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 리뷰
“사람 목숨 가지고 저울질 좀 하지 마십쇼.”
돈이 되지 않는 환자를 병원 밖으로 내쫓으려는 냉혈한 의사와 적자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정의감 만땅 의사의 대결은 떠올리기만 해도 진부하다. 지겹다는 건 그만큼 많이 반복됐다는 반증일 터이다. 망하려고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가 많이 제작되는 걸까. 악역이 뚜렷하지 않은 드라마는 실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드라마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어느 한쪽을 선으로 놓고 악을 무너뜨리는 구조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기획 중인 작품 때문에 최근 다시 보고 있는 <라이프>란 드라마가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프> 역시 ‘사람 목숨 가지고 저울질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악역이 뚜렷한 드라마든. 생각이 필요한 드라마든. 어떤 드라마가 우위에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방영 당시에 많이 응원해 줬던 기억이 있다.
경영상태가 엉망인 병원을 수술대 위에 올리려는 구승효(조승우) 사장과 수술대 위에 올라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응급의 예진우(이동욱) 선생의 대결이 흥미롭다. 댓글들을 뒤적거리다 보니 예전 팬들은 구승효와 예진우의 캐릭터에 이성문과와 감성이과라는 별칭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성문과 경영자와 감성이과 의사가 펼쳐나갈 대결이 기대된다.
구승효 사장은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가?”란 명제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슈는 주로 노동계에서 등장한다. 최저시급 인상이나 주 52시간 노동에 관한 논쟁이 그러했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일이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사용자의 관점에서 봤을때는 더더욱.
구승효가 물류 계열사의 사장 출신이라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강성노조로 유명한 화물노조를 단기간에 박살 내버린 전적이 있는 그가 상국대학교 병원의 새로운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구승효 사장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쁜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지지할 것인가?”
구승효 사장의 타깃은 적자 3 과인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다. 필수과라는 명분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돈만 들고 수익은 없는 골칫덩이다. 사장의 입장에선 적자 3 과를 운영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명분이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필수과를 날려버릴 수는 없다. 보건복지부 차관과 구승효 사장의 대화는 상국대학 병원을 수술대에 올리기 위한 그의 물밑작업을 잘 보여준다.
상국대학교 병원에서 적자 3 과를 도려내는 것.
적자 3 과를 지방의료원으로 파견해 버리면 돈 안 되는 과를 운영하느라 굳이 병원예산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보건복지부에서 인건비도 지원받을 수 있다.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명분도 훌륭하다.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라는 허울 좋은 수술복을 뒤집어 입고 나서야, 구승효 사장의 메스는 의사들을 향한다.
의사들은 일반 회사원과 다른가? 만약 다르다면 그 이유는 의사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방의료원으로의 파견을 거부하는 이유가 고작 고된 지방근무 때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국대학 병원의 의사들도 그렇다.
“사회적 지위를 떠나서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노라 선서하신 우리 의사 선생님들께서. 이제 우리 땅 소외된 곳을 몸소 가서 돕고 싶다, 해서 모인 것으로 난 알고 있는데요?”
위와 같은 구승효 사장의 비아냥은 의사들의 입장에서 참 아프다. 그들은 검진센터가 강남으로 옮겨갔을 때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구승효 사장의 본심이 적자 3 과를 퇴출하는 것임을 의사들은 아직 모른다. 사장의 나쁜 의도를 감싼 명분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장(우미화)이 실토한 대로 강원도에서 아이를 낳으면 중국에서보다 산모가 더 많이 죽는다. 서울 사람의 두 배가 넘는 엄마들이, 수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다. 의사들이 파견되면 산모들은 살 수 있다. 그들이 진정 스스로를 회사원과 다른 의사라고 생각한다면, 파견근무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사장의 말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상급병원은 공공재다. 흉부외과장(유재명)은 이 점을 지적한다. 응급, 소아, 산부 3과의 하루 내원 환자만 평균 500명이다. 한 달이면 만 오천 명의 사람들이 상국대학병원에서 병을 고치고 상처를 꿰맨다. 제아무리 서울에 종합병원이 많더라도 만 오천 명의 사람들을 마음대로 해체시키고 더 멀리 분산시킬 권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흉부외과장의 질문에 구승효 사장이 대답한다.
“보건복지부”
그렇다. 병원은 공공재다. 이 땅의 모든 국민들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공공재를 이 사회 곳곳에 어떻게 제공할지는 보건복지부가 정한다.
구승효 사장의 명분은 완벽하다. 설령 그 이면에 병원의 수익을 올리려는 나쁜 의도가 숨어있더라도, 그의 결정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승효 사장을 마냥 응원하기는 찝찝하다. 그의 본심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구승효 사장의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은 응급의학과 예진우 선생이다. 그의 활약으로 인해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라는 허울 좋은 수술복이 벗겨졌다. 적자 3과의 지방의료원 파견이 인도적 논리가 아닌 자본의 논리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의사들에게도 명분이 생긴다.
이제 구승효 사장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을 다시 떠올릴 때다.
“나쁜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지지할 것인가?”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누구의 편에 설지는 다음 회차를 보면서 생각해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