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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Jul 31. 2023

암욜맨Ⅱ

 고등학교 때의 인생 목표는 춘천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마음이 더 정확하겠다. 나는 분명 엄마를 사랑했지만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엄마의 시야 아래 있다는 사실은 죽기보다 싫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하면 어떤 친구인지 이름 석 자를 꼭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마의 사랑이 그때는 집착으로 느껴졌다. 그런 사랑의 방식이 나는 미웠다. 엄마가 싫어하는 친구를 만날 때면 엄마가 좋아할 법한 우등생 친구를 만난다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가 나와 친하다고 기억하는 친구들 중에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다. 그렇게 나는 수려한 거짓말쟁이가 되어 엄마에게 기억의 조각을 가짜로 심어 놓고는 했다.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도시의 흉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자식 뒷바라지에 관한 부모의 정열에는 사람의 예술적 충동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 같은 게 있다.” 

 엄마가 정말로 나를 자신의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엄마가 원하는 삶의 색깔을 내 삶의 껍데기에 기꺼이 칠해주고 싶었다. 희생으로 점철된 엄마의 삶을 보상받게 해주고 싶었다. 서울에 있는 명문 학교에 진학하는 것. 그 점에서는 엄마와 나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나의 방점은 명문 학교가 아니라 춘천에서 탈출하는 것에 찍혀있었다는 게 달랐을 뿐. 그렇게 엄마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놓고서는, 10년 서울살이의 결과가 고작 암욜맨이 되는 것이었을까.     


“이번 주에 춘천 내려갈게요. 같이 저녁 먹자”

“웬일이니, 요즘 바쁘다더니. 무슨 일 있니?”

“일은 무슨. 별 거 아니에요.”   

  

 이번에도 엄마에게 기억의 조각을 가짜로 심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암욜맨이 되는 건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평생 무덤까지 숨길 수만 있다면. 나는 어쩌면 숨기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30년 동안 소중하게 빚어온 도자기에 생채기를 낸 기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춘천이 이렇게 가까웠나 싶을 정도로 금방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소위 드라마에서 보는 따뜻한 집밥이 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밥을 먹는 도중에 이야기하면 혹시라도 엄마 아빠가 체할까 싶어서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탄수화물이 포도당이 될 때까지. 말을 삼켰다. 밥이 아니라 말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죽는 병은 아닌데.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 엄마가 느끼는 감도는 아예 다르겠지. 어떻게 이야기해야 분위기가 그나마 말랑말랑해질까. 이럴 때는 유머만한 게 없다. 회심의 드립을 날렸다.     


“엄마 글쎄 내가 갑상선암에 걸렸는데. 이게 별 게 아니래. 갑상선 암은 암도 아니라고 하더라. 별명이 효자암이래. 웃기지 효자암 깔깔깔”
 “.......”     


 글솜씨를 더 연마해서 거장이 되면, 당시 엄마의 표정을 묘사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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