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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Oct 01. 2023

어떤 장면

 유년 시절에는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동네 뒷산을 억지로 오르곤 했다. 당시의 나는 어머니가 어떤 특정한 한 장면을 구현해 내기 위해 살아간다고 느꼈다. 그 무렵 어머니가 꽂혔던 씬은 동네 뒷산을 오르는 가족의 화목한 몽타주였다. 막 살이 오르기 시작했던 나는 산을 오르는 일이 참 싫었다. 그저 야트막한 동네 뒷산일 뿐인데. 그때는 히말라야보다 높게 느껴졌다. 종아리와 허파가 비명을 내질렀다. 좁혀지지 않는 어머니 아버지와의 거리. 부모님의 커다란 등판. 호시탐탐 발을 거는 나무뿌리들. 아무리 올라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나무 계단. 메이플스토리로 치면 인내의 숲 같았던....... 요 정도가 동네 뒷산에 가지고 있던 기억이다. 인내의 숲을 억지로 몇 번이나 클리어하고 난 뒤에는 자연스레 고등학생이 됐고, 수험생활을 핑계로 뒷산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연휴를 맞아 고향 집에서 이틀을 빈둥대다 보니, 어린 시절 깨던 인내의 숲 퀘스트가 생각났다. 무엇보다 날씨가 말이 안 됐다. 오늘 같은 날 집에 처박혀 아시안게임이나 본다? 하늘이 나에게 천벌을 내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하늘이 하늘색이었다. 그중에서도 시골의 하늘색. 시골의 하늘색을 24개의 한글 자모를 조합해 그려내지 못하는 표현력이 원통할 따름이다. 언젠가 크레파스를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골하늘색이라는 색상을 만들고 말리라. 무튼, 시골하늘색도 즐길 겸 인내의 숲 정복에 나섰다. 가서 사진이라도 한 장 박자. 예전처럼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나이 먹고 동네 뒷산을 오른 소감 하나. 어렸을 적 히말라야보다 무서웠던 동네 뒷산은, 산이라기보단 조금 높은 언덕에 가까웠다. 날이 선선해서 그런지 땀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나이 먹고 동네 뒷산을 오른 소감 둘. 부쩍 세월의 흐름을 맞은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다소 클리셰적인 슬픔과 왜소해진 등판.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이제야 동네 뒷산이 높아졌나 보다. 의식하며 발을 맞춰 가려고 해도 조금만 방심하면 거리가 벌어졌다. 어머니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인데, 전직 소방관이었던 아버지마저 이렇게 힘들어하다니, 이건 좀 충격이었다.

      

 시골하늘색이 최대한 많이 걸리게 잡은, 아이폰의 장점을 한껏 활용한,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사진들을 보며 엄마 생각을 했다. 그때도 하늘이 오늘처럼 예쁘지 않았을까. 땅만 보고 걸으며 투덜대는 아들과 귀찮아하는 남편을 이끌고서라도 어떻게든 예쁜 하늘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날씨였을까. 내가 시골하늘색을 발견하고 참지 못해 뛰쳐나간 것처럼.

      

 산에 떨어진 가을 도토리를 줍듯, 주울 수만 있다면 젊은 시절 엄마의 마음을 주워 간직하고 싶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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