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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Dec 10. 2023

성사천과 성북천

  A군은 나의 길치력에 넌덜머리를 내곤 했다. 맨날 가는 단골집인데도 이상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는 나를 보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 집 근처잖아. 맨날 가는 식당인데 왜 또 그리로 가는 거야.”     

 

 그러면 민망해진 나는 허허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길은 하나다. 어차피 다 이어지게 되어있어.”     

 

 A군과의 일화가 생각난 이유는 이사한 동네의 산책로를 발견하고 나서다. 성사천. 하천을 끼고 산책로가 쭉 이어진 모양새가 반갑다. 서울에는 이런 산책로가 많지만 이사한 동네에도 비슷한 곳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해봤는데 괜히 반가웠다. 돈 없던 대학 시절에는 성북천을 끼고 여기저기 참 많이 걸어 다녔는데. 그 길과 똑 닮아있었다,


 성북천은 인생 암흑기였던 22살 겨울에 자주 찾았던 곳이다. 지금도 억만장자는 아니지만 그땐 정말 가난했다. 돈도 없고. 집에서는 천하의 한심한 놈 취급을 받았으며. 제일 친한 친구 놈인 A군과는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내던. 그런 시기. 왜 말을 안 하고 지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때 A군이 사귀던 여자친구와 내가 사귀던 여자친구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베프답게 사랑 vs 우정에서 둘 다 사랑을 택하는 찰떡 호흡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다섯 평 짜리 방 하나에 같이 구겨 살면서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지내는 웃픈 사태에 이르렀다. 문제는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가 경제 공동체였다는 점이다. 동아리 활동과 학업과 연애를 병행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A군과 나는 돈과의 싸움에서 지쳐가고 있었다. 


 택배 상하차 알바가 끝나고 버스를 타려는데 교통카드가 찍히지 않았다. 아- 교통카드에 잔액이 없구나. 애석하지만 통장의 잔고도 없는 걸. 그래서 학교 쪽으로 무조건 걷다 보니 성북천이 나왔다.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전화 한 통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군대도 안 가고 서울에서 뻐기고 있느냐’는 질책성 전화였다. 역시나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말은 참으로 길다. 우리 엄마는 필리버스터의 연사로 나서도 충분히 제 몫을 해내실 게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너스레로 넘기기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나는 멍하니 수화기 너머의 음성을 듣고 있다가 전화를 그만 끊어버렸다. 그렇게 성북천을 따라 걸어오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다. 어머. 나 미쳤나 봐. 이왕 미쳐버린 김에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내던 A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니가 진짜 개새끼’라고 성질을 내면서 울어 버리니까 녀석이 퍽이나 당황했다. 미친놈인 줄 알았을 게다. 미친놈이 맞았다.


 그래서 나는 성북천 그 길, 그해 겨울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해 겨울은 우정도, 사랑도, 일도, 부모자식 관계도, 그 무엇도.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수 있다는 무서운 현실이 나를 스쳐갔던 시기였다. 지금이야 술자리 안주거리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요즘도 종종 강가를 산책한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나, 그냥 이유 없이 짜증 날 때, 안 좋은 마음이 들 때,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 그곳에 가면 2012년의 겨울 생각이 난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참 행복한 거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든다. 꼰대들이 옛날이야기를 자꾸 들먹이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일들을 최대한 아름답게 기억하려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좋았던 기억들은 추억으로, 힘들었던 기억들은 경험으로 남기는 거다. 그해 겨울의 일은 좋았던 기억도 많았지만 힘들었던 기억이 워낙 강렬해 추억과 경험의 중간 즈음에 애매하게 남아있다.


 얼마 전 하나의 경험을 더 쌓고야 말았다. 또 편성에서 미끄러졌다. 결과를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웠다. 깨어 있을 때면 물밀듯이 허무함이 몰려와 일부러 계속 잠을 잤다. 잠이 오지 않으면 집 근처에 있는 성사천으로 향했다. 예전에 살던 방향으로 쭉 걷다 보면 성북천이 나올까. 이 길과 그 길이 이어져 있는 걸까. 아무렴 상관없었다. 무작정 강가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왠지, 그 길을 계속 걷다 보면 스물두 살의 나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길은 어차피 하나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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