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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Jul 23. 2023

암욜맨Ⅰ

    

#천벌

 2020년. 평화롭고 고요한 주말 오후. 하지만 전날 밤을 꼴딱 새웠기에 꽤나 예민한 오후.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하며 예고를 만들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와서 잠이 깼다. 모르는 번호였다.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씹을 수 없는 직업을 가진 터라 잔뜩 인상을 찌그러트렸다. 이 불편한 심기를 최대한 불친절한 태도로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전달하리라.


“ (어쩌고 저쩌고 무튼 생략) 아무튼 큰 병원에서 검사 꼭 받아보세요”

“.......!!”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의 전화였다. 대충 갑상선에 혹이 있다고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 고런 무서운 이야기를, 간호사 선생님은 사무적이고 건조한 태도로 쏟아냈다. 최대한 불친절하고자 했던 나의 말투는 순식간에 순한 양이 되어버렸다. 

    

“ㅠㅠㅠㅠㅠ선생님 많이 심각한 건가요?”

“아직은 모르니까 큰 병원 가보세요”

“.......”     


 이런 젠장. 앞으로 술 좀 줄이고 운동 열심히 해야지.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지만 예고를 시간 안에 만들지 못한다면 그땐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하루의 밤을 지새우고 며칠 후 병원을 쫄래쫄래 가보니 의사 선생님 왈.     


“암이네요.” 

“......?!?!?!!”

“갑상선암은 죽고 사는 병은 아니니 너무 걱정은 마세요” 

    

 대... 대박이네. 암에도 다 걸려보고. 그럼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수술 날짜부터 정해야 하나. 지금껏 내 삶의 난이도가 딱히 이지모드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갑자기 이렇게 예고도 없이 하드모드가 되어도 괜찮은 건가? 내 삶의 코딩을 짜놓은 자가 있다면 묻고 싶었다. 이게 맞냐? 


 한때는 너무 평탄하게만 흘러온 내 삶에 배부른 원망을 퍼부은 적도 있었다. 특히 취업준비를 할 때 그랬다. 자소서의 흰 바다 앞에 늘 무력했다. 배를 만들어 낼 삶의 재료가 늘 성에 차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삶에 우여곡절이 없을까. 내 삶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제도권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구나. 심지어 PD가 되기로 한 결심조차 제도권을 탈피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글을 쓰는, 연극을 올리는, 영화를 찍는 친구들을 보며, 그 무모함과 대책 없음을 겉으로는 걱정했지만 그렇다고 정작 내가 뭐가 되어있는 건 아니었다. 고작 제도권 내의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내가, 그 와중에 제도권에서 요구하는 미약한 창의력의 문턱마저도 넘지 못하는 내가, 짜증 났다. 이게 다 내 인생이 너무 평탄하게 흘러온 탓이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지긋지긋한 삶. 속된 말로 어디 아픈 적이라도 있었다면, 한심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래. 이렇게 내가 천벌을 받는구나.     


콕콕 콕콕 스파게티

 2010년. 대학 때는 네 평 남짓한 골방에서 A군과 둘이 살았다. 시답지 않은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보면 어느새 해가 뜨곤 했다. 그리곤 수업을 안 갔다. 역시 암에 걸린 건 하늘이 내린 천벌이었나. 어쨌거나 영양가 없는 잡담들 속에는, 놀랍게도 꽤 철학적인(?) 주제가 가끔 등장했다. 콕콕 콕콕 스파게티에 대해 나눴던 대화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 오늘 나를 무너뜨린 건 결국 콕콕 콕콕 스파게티였다 ”

“ ㅋㅋㅋㅋ 미친 새끼 ”     


 그날 A군을 무너뜨린 건 콕콕콕콕 스파게티였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도, 프랑스어에서 D+를 받은 것도 (아니 근데 이건 네 놈이 공부를 안 한 거잖아?), 동아리실에서 선배들한테 오지게 깨진 것도, 그 무엇도 아닌 콕콕콕콕 스파게티. 으레 사내놈들의 우정(?)은 그런 힘든 일이 있을 때 오히려 강하게 키워야 단단해진다는 개똥철학에 사로잡혀있던 시절이었다. 자연스레 인근에 거주하던 한심한 자취생들이 술집에 모여들었다. 노답 동기들 사이에서도 자랑스레 꼴찌를 찍은 녀석의 학점과 허망한 이별, 안 봐도 선한 선배들의 갈굼까지. 인생 망했다는 덕담을 곁들이며 풀코스로 깔깔깔 놀려주었다. 너무 강하게 키우나 싶어 슬쩍 눈치를 봤는데 부들부들거리면서도 간신히 참는 모양새가 더 웃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편의점. 콕콕콕콕 스파게티 한 그릇을 해치워야만 잠에 드는 썩은 루틴을 보유했던 녀석은, 늘 그렇듯 콕콕콕콕 스파게티를 찾아 헤맸다. 근데 웬걸. 늘 진열대의 한 구석을 차지하던 콕콕콕콕 스파게티가 없는 게 아닌가. 녀석은 씩씩대며 계산대로 향했다. 

 

“ 콕콕콕콕 스파게티 없나요? ”

“ 진열대에 없으면 없으세요~ ”

“ 왜요? ”

“...... 네? ”

“ 왜...... 왜 없냐고요. 왜.......”

“...... (개황당)”

“ (절규하며) 아니이이이. 왜요. 왜 콕콕콕콕 스파게티가 없냐고요”     


 나는 진짜 역대급으로 미친놈이었던 녀석을 억지로 집으로 끌고 돌아왔고, 간신히 진정한 놈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꽤 오래 나누었다. 자세한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감정의 빗장이 풀리는 순간에 대해 오래오래 얘기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사람이 무너질 때는, 거창한 일보단 사소한 일이 더 결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시답잖은 얘기. 사람은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사소한 것에서 허망하게 무너지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당연한 얘기. 마음의 빗장을 꾹 걸어 잠그고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하던 녀석을 무너지게 만든 건, 이별도 학점도 아니고, 선배들의 갈굼도 아닌 콕콕콕콕 스파게티. ㅋㅋㅋㅋ. 콕콕콕콕. ㅋㅋㅋㅋ.      


 콕콕콕콕.     

 암 선고를 받고 생수 한 병을 사러 들렀던 편의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콕콕콕콕 스파게티였다. 콕콕콕콕. 무언가 가슴을 콕콕콕콕 찌르는 이 기분. 나는 대학시절 동고동락했던 A군이 너무 보고 싶었다. 다행히 퉁명스러운 의사 선생님의 말마따나 갑상선암은 죽고 사는 문제의 병이 아니었고, 사실 꽤나 일반적인(?) 병이었다. 나는 이 희소식을 가장 먼저 A군에게 알렸다. 으레 사내놈들의 우정은 그런 힘든 일이 있을 때 오히려 강하게 키워야 단단해진다는 개똥철학은 애석하게도 아직 유효했다.


# SS501     

 결혼 준비를 위해 제주도에 내려가 있던 A군은, 내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서울로 올라왔다. 아니. 나 안 죽는다니까. 그럴 필요 없다니까 미친놈아. 수술받으면 괜찮대 미친놈아. 갑자기 왜 오고 지랄이야. 자고 가지 마 꺼져. 나 괜찮아.     


 오자마자 사태파악에 나선 A군은 내가 죽지 않을 거란 사실을 금방 알아채고 말았다. 그리고 갑상선암이란 병에 대해 대충 찾아보더니 벌러덩 드러누우며 말했다.  

 

“ 뭐야. 별 거 아니네? ”

“....... 별 게 아니진 않은 거 같은데 그래도? ”

“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 ”

“ ㅇㅇ 사실 생각보다 그렇긴 한 듯. 근데 좀 무섭긴 하다. ”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간다고 했던가. 함께 산책을 하며, 간단한 운동을 하며,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세우며, 훅훅 들어오는 녀석의 공격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작은 녀석의 눈이 더 가늘게 째지는 건, 나를 엿 먹이겠다는 신호다. 


“노래나 들을까? 암~욜맨. 암~욜맨 그대여. 따라닷닷 오늘도~”     


 한 때 라디오 PD를 지망했던 A군은 악마의 선곡 센스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나를 암욜맨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한 이 미친놈은 우리 집에 일주일 간 머물며 나를 놀려댔다. 그러다가 파혼당한다고 협박해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 역시 이게 목적이었구나. 젠장 멜로디는 또 더럽게 중독성이 있네. 결국 나는 수술대에 오르기 바로 직전까지, 마취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암욜맨을 흥얼거리다 깨어났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암~욜맨 암욜맨 그대여 따라닷닷 오늘도.      


 내가 무척이나 따르는 K선배는 이 일화를 듣고 한참을 웃더니 나에게 말했다.      


 “도대체 왜 절교를 안 해?ㅋㅋㅋㅋ”     


 맹세컨대 이 놈이 조금만 덜 웃겼어도 백 프로 절교했을 거다. 하지만 웃기면 봐준다는 불변의 진리에 이번에도 굴복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암욜맨이라는 별명이 퍽-마음에 들기도 했고. 음 뭐랄까 약간. 아이언맨 같달까. 굳이 비유하자면 현생에서는 일개 암환자에 불과했던 내가, 이세계에서는 B급 히어로로 승격된 기분......? 슬픈 기분이 웃픈 기분으로 중화된 느낌이랄까? 하지만 내가 암욜맨이 됐다는 웃픈 사실을 암욜맨 파더와 마더에게 어떻게 알릴 것인가 하는 엄청난 숙제가 내게는 남아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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