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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Oct 09. 2023

암욜맨Ⅲ

 (알고 보니 죽는 병도 아니었지만) 암 선고를 받던 순간 가장 두려웠던 건 죽음이 아니었다. 죽음은 무섭지 않았다. 죽음보다 무서웠던 건 살아남은 이후의 삶이었다. 수술을 받고 나면 예전처럼 살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더 이상 밤도 못 새울 거 같고. 야외에서 활동적인 일을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기 힘든 삶이 될 수도 있다. 일상에서든 직장에서든, 이 병의 여파로 내가 예전의 나처럼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때면 무너졌다.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죽는 것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더 싫고 무서웠다. 그래서 수술 이전의 삶을 손아귀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집착했다.     


 암 선고를 회사에 알리며 가장 먼저 했던 짓은 사수 선배를 협박하는 일이었다. 당시 들어가 있던 프로젝트에서 빠지기 싫다는 이야기. 그리고 내 자리를 지켜달라는 이야기. 그냥 싫다고 하면 말을 들어주지 않을까 봐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 


 “암에 걸려 죽는 것보다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게 더 싫어요 선배. 현장에서도 빼지 말아 주세요, 원래 내부는 다음 시즌에 들어가기로 했잖아요.”      


 내가 프로젝트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성숙한 생각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도, 현장의 활기에 대한 그리움도, 일에 대한 열정도 아니고 그저 수술 이전의 삶에 대한 집착이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러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황급하게 회사로 복귀했다. 부모님은 집에서 좀 더 쉬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상암동에 있는 내 자취방의 동굴로, 내가 이전의 삶을 두고 왔다고 믿는 공간으로, 도망치듯 올라왔다. 엄마는 내가 효자암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을 때도 울음을 참아냈었는데 뭔가에 쫓기듯 서울로 도망가던 나를 보며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기어이 내 고집대로 프로젝트에서 빠지지도 않았고, 현장에도 투입됐다.     


 다행히 나는 좋은 사람들을 동료로 두고 있었다. 사수 선배는 수술 이전의 삶을 붙잡으려는 나의 발버둥을 큰 왜곡 없이 받아주었다. 그 발버둥을 받아주기 위해 선배가 얼마나 많은 애를 썼는지 지금은 알고 있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체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현장 일은 고되고 버거웠다. 그런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를, 선배가 묵묵하게 안고 갔다. 내가 내는 펑크를 뒤에서 티 안 나게 카바 쳤다. 현장에서 후반으로 내 롤을 바꿀 때도, 내 자존심을 신경 썼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좋은 동료들의 배려 덕에, 나는 오히려 손아귀에 꽉 쥐고 있으려던 수술 이전의 삶을 자연스럽게 놓아줄 수 있었다. 예전의 삶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일이다. 시간이 지나며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건 당연한 자연의 섭리다. 더구나 큰 수술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더 이상 밤을 새우지 못하거나, 현장이 버겁거나, 주량이 예전 같지 않은 건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일 뿐이다.    

  

 그 진리를 깨닫고 난 지금의 나는, B급은 아닌 C급 정도의 히어로가 된 마음으로, 진정한 암욜맨으로 살아가고 있다. (술은 아직도 많이 마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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