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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Aug 27. 2023

골방 철학자

 홀로살이의 장점은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이 많다는 거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 없이 사는가’와 같은. 왜 생각 없이 사는지를 생각할 때가 많다. 그리고 매번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채 끝나버린다. 참으로 쓸데없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따위의 생각을 할 때면 철학자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소설 <아홉 살 인생>의 여민이는 혼자 사는 옆집 백수 형을 골방 철학자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의 백수 형은 자살했지만, 현실 속의 골방 철학자인 나는 꾸역꾸역 살아나가야 하기에 생각의 끈을 놓지 말고 이어가 보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정의 내린다. 아닌가? 잘 모르겠다. 소개팅에 나가면 그렇던데.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필요하다.


 나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확신이 없다. 이것만큼은 의심의 여지없이 내가 좋아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다가도 음 아니야 사실은 잘 모르겠어,라고 맺어질 때가 더 많다. 좋게 말하면 무던한 편이고 나쁘게 말하면 뾰족한 개성이 없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주아주 사회적인 동물이라 가능하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 보려고 애쓴다. 정말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왜 아주아주 둥근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 심연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해리포터의 펜시브 같은 게 필요하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일화라든가,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이야기. 그도 아니면 헤어진 연인과 빚었던 갈등 같은 것들이 해답을 가지고 있을 터다. 어쩌면 나는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기를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썩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닐 테니.

     

 뭐 어찌 됐든 그런 삶을 쭉 살아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언가를 좋아해야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좋아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때로는 나 자신을 설명하는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해”라는 주문은 그래서 어렵다. 대신 싫어하는 걸 안 하는 건 쉽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는, 좋아하는 것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것의 우선순위를 생각한다. 예컨대. 나는 뚱뚱한 걸 싫어한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움직이는 걸 더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뚱뚱하게 사는 걸 택하는 건가......? 이게 뭔 개소리야. 아무튼. 위와 같은 관점으로 나를 삶을 다시 조명해본다. 대학생 때의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공무원 시험을 정말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영화나 드라마를 미치도록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위와 같은 기적의 소거법을 진행하다 보니 이 바닥으로 들어선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좋아하는 걸 하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이고, 싫어하는 걸 안 하려고 드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후자에 까까운 것 같다.


 매번 이런 식이다. 도대체 결론이 뭐냐.

 나는 누구인가? 게으른 사람.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잘 모르겠고,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선택을 하는 편.


 참으로 쓸데없다. 헛소리를 길게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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