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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Aug 13. 2023

근본을 찾아서Ⅰ

 가짜가 판치는 세상. 강호의 도리는 어디에 있나.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했던 임란의 왜구 마냥 빠르게 수도권을 접수했던 유가네 닭갈비. 그 흉측한 것이 대학가에 위세를 떨치던 2010년대 초중반. 춘천에서 막 상경한 촌뜨기였던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에 좌절하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동기 무리 사이에서 감자 혹은 닭갈비 따위로 불리곤 했는데, 유가네라는 노-근본 닭갈비의 등장으로 나의 정체성이 위협받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그들에게 나는 곧 춘천이자 강원도였다. 기아 타이거즈 팬이라는 광주 것들이 강원도에는 야구팀 하나 없다며 ‘강원 포테이토즈’라도 만들라고 놀려대도. (기아 망해라) 춘천의 화폐는 감자가 아니냐고 묻는 부산 깽깽이들의 갈굼에도. 절대 굴하지 않던 나는 가성비를 내세운 유가네 닭갈비의 등장에 조총으로 무장한 왜구 앞의 조선군처럼 속절없이 무너졌다.

     

 “춘천 닭갈비보다 낫네”

 기아 팬인 한 녀석이 째진 눈으로 놀리듯 말했다. 한 놈이 시작하자 사방에서 공격이 몰려왔다. 아- 이건 명백히 춘천에 대한 선전포고다. 이딴 요상한 양념을 버무린 저렴한 닭고기를 닭갈비라고 칭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자랑스러운 춘천시민으로서 녀석들의 선전포고에 대응할 의무가 있었다. 닭갈비 철판으로 거북선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유가네는 엄청난 가성비를 자랑했고, 가난했지만 고기는 먹고 싶던 굶주린 촌뜨기들 앞에서 이 전쟁은 승산이 없었다. 더 애석한 일은, 가난하지만 고기는 먹고 싶었던 촌뜨기에 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양념까지 싹싹 핥은 내 앞접시가, 이 전쟁에서 그들이 승리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렇게 나는 내 고향을 배신했다.      


      

 하지만 그 어떤 프랜차이즈가 생겨도 내가 절대 배신할 수 없는 음식이 있으니, 그건 바로 막국수다. 내 고향은 정확한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춘천시 퇴계동이다. 이곳은 퇴계 이황의 외가로 퇴계가 이 지역에서 지낸 적이 있어 퇴계동이라는 지명유래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소개하는 이 가게는, 그런 퇴계 이황의 정신을 담은 지역명을 따서 퇴계 막국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 가게 이름부터 근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막국수를 시키면 제공되는 찬은 간단하다. 열무김치 단 하나. 이 역시 근-본이라 할 수 있다. 막국수가 나오길 초조하게 기다리며 김치를 아삭 씹으면, 싱싱한 식감에 감탄하기 무섭게 열무가 머금고 있는 담백한 양념이 입안으로 폭-하고 터진다. 담백한 열무 수류탄 같은 느낌이랄까. 열무김치만으로 기다리기 힘들다면, 함께 제공되는 육수를 먼저 한 국자 떠먹어보길 추천한다. 상큼함과 달콤함 그 사이 어딘가 있는 육수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걸쳐 있는 강원도의 설움을 맛으로 구현해 낸 것만 같다. 시큼 달큼한 차가운 육수를 한 모금 삼키면, 식욕이 바짝 돋아 침샘에서 침이 절로 마중 나온다.     


 

 요즘은 어느 식당을 가나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나눠서 주문을 받지만 이곳에서는 오로지 막국수뿐이다. 제공되는 육수를 어느 정도 붓느냐에 따라 물이냐 비빔이냐 결정된다. 우리가 현재 물막국수 비빔막국수라고 부르는 것들은 태초에 이 막국수에서 파생됐으니, 그야말로 막국수의 뿌리. 근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막국수 높이의 1/3 정도 육수를 붓고 물과 비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박자박하게 먹는 것을 선호한다.      


 면은 빨간 양념장으로 이불을 덮고 있다. 그 위에는 무절임, 계란, 깨 등이 뛰놀고 있다. 설탕과 겨자, 식초로 적당히 간을 한 뒤 젓가락으로 면을 술술 풀어준다. 막국수의 면이 메밀로 만들어졌으므로 답답하게 꼬여있는 우리네 인생과 다르게 아주 술술 풀린다. 적절한 양념을 머금은 면이 풍기는 메밀향이 입안에 가득 찰 때쯤, 함께 시킨 녹두 빈대떡을 먹어줘야 한다. 차갑고 부드러운 메밀면을, 겉이 단단하고 바삭한 빈대떡으로 감싸 먹어보라. 이것이 바로 단찬단찬이다.      

 

 춘천 막국수의 가장 큰 장점은 기분 좋은 배부름이다. 조금 먹어도 쉽게 배부르고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 된다. 칼국수나 짜장면을 먹고 난 뒤 속이 더부룩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면, 나중에 기회가 될 때 퇴계막국수와 비교해 보길 바란다. 막국수를 배불리 먹었다면 후식으로는 커피다. 남춘천역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춘천 MBC가 나오는데 공지천 연못을 낀 카페의 풍경이 정말 예쁘다. 여름 땡볕에 적당히 걷다 보면 어느새 뒷덜미에 땀이 송골송골 차오른다. 이럴 때는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어떤 이탈리안이 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라고. 노-근본 음료라고 슬퍼할지도 모를 일이다.      

 

 근데 어쩌라고. 커피는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지. 훗. (*언젠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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