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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Jul 09. 2023

숙취 지옥

 나에게 지옥을 설계할 권한이 주어진다고 상상해 본다. 영화 <신과 함께>의 8번째 지옥을 뇌내망상으로 만들어보자. 우식대왕의 8번째 지옥은 숙취 지옥으로 하겠다. 전생에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을 평생 숙취 속에 살아가게 하는 거다.


 헤어진 연인에게 술 먹고 ‘뭐 해...?’라고 카톡을 보낸 자. 숙취지옥. 땅땅땅. 음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부하직원들에게 회식을 강요하는 대머리 부장. 당신도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놓고 술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인간들. 역시 숙취지옥. 땅땅땅. 웬걸, 생각보다 꽤 많잖아?      


 숙취에 시달리는 것 정도로 무슨 지옥이라 할 수 있겠냐고? 그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숙취 한 번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정 없는 인간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당신 역시 숙취 지옥에 보내주겠다. 땅땅땅.


 땅땅땅.

 망치로 누군가가 내 머리통을 내려치는 듯한 기분. 아- 결국 달려버렸구나. 회의라도 있는 날이었으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상체를 일으켜보니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것처럼 세상이 울렁울렁하다. 머리는 아프고, 속은 메슥거리고. 이럴 때는 뒤통수를 침대에 붙이는 게 능사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이불속으로 몸을 던졌다. 에어컨은 당연히 풀가동이다. 보온을 눌러놓은 밥통 속의 찬밥처럼 몸을 웅크리며 숙취 지옥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아. 정말 너무 괴롭군. 별 게 지옥이 아니다.


 과음의 대가는 짜릿한 숙취와 찐한 현타다.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초주검의 상태. 알코올에 절인 오징어마냥 축 늘어져 하루를 날렸다. 절여진 게 어디 알코올뿐이겠나. 유튜브 쇼츠를 열고 인터넷 세상의 온갖 밈들에 절여지는 건 보너스다. 하나를 내리고 두 개를 내리고. 어떤 날은 몇 개를 내려야 이게 멈출까 세어 보다가 한 130개쯤에서 포기한 적도 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 나올지도 모른다. 유튜브 쇼츠는 어쩌면 현대판 시지프스의 돌 같은 게 아닐까. 도파민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신이 내리는 형벌 같은.

      

 어제는 도파민을 찾아 헤매던 내가 알코올의 유혹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조금만 자제했으면 오늘 덜 괴로웠을 텐데. 나는 이 단순한 섭리를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늘 거스르고야 만다. 어쩌겠나 신의 뜻을 거슬렀으면 벌을 받아야지.


 숙취 지옥에서 나는 오늘도 시지프스의 돌을 굴린다. 아니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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