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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Dec 03. 2023

난장이

백설공주를 사랑한 일곱 번째 난장이, COOL

https://www.youtube.com/watch?v=GH50o4qNcFM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노래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오글뽀짝한(?) 감성들이 있다. 이런 오글뽀짝한 감성에는 나레이션이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한다. 그 시대에는 이런 나레이션 하나에도 한껏 공을 들였던 것 같다. GOD 거짓말 속 ‘싫어 싫어’가 전지현 배우 목소리일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닌가. 아무튼 코끝이 시린 겨울이 되니 괜스레 나레이션 있는 노래가 땡겼다. 이래서 어른들이 콘서트 7080을 보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정말 오랜만에 쿨의 노래를 들었다. 여름 하면 쿨, 쿨 하면 여름이던 때가 있었는데. 하지만 이 노래만큼은 대표적인 쿨의 겨울 노래로 꼽고 싶다. <백설공주를 사랑했던 일곱 번째 난장이>란 노래다. 뮤직비디오도 겨울배경이다. 초반부 나레이션이 지금 들으면 어찌나 오그라드는지 얼굴이 다 화끈하다. 하지만 낭만이 있다.     


 어떨 때 보면 동화가 더 잔인하다. 어려서는 몰랐는데 커서 다시 살펴보면 그렇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라니. 난쟁이 개개인을 ‘일곱 난쟁이’로 묶어버리면 난쟁이 하나하나가 가졌던 생각들과 감정들은 설 곳이 없어진다.      


 백설공주를 남몰래 짝사랑했던 ‘일곱 번째 난쟁이’의 시각에서 가사는 흘러간다. 낭만과 오글의 줄타기를 아슬아슬하게 가져가는 설정이다. 2000년대 초답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감성이다. 그 시절에는 공주님과 왕자님의 입장이 아니라, 난쟁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봐주는 낭만과 따뜻함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이 낭만의 시대다. 한국영화도 이 시절에 나온 <8월의 크리스마스>, <후아유> 등을 좋아한다. 아무튼.      


 백설공주를 남몰래 사랑했던 일곱 번째 난쟁이로 다시 돌아가본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속으로 이별을 고해야 했던 그 마음이 어떠했을꼬. 왕자와 함께 떠나는 공주를 보며 가슴은 얼마나 또 미어졌을꼬. 독사과를 먹고 잠에 빠진 공주의 곁을 지켰던 건 왕자가 아니라 난쟁이였을 텐데 말이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겨울 감성에 취해 노래를 듣다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왜 작사가는 노래 제목을 백설공주를 사랑한 일곱 번째 난쟁이가 아니라 백설공주를 사랑한 일곱 번째 ‘난장이’로 지었을까? 단순한 맞춤법 실수일까? 그렇지 않다고 상상해 본다. 난장이. 나는 내 멋대로 작사가가 되어 의미를 붙여본다. 이 단어만큼 짝사랑하는 사람의 심리를 시적으로 잘 압축한 단어가 또 있을까.     


 짝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스스로 한없이 작아지게 되지 않던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히 소심해지기는 또 얼마나 소심해지는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 안 그래도 될 일에 스스로 상처받고, 가슴 한구석을 깎아내린다. 안 그래도 되는데 바보같이 스스로 작아진다. 그래서 노래 속 난장이도 말하지 않는가.      


"우습던 날 바라보며 웃던 그대는 내 맘을 다 알지 못했죠 – 단 하루라도 그대 슬퍼할까 봐 나 감추며 광대가 됐던 날"     


 하지만 짝사랑이란 또 무엇인가. 힘든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지는 못하더라도 주변을 계속 맴도는 일이다. 그래서 짝사랑을 지속해 나가는 건 감정의 장인(匠人)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장장이처럼 계속 스스로의 마음을 달궜다가 두드렸다가 식혔다가 마음을 제련하는 기술자 그 잡채. 뭐 그런 거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를 한없이 깎아 작아지는 사람. 그래서 백설공주를 사랑했던 일곱 번째 난쟁이는 난장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노랫말 속의 백설공주는 동화보다 더 잔인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왕자와 함께 떠나버렸던 동화 속 백설공주가 차라리 낫다.      


"그대여 제발 나를 보며 슬퍼 말아요. 늘 바보같이 웃음뿐인 그 모습처럼 한 번 더 내게 바보가 돼 줘요. 키 작은 내 사랑이여 안녕."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난장이와 공주의 사랑이 이뤄질 수야 없을 터다. 하지만 위 가삿말을 보면 백설공주는 난장이 마음을 알고 있었나 보다. 떠나는 것도 잔인한데 자신을 향한 마음을 꽁꽁 숨겨 달라는 당부까지 하다니. 그리고는 키 큰 왕자님과 떠나 버리는 결말까지. 너무한 거 아닌가? 키 작은 난장이에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는 너무나 열받는 결말이다. 낭만의 시대인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는 엄중한 사실을 오늘도 새삼 깨닫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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