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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땐, 반지하 월세방에서도 애 낳고 살았어. 딩크?

아니 엄마, 나도 그렇게 살라는 거야 지금?

by 우너빈

저는 딩크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딩크가 아닙니다.

동갑인 아내와 마흔 살이 훌쩍 넘었지만 아이를 낳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딩크는 아닙니다.


이게 무슨 멍소리인가 싶으시죠? 마흔 살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않고 있지만, 딩크는 아니다라...

더 쉽게 설명할 방도가 없어 이렇게 밖에 표현이 안됩니다. 책을 좀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한 해. 어머니와 1년 간 연락을 끊었었습니다. 원인은? 바로 아이였죠.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 니 마누라 나이 더 먹으면 이제 애도 못 낳게 된다. 지금도 노산이다. 얼른 낳아라. 애도 못 낳는 계집애랑 결혼해서 이런 거다. 등등. 독설과 폭언을 우리 부부를 향해 날리시던 어머니.


네, 연 끊을 생각으로 연락을 끊어버렸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 생겨 다시 연락하고 있고요.


"엄마 땐, 반지하 월세방을 살면서도 애 낳고 키웠어. 다 그러고 살았어."


욱 합니다. 그건 엄마의 인생이잖아. 엄마 때는 다 그렇게 살았으니 나도 그러고 살라고?

반지하 월세 살면서.

언제 쫓겨 날지 모르는 상태로 아슬아슬하게 살면서 애를 낳고 키우라고?

내 인생도 갑갑하게 칠흑같이 어두운데 내 자식도 나처럼 살게 하라고?

그러면 내 인생은 또 어떻게 살라고?

아등바등 대며 평생을 돈 걱정하며 살라고?


나의 예전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저 말. 끔찍하게도 기억하기 싫었던 그 트라우마.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엄마.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낳고 싶어.

왜 엄마 인생관을 나한테 강요해.

나 지금 행복해. 변수가 생기는 것이 반갑지 않아.

내가 알아서 할게!!!!! 그만 좀 얘기해!!!!


마지막 통화였죠. 요즘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죠? 출산율이 0.7명 아래로 더 떨어질 거라고 하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어르신세대들. 하지만 저는 젊은 세대들이 이해가 됩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누가 누굴 책임지겠습니까.


나도 어렵고 힘들게 컸는데, 내 자식도 똑같이 크면 어찌합니까. 이 고통은 내 세대에서 종결짓자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30대 때, 외국계회사에 입사하며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 난 아직 한~~~~~~~~~~~참 멀었구나라고 말이죠.


당시 한참 오르던 집값을 봐도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내가 갈 수 없는 세계라고 이미 단정지어 버렸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 희망이라는 게 있어야 아이를 낳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특히나 집에 대한 결핍이 컸던 저는 제대로 된 환경의 '주거공간'이 아니면 아이를 절대 낳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이 들어 후회할지도 모르죠. 혹자는 그럽니다.

부부가 나이 들어 애가 없으면 그 삶이 지루하다고. 이것도 역시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부사이가 재미없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입니다.


전 아내와 사이가 좋습니다. 집에 붙어있을 땐 둘이서 종일 낄낄댑니다. 개그코드도 잘 맞습니다. 대화가 많습니다. 하루에도 5번에서 6번 통화합니다. 인생에 어떻게 매일 이벤트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통화하다 보면 또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집니다. 저녁 먹으며 수다를 떱니다. 후식 먹으며 수다를 떱니다.


그렇게 자기 전까지 우리는 즐겁습니다.


솔직히, 아이가 없더라도 나이 들어 아내와의 삶이 지겨울 거 같지 않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애를 안 낳겠다는 건 아닙니다. 마흔 살이 넘도록 안 낳았을 뿐이지. 딩크는 아니거든요.


우리 부부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애를 낳고 싶지는 않습니다.

뭐... 언젠간 낳겠죠. 안 생기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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