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에게 미안한 일이 생기면 꼭 제풀에 화를 내는 불효자식이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울컥해서 화가 난다.
한창 촬영 중일 때 엄마가 춘천에서 상경한 적이 있다. 집에 못 내려간 지 7~8개월쯤 됐을 때다. 당시에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너무 많이 받으며 살던 때라 엄마를 만나면 눈물부터 좔좔 쏟아낼 것 같았다. 그래서 부러 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점심만 먹고 헤어져도 좋으니 굳이 시간 내 상경하겠다는 엄마까지 말릴 수는 없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잠깐 촬영장을 비웠을 뿐인데 마음이 영 무거워 눈앞에 있는 엄마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온갖 신경이 핸드폰으로 곤두서 있어 뭐가 울릴 때마다 움찔움찔했다. 태연한 척 굴려고 해도 뜻처럼 되지 않았다. 그 초조함이 눈에 선히 보였으리라. 밥을 먹은 엄마가 이제 가보겠다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차 한잔이라도 마시자고 할 법한데. 나는 엄마를 빨리 보내고 싶은 나머지 DMC역으로 향했다.
DMC역에서 춘천으로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DMC역 경의중앙선에서 탑승한 후 용산까지 간다. 용산에서 춘천까지 itx로 간다. 끝. 근데 DMC역 구조가 생각보다 좀 복잡하다. 특히 9번 출구로 들어가면, 공항철도 쪽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6호선과 경의중앙선 플랫폼이 조금 헷갈린다. 엄마에게 6호선 플랫폼과 경의중앙선 플랫폼의 차이를 설명해 준 뒤, 어떻게 가야 하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생각보다 조금 걸어야 돼.”
나의 길치 유전자는 필히 엄마로부터 온 것이 틀림없는 터라 맘이 쓰였다. 엄마가 헷갈리지 않으려나. 10분만 투자하면 엄마를 경의중앙선 앞 플랫폼 벤치에 앉혀놓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엄마보다는 촬영장이 더 신경 쓰였다. 그래서 맘에 없는 소리를 덧붙였다.
“데려다줄까?”
“됐어. 엄마가 애냐. 알아서 잘 가볼게.”
그날 엄마는 6호선 플랫폼 앞에서 오지 않는 용산행 열차를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춘천행 itx를 탔는지 확인 전화를 했는데, 아직도 itx를 타지 못했다고 하기에 이유를 추궁하니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자초지종을 늘어놨다. 내가 신경 쓰일까 봐 웃음도 좀 섞어서. 나는 6호선 플랫폼에 한 시간이나 멍하니 앉아있었을 엄마를 떠올렸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울컥하며 화부터 왈칵 났다.
“아니 왜 그래? 그럼 나한테 전화를 하면 되잖아! 아 진짜 뭐 하는데!!”
갑자기 화를 막 내니까 엄마가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당황하는 엄마를 두고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는 자책감에 잠겨 하루를 보냈다. 그날의 기억이다.
오늘도 엄마에게 화를 냈다.
8시 반 즈음 퇴근하고 돌아오니 엄마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번주는 주말 다 출근이라 시간을 함께 못 보낸다고. 설에 내려갈 테니 그때 보자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굳이 올라와서 자고 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때도. 오늘도.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늘 마음의 여유가 없다. 허리도 안 좋다면서 굳이 올라와서 밤늦게까지 청소를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또 화를 내버렸다.
“아니. 집 깨끗하구먼, 뭘 이 시간까지 청소를 해!”
“야 먼지 투성이다 좀 치우고 살아”
“엄마는 우리 집에 청소하러 와? 내가 한다고 했잖아!!”
그렇게 화를 또 내버렸다. 사춘기 청소년처럼 방문을 쾅 닫고 들어와서는 이런 글이나 쓰고 있다. 문밖에서는 엄마가 새로 시작한 드라마 세작을 보고 있다. 내가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는 늘 적성에도 맞지 않는 tvN드라마를 챙겨본다. 이 문을 열고 나가 드라마 보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어도 될 텐데. 스스로에게 낼 화를 오늘도 엄마에게 내버려서 그런가. 방문을 열 용기가 잘 나지 않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