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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Oct 22. 2023

악당

 아버지에게 처음 바둑을 이겼던 건 아홉 살 때다. 나는 여섯 살에 바둑을 시작했다. ADHD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산만하기 짝이 없던 나를, 단 10분이라도 얌전히 앉혀두고 싶다는 엄마의 욕망이 나를 바둑의 길로 이끌었다. 나는 학원에서 유일한 미취학 아동이었다. 원장님은 내 나이가 너무 어려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엄마의 간곡한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둑은 됐고 알까기나 좀 시키다 집에 보내려고 했단다. 그런데 웬걸. 내가 바둑을 좀 뒀다. 학원에서는 아이들의 명찰을 만들어 1급부터 18급까지 해당하는 급수표에 이름을 붙여줬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나는 그 표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있었다. 스카이캐슬로 치면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랐달까. 훗.     


 내가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서자 엄마보다 아버지가 크게 기뻐했다. 세리가 하버드에 붙었을 때 세리 아빠만큼이나 기뻐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나와 바둑을 함께 둘 수 있다는 사실을 무척 즐거워했다. 주말 낮에 우리가 바둑을 두고 있으면 엄마가 늘 과일을 깎아줬는데 너무 이기고 싶은 나머지 과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승부가 끝나면 엄마가 쪼르르 달려와 누가 이겼는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어봤는데, 결과는 늘 아버지의 승리였다. 엄마는 애한테 한 번을 안 져주냐면서 아버지를 타박했다. 나는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아버지의 취미생활을 원망했던 건 좀 더 크고 나서다.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마음을 지니며 유년 시절을 보낸 듯하다. 아버지는 하나에 빠지면 뭐든 적당히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당시 아버지의 취미는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는 일이었는데 늘 그게 갈등의 시작이었다. 바둑을 한번 시작하면 요지부동. 중간에 끊고 나오지를 못했다. 저녁 식사를 다 차려놓아도 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번 판만 끝나고 나갈게.” 그 이번 판이 짧을 때는 십분 길 때는 한 시간이 될 때도 있었다. 짜게 식어버린 국그릇. 그럴 때마다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아빠 보고 식사하러 나오시라고 해.” 아버지를 식탁 앞으로 끌고 나오는 일은 어린 나의 몫이었다. 똑같이 한 공간에 있는데 엄마는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왜 나를 통해 말을 전달하는 걸까. 그때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나는 아버지를 제시간에 식탁 앞으로 끌고 오는데 늘 실패했다. 아무리 부탁을 해도 바둑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주말 저녁 식사가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6시부터 저녁을 먹는다면 3시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암흑세계의 어린 왕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깟 바둑이 뭐라고 집안 분위기를 개박살 내놓는 걸까. 아버지는 그렇게 냉랭해진 집안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무뚝뚝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답답한 사람. 말주변과 유머 감각이 없는 노잼 인간의 현신. 엄마를 외롭게 만드는 사람.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다. 그는 악당이었다.

     

 유년 시절 악당으로 생각했던 아버지와는 참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아버지와만 어색한 게 아니라 아버지 쪽 친척들과도 모두 어색하다. 반면 엄마 쪽 친척들과는 정말 친하게 지낸다. 대학 때 같이 살던 A군과 서로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런 현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A군 역시도 엄마 쪽 친척들과 훨씬 친하다고 했다. A군의 다른 친구도 그렇다고 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고작 3개의 표본을 가지고 우리는 그 현상을 밤새 분석했다. 그리고는 엄마의 마음이 편해야 자식의 마음도 편해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엄마가 친정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니까 우리도 엄마 쪽 친척들과 교류할 때 더 편한 마음이 된다는 논리다. 기적의 사회학자가 따로 없었다. 우리는 그런 실없는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A군은 실없는 대화에 그치지 않고 기어이 사회학을 이중전공하기로 결심한다.

      

 나는 녀석이 건네는 실없는 농담을 사랑했다. A군은 시답잖은 농담을 이용해 냉랭해진 분위기도 일순간에 부드럽게 만들곤 했다. 나는 무뚝뚝하면서도 속이 깊은 사람 따위는 딱 질색이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갈등이 생겼을 때 비겁하게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으로 숨어버리면, 그들의 세계에 선뜻 들어갔던 사람은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란 것을 그들은 몰랐다. 혹여나 알았다고 하더라도 속으로만 알았다. ‘그래도 걔가 속은 참 깊은데.......’라는 말에서 그래도 앞에 생략된 내용들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모든 내용들을 그래도로 대신하는 거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잘못 빠지면 평생을 외로움 속에서 헤엄치게 되어있다. 마리아나 해구에 확 빠뜨려 버리고 싶은, 야속한 사람들 같으니.     


 야속한 아버지. 

 그와 닮지 않겠다는 의지는 직업 선택을 할 때도 영향을 미쳤다. 엄마는 나도 아버지처럼 공무원이 되었으면 했다. 나는 공무원만큼은 되기 싫다고 선포했다. 당신과 닮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는 그런 식으로 전달했다. 속 깊은 아버지는 나의 그런 선포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뒤늦게 엄마한테 전해 들었는데 아버지는 그때 꽤나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본인이 뭔가 잘못 살아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식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부모가 된 기분은 어떨까. 적어도 나는 그 마음을 숨길 수 있었을 텐데. 꼭 그렇게 아버지에게 알려줘야만 직성이 풀렸을까. 나는 가끔 소름 끼칠 정도로 잔인할 때가 있다.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참 애를 많이 썼는데. 담배도 태우지 않고. 공무원을 하지도 않고. 하나의 취미에 깊이 빠져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아비무쌍이란 무협지를 읽다가 아버지가 생각났다. 나는 왜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그러자 바둑 다음으로 아버지가 어떤 취미에 빠졌는지가 생각났다. 만화책은 바둑 다음으로 아버지가 정한 취미였다. 아버지는 한동안 주말이면 만화방으로 출퇴근을 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무협지를 쌓아두고 읽곤 했다. 나는 아버지를 찾으러 담배 연기가 자욱한 동네 만화방을 전전하곤 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아버지와 닮은 점이 참 많다. 아버지는 물리학과를 나왔는데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공대생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바둑같이 두뇌를 쓰는 게임도 참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런 것들은 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버지에게 거리를 두고 잔인하게 굴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부재중 전화에 콜백을 하지 않던 순간이나. 단호하게 공무원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던 순간. 등등등. 그러다 보면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다. 누가 진짜 악당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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