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호지방이 Aug 20. 2023

신혼부부세요?

 “신혼집 알아보시나 봐요?”


 서릿발 같은 물음이 날아들자 한여름에도 등골이 오싹하다.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러 다니는 30대 중반의 남자. 생각해 보니 그런 오해를 살 법도 하다. 살면서 여자친구 있냐는 질문은 많이 받아봤어도 신혼부부냐는 물음은 처음이라 난감하다. 그치만 당황할 게 뭐 있나. 여자친구 있냐는 물음을 받았을 때와 같은 답을 하면 그만이다. 아니요^^      

 

 중개인님이 보여주신 아파트가 혼자 살기에는 꽤 평수가 넓었다. 게다가 단지 주변에 초등학교가 있어 아이를 키우는 신혼부부들이 많이 거주하는 듯하다. 늘 그렇듯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중개인님은 신혼부부라면 조금이라도 더 적합한 매물을 찾아주려는 마음으로 그런 물음을 던지셨으리라. 하지만 이걸 어쩌나. 이상하게 삐딱선을 타버린 내 마음이 그들의 물음을 이렇게 곡해해서 듣고 있었다.      

 

 네 이놈. 어디 솔로 주제에 굳이 아파트를?      

 

 굳이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침실과 생활공간이 분리되어야 함을 몸으로 느끼는 나이가 됐다. 전세사고가 빈번하게 터지는 빌라는 싫다. 어느덧 서울 생활 13년 차. 군대 2년을 빼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지내왔다. 성북구에서 동대문구로. 동대문구에서 마포구로. 마포구에서 강서구로. 형편에 따라 말뚝을 여러 차례 옮겨 박았지만 말뚝이 서울 밖을 벗어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코딱지만 한 집에 세 들어 살면서도, 엄마의 말뚝마냥 어떻게든 서울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한 번이라도 말뚝이 서울 밖을 벗어난다면, 그 말뚝을 다시 서울 안으로 집어넣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웃기는 일이다. 회사든 학교든 걸어서 코앞 거리에 살면서 서울이 자랑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을 이용하지도 않던 주제에. 관련 업계에 종사하면서 연극이나 뮤지컬도 자주 보지 않으면서. 백화점은커녕 아웃렛도 잘 안 다니는 마당에. 뭐가 그렇게 서울이 좋았을까.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경계선 하나를 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경계선 하나를 넘으니 애써 외면해 왔던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코딱지만 한 셋방이 아니라 신혼부부냐는 물음이 날아올 정도의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게 됐다. 삭막한 빌라촌이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잘 들리는 사람 냄새나는 동네인 듯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기도에 말뚝을 박았다. 언젠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온다면 신혼집을 알아보는 날이려나. 하지만 쉽게 올 것 같진 않은걸^^ 

작가의 이전글 근본을 찾아서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