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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Oct 29. 2023

자강두천

 내 나이는 서른세 살이다. 삼땡 되시겠다. 엄마는 요새 클롭감독의 게겐프레싱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거센 결혼압박을 시전하고 있다. 처음엔 은은하던 압박이 나이가 들면서 눈에 띄게 거세졌다. 압박이 강해질수록 함께 늘어나는 건 유려한 탈압박 스킬이다. 오늘은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하나.


 엄마는 스물여덟에 나를 낳았다. 그리고 33년째 나를 키우고 있다. 몇 살까지 키우려고 하실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몸은 대충 다 큰 것 같은데 정신이 좀 아쉽다. 어쨌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거센 결혼 압박을 요리조리 회피하고 있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는 나를 무려 33년 동안이나 봐왔다. 엄마 인생의 절반이 넘는 기간이다. 그 기간 동안 나를 사랑하셨을 거라고 믿는다. 엄마니까. 그런데 33년이란 기간을 똑같은 크기로 사랑했을 리는 없다. 분명히 많이 사랑했던 시기가 있고 상대적으로 덜 사랑했던 시기가 있을 것이고 심지어 미웠던 시기도 있을 터다. 그래서 물어보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언제 제일 예뻤어?”

 “.......”


 결혼이야기로 불이 붙은 전화기의 열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이 정도면 소방관의 아들 자격이 있다. 생각보다 꽤 오래 대답이 없기에 엄마가 전화를 끊은 줄로만 알았다. 다행히 아니었다. 왜 이딴 걸 묻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에야, 한번 생각해 보겠다는 엄마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머님. 당신 육아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나요?’ 

 이 대목에서 엄마가 ‘난...... 지금입니다’라고 대답해주기만 한다면, KBS 주말드라마 느낌의 휴먼가족극을 연출할 수 있을 터다. 애석하게도 우리 엄마는 슬램덩크의 강백호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이게 생각보다 꽤 재밌다.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내추럴 본 불효자이지만 그나마 가장 효자인 시기를 꼽아보라면, 그건 대학 합격증을 엄마에게 안겨준 열아홉 살의 겨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중학교 때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말을 제일 잘 들었던 것 같았다고.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아버지는 또 다르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때를 꼽았다. 이유는? 그때가 밖에서 제일 많이 뛰어놀았는데 그게 보기가 좋았단다.


 그런 이유는 너무 단순하지 않냐. 좀 더 구체적인 에피소드나 사건은 없는가. 나는 성의 있는 대답을 원한다. 자꾸 성가시게 굴자 귀찮았는지 곧 역공이 들어왔다.


 “그럼 네 녀석은 33년 동안 엄마가 언제 가장 좋았냐?”

 역시 한여사는 날카롭다. 이런 식으로 받아칠 줄은 몰랐기에 당황했다. 퍼뜩 떠오르는 순간이 없어서 조금 미안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마 엄마 젖을 먹던 5개월 때 즈음이 아니었을까. 전화를 끊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도 대답은 내놓고 끊어야 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이 수년간의 취업준비로 면접상황의 돌발질문엔 내공이 쌓일 대로 쌓였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지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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