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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는 거지랑 결혼하려고 그러냐. 上.

원룸은 아니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by 우너빈

돈 없다며, 부모능력 없다며 면전에서 대놓고 까는 사람 보신 적 있으세요? 전 딱, 한번 빼곤 살면서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의 처가댁 결혼 전 첫인사를 드렸던 일에 대해 풀어보겠습니다. 저런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를 느꼈던 결혼 전 최대의 사건(?)이었던 그때 이야기.


제 아내는 연애기간까지 합치면 1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한 소중한 사람입니다. 저의 배경이나 금전적인 부분등 그 어느 것 하나 따지지 않고 오로지 저란 사람 하나만 좋아해 주던 착한 사람입니다.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결혼을 미루고 있었거든요. 외국계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면서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추석.

아내의 친척분들이 모두 처가에 계신다고 하여 찾아뵙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무척이나 떨리더군요.

가진 거 없는 나인데, 이런 나를 이해해 주실까.

가서 괜히 마음에 상처받는 소리만 듣고 오는 건 아닐까.

오만가지 걱정과 생각이 추석당일까 저를 휘감고 있었죠.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추석 당일.

오전에 부모님께 아내와 함께 인사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처가로 출발했습니다. 심장은 쿵쾅대고, 긴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을 마음속에서 끝없이 되뇌었습니다.


우리 부모님과는 다르게 좋은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계셨던 처가. 20명은 돼 보이는 친척분들이 반겨주셨어요. 저 때문이 아니라, 매번 이렇게 모이는 가족이었습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저녁 식사 자리. 저를 정 가운데 자리에 앉히시더군요. 긴장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눈길이 온몸으로 전부 느껴졌습니다. 나 혼자 외딴집단속으로 들어간 것이니까 당연한 거겠죠.


장인어른, 장모님. 제가 너무 좋아합니다. 어떤 면에선 우리 부모님보다 더 좋아합니다. 우리 부부에 대한 사랑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셔서 더욱 좋아합니다.


시작된 취조 타임.

제일 고령자이신 할머님께서 물으십니다.(딱 보아도 뿜어져 나오는 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할머님 : 회사는 탄탄하지?

나 : 네, 글로벌한 회사라서 망하거나 할 일은 없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할머님 : 한 달 월급이 얼마지? 통장에 찍히는 금액.

나 : XXX원 정도 입금되고 있습니다.


이후로는, 무슨 일을 하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물어오셨습니다. 기분 하나도 안 나빴습니다. 옛날분이시기도 하고 어른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이라는 생각 했거든요. 오히려 부모님에 대한 경제력이나 이런 부분은 하나도 묻지 않으시더라고요.

오로지 저란 사람에 대해 집중된 질문만 하셨습니다.


자, 이제 저녁 좀 먹자. 배고프네.

라고 하셔서 식사가 제대로 시작되었습니다. 장인어른, 장모님이야 워낙 저에 대해 많이 들으셨고 따로 말씀도 많이 드렸어서 다 알고 계셨어요. 맛있는 저녁식사. 기가 막힙니다. 너무 맛나더군요.


그렇게 20여분 정도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하지만, 제 악몽 같은 첫인사자리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주인공은 바로. 아내의 이모부.


두 번째 취조시간. 맞은편에 앉으셨던 이모부께서 질문을 해댑니다.


이모부 : 외국계회사가 안정성은 아무래도 떨어지지 않나? 몇 년 전에 그 외국회사도 갑자기 철수했잖아.

나 : 네, 뉴스로 봐서 압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곳은 어쩌고 저쩌고... 설명에 설명.

이모부 : 어쨌든 그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조심해야지.


이때부터 기분이 조금 안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제가 무슨 죄인인 마냥 정말 취조하듯 질문을 해댑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모든 것을 숨기지 않기로 작정하고 간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질문이 오더라도 솔직하게 말하기로 사전에 굳게 마음먹었었죠.


이모부 : 부모님은 뭐 하시고?

나 : 네, 어머님은 쉬고 계시고 아버지는 택시하고 계십니다.

이모부 : 개인택시 하시는 건가?

나 : 아뇨, 회사택시 하십니다.

이모부 : 사납금 맞추다 보면 돈벌이가 좋지는 않을 텐데. 그럼 결혼할 때 부모님이 경제적인 지원은 못해주시겠네?


조금씩 열이 받기 시작합니다. 그래. 물어볼 수 있다. 이 정도는 예상하고 왔잖아. 평정심을 유지하자.

마인드컨트롤. 마인드컨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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