기엔 너무 독한말들을 해대셔서....


간다고 인사드리는 와중에 저 뒤에서 아주 작게 나지막이 들려오는 이모부님 목소리.

뭐 한다고 돈 없는 거지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이랑... 쯧.


하... 열은 받지만, 너무나 팩트이기에 받아들였죠.

결혼하고 몇 년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저 이모부님도 젊었을 때 외국계 회사를 다녔고 어떤 사정에 의해 회사를 나오게 되셨답니다. 지금은 집에서 쉬신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모님이 능력이 좋으셔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찌 보면 본인의 무능력함에 대한 불만이나 화, 평소 친척사이에서 없던 존재감을 저라는 존재를 희생양 삼아 드러내려 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제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이해합니다. 당시의 저는 누가보아도 결혼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기 때문이죠.


- 돈 없고 노후준비 하나도 안 된 부모.

- 결혼자금 하나 없던, 가진 돈도 없던 나.

제가 자식이 있어도 결혼시키기에는 좀 그렇긴 했네요.(ㅋㅋ)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 내 와이프가 이모부님 본인 자식은 아니잖아?(응?!) 왜 저런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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