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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Sep 24. 2023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마음을 전하는 일 같다.

 좋아하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 서운한 마음.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무슨 마음이든 먹는 건 쉽지만 전하는 건 어렵다. 전하지 않으면 땡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삶이 그토록 호락호락할 리 없지. 신은 늘 우리를 아이러니의 세계로 이끈다. 첫눈에 반한 사람을 만나게 하고, 목소리만 들어도 너무너무 미운 사람이 생기게 하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받게 한다. 멘토스 같은 마음에 콜라를 자꾸 들이붓는다.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억누르기만 한다면, 이 멘토스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 

     

 어제는 누군가에게 축하하는 마음을 전해야 했다. 그것도 대략 300명 앞에서. 

 결혼식 축사라니. 다섯 명만 모여도 주로 듣는 편에 속하는 내가 과연 이걸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술만 먹으면 이중인격자처럼 눌러 왔던 진심을 토해내는 편이니 축사하기 전에 병 샷이라도 하는 게 나으려나. 결혼식 3일 전부터 파워 I인 나의 영혼이 괴로워하는 게 느껴졌다. 회사 일 따위가 손에 잡힐 리 없다.

      

 그렇게 힘들면 축사를 거절하면 될 일 아니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진심이니까. 나는 김창옥 아저씨 같은 센스도 없고, 개그맨처럼 웃기지도 않고, 딕션도 흐지부지하지만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미션을 세상에서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용사는 누구인가? 바로 나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뭐에 씌었나? 축사를 제의 받는 순간, 뒷일을 책임지지도 못할 근자감이 어디서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중요한 건 진심을 전하는 일이다. 축하하는 마음을 상대방에게 담담하게 전할 수만 있다면, 그럼 된 거다. 근데 이게 눈물 나게 어렵다. 축하하는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담담하게) 결혼 축하해......? 어려움이 지나간 자리에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들에게는 인생의 한 번뿐인 소중한 순간일 텐데, 내가 그런 순간에 기스를 내는 것 아닐까. 나는 마음을 전하는 일의 무거움을 가벼이 여긴 죄로 벌을 받게 되는 걸까.

     

 보통의 드라마에서는 이런 고난을 마주한 주인공이 조력자를 만나 위기를 극복하고, 킹스 스피치처럼 엄청난 연설을 성공시킨 뒤, 청중들은 감동의 눈물을 글썽이지만, 현실 속 나의 축사에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없었다. 다만 어떻게든 해냈다. 마음을 전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 마음이 상대에게 온전히 가닿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러한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오늘, 축사를 부탁한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최고로 행복한 결혼식이었다고.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멘토스 100개를 모아놓고 콜라 세 통 떄려넣은 기분? ㅋㅋㅋㅋㅋ. 덕분에 나도 너무 짜릿한 경험을 했다고 답해주었다. 누군가에게 축사 제의를 받았다면, 엔간하면 거절하지 않고 용기 내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모두에게 박수받으며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일 테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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