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호지방이 Nov 12. 2023

챌린지

 요즘 애들 도전정신이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스모크 챌린지부터 슬릭백 챌린지까지. 뭔 놈의 챌린지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동시대에 이렇게나 다양한 도전들이 성행하고 있는데 난 방구석에 누워나 있으니 진짜 노인이 된 기분이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챌린지란 것을 많이 한다는데, 주위에 챌린지 영상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이 단 하나도 없는 걸 보면 내가 아자씨가 맞긴 맞나 보다. 아니면 다들 하고 있는데 내가 인스타랑 틱톡을 안 해서 모르는 건가. 방금 내 친구 A군이 슬릭백 챌린지를 하는 상상을 잠깐 해봤는데 얼굴이 화끈해졌다. 삶이란 게 챌린지 그 자체인데 무슨 도전을 또 하리.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렇기에 도전엔 감동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라떼는 아빠의 도전이라는 게 있었다 ㅎ

     

 일 외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내가 울면서 하는 챌린지가 있다면 바로 25만 원 챌린지다. 매주 일요일 자정까지 한 편 이상의 글을 토해놓지 않는다면 다섯 장의 신사임당이 허공에 사라진다. 결혼식을 두 번이나 다녀오고도 치킨 한 마리 조질 수 있는 돈이다. 올해는 이사를 한 데다가 요상하게 결혼식이 많아 벌금을 내면 곤란하다.

      

 일요일 런닝맨이 끝날 시간 즈음 되면 신사임당에게 회초리를 맞는 율곡이이의 심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오늘은 전소민이 마지막 녹화를 한 날이다. 이별은 늘 슬프다. 익숙한 출연자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니 서운했다. 내가 런닝맨 제작진도 아닌데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미친. 진짜 아저씨가 맞다. 예능 보면서 눈물을 짜다니. 런닝맨과 아저씨를 소재로 이번 주를 때워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한다.      


 일주일에 글 한 편? 젊은이들 표현대로 쌉가능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에 아버지. 절친한 친구 A군. 갑상선암. 회사 동기와 선배들. 삼촌. 그마저도 모자라 이별한 연인까지. 탈탈 털어 글감의 소재로 팔아먹고 나서야 내가 잘못짚어도 한참 잘못짚었음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일상은 다이내믹하지 않고 내 삶이 별 게 없었다. 백수 때처럼 글쓰기 근육이 커져 있지도 않다. 일주일에 한 번 헬스장에 가는 뚱땡이가 된 기분이다. 오늘은 소재 고갈에 시달린 나머지 초, 중, 고 생기부를 떼본 것으로도 모자라 군대에서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들까지 정독했다. 그게 또 재미있어서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안 그래도 촉박한 마감 시간이 턱 끝까지 닥쳐와서야 망했음을 깨닫는다.     


 모임의 규정을 다시 한번 샅샅이 살펴본다. 샅샅이 살펴봐도 달라지는 건 없다. 안 쓰면 25만 원이다. 뭐라도 써야 한다. 사유 없이 뇌가 지껄이는 대로 쓰는 글. 랩으로 치면 프리스타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yo. 그러다 문득 탈퇴 규정이 눈에 쏙 박힌다. 글 열 번을 채워야 탈퇴가 가능하다. 탈퇴를 마음대로 못하는 집단이라니 이거 순 조직폭력배 아닌가. 내가 이 사실을 알고 모임에 가입했던가? 그렇다. 알고 가입했다. 과거의 나는 왜 그랬을까.      


 오늘은 딱 스무 번째 글을 업로드하는 날이다. 그렇다. 10주에 한 번 찾아오는 탈퇴의 날이다. 지금 결심하지 않으면 앞으로 10주간 더 고통받게 될 터다. 10주면 2024년 1월 14일까지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첫 문단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번엔 꼭 안녕을 고해야지 굳게 다짐했었건만. 마지막 문단을 쓰는 지금은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다음 주면 분명히 이 순간을 땅을 치고 후회할 테지. 그래도 마지막 문단을 쓰는 이 순간의 즐거움을 당분간 더 이어가고만 싶다. 일단 딱... 딱 10주만. 


 스모크 챌린지나 슬릭백 챌린지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정도 챌린지는 이 아자씨도 할 수 있다.


(*끝)

작가의 이전글 모아모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