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관점으로 보는 여성서사
영화와 책은 대중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즐기는 문화생활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나 작품의 중심은 남성에게로 치우쳐있다. 여성은 사랑받거나, 예쁘거나, 어머니거나, 섹시해야만 작품에 등장할 수 있다. 주체적인 존재가 아닌 남성과의 관계 속의 존재다. 우리는 작품에 등장할 수 있는 어떤 요건도 충족시킬 마음이 없고,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렇다고 남성에 억지로 감정이입해 몰입하기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성서사는 많은 여성들의 보편적 문화생활을 위해 절실하다. 더 많은 여성서사를 함께 즐기고, 여성 창작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 코너를 마련했다. 언제나 중심에서 한 발 밀려난 여성에게 포커스 맞춘다. 현실에서든, 작품에서든 우리는 언제나 여성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movie
미스 슬로운
2017.03 개봉
존 매든 감독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영화의 주인공인 슬로운은 잘나가는 로비스트다.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는 무조건 승리하고,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가 가는 길에는 냉정한 분석과 철저한 준비, 갖은 영리한 방법들이 뒤따른다. 잠도 자지 않고, 모르는 것이 없고, 막히거나 머뭇대는 일도 없다. “한 번이라도 정상이었던 적은 있었어?”라는 질문을 받고, “얼음이 사람으로 변해서 슬로운이 됐다는 거?”와 같은 소문이 돈다. 따라서 그를 조금만 지켜보면 누구나 그러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할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각자 노력의 이유를 추측한다. 돈 때문에, 지는 게 싫어서, 명예를 쟁취하기 위해 등. 하지만 신념을 지키는 것은 개인이 큰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무엇보다 큰 동기가 된다. 결과로 인해 얻는 가치가 소모적이거나 일시적이지 않고 순수한 마음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내가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이뤄야만 한다. 따라서 세상에 남겨진 진귀한 일들과, 여전히 누군가 만들어내고 있는 빛나는 발전은 ‘신념’으로 인한 것들이라 느껴진다.
또한, 그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은 남성의 고유물처럼 판단되어 왔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인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여성은 드물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성의 의견을 따르거나 남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신념적’이라 보이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여성에게도 항상 존재해왔다. 여성이 가부장제와 코르셋을 벗어던지려 노력하는 데에는 그러한 맥락이 포함되어 있다. 나의 진심이 아닌 남의 시선을 위해 해왔던 것이라 깨달은 순간, 그것들은 인생에서 가치를 잃었다. 누구나 인생을 진심으로 열심히 살아보려 할 때 온 마음과 열정을 다해서 행동한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너무 거세다.’ ‘왜 그렇게까지 달려드냐?’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이유와 동기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겠지만, 그래도 결국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마치 슬로운처럼.
평범한 ‘여성’
영화는 어떠한 한 사건을 다루기보다, 슬로운이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슬로운이 어떤 인물인지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여러 가지 요소가 등장한다. 하지만 화장과 옷차림, 그리고 포드의 존재는 그를 나타내는 요소로 사용하기에 부적절하다. 슬로운은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다 바친 사람처럼 보인다. 치밀하고 치열하며 무엇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인물에게 딱 붙는 치마와 불편한 하이힐은 성공을 거두기 위해 구성된 삶의 요소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인물의 자유로움을 방해한다. 심지어 화장을 포함해 모든 꾸밈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그는 일할 시간을 내기 위해 잠이 오지 않는 약을 먹는다. 약까지 먹어가며 아끼고 아낀 시간을 잠에 쓰기는 아깝지만, 화장에는 기꺼이 쓴다는 것은 누가 봐도 비논리적인 구석이 있다.
포드의 존재는 그보다 조금 더 의문스럽다. 이렇다 할 명분 없이 영화에 덜컥 등장해버린 그는 고객의 돈을 받고 원하는 것을 해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미 몇 차례 슬로운과의 만남이 이뤄진 상태에서 공청회에 불려오고, 슬로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며 그를 돕는다. 사실 슬로운의 죄가 국회의원의 일정에 관여한 것이라는 점에서 포드는 갑자기 툭 튀어나와 도움을 주고 사라졌으므로 포드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포드와의 만남에서 슬로운의 “내가 포기한 삶을 체험하기 위해서” 포드를 만나는 것이라는 대사를 통해, 슬로운도 알고 보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포드가 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포드가 슬로운을 돕는 장면은 사실 포드의 의리를 보여줄 뿐 슬로운에게 의미 있는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포드에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그에 반해 제인과 에스미의 존재는 슬로운을 나타내는 데 있어 적절하다. 영웅의 곁에는 언제나 그를 돕는 조력자가 있는 법이다. 슬로운은 그가 다닌 두 개의 회사에서 모두 능력이 좋은 여성 팀원과 합을 맞춰 일을 풀어나간다. 제인은 슬로운이 회사를 옮길 때 따라가지 않아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사실은 슬로운의 정보원으로서 역할 한다. 총기 규제 반대쪽의 회사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불법적인 만남을 포착해 승리를 이끄는 데 크게 일조할 수 있었다. 에스미는 공개 토론회, TV 쇼에 앞장서 총기 옹호 측을 대변하는 논리적인 주장을 해냈다. 이들의 케미는 색다르다. 일을 잘하는 사람 곁에 승리가 뒤따르는 것은 현실적이지만, 그러한 ‘여성’ 인물은 드물었던 탓이다. 현실에는 더 많은 제인과 에스미가 있다. 현실을 넘어 영화에서도 많은 여성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념 있는 로비스트
총기 규제를 옹호하는 로비 회사인 피터슨 와이트의 슈미트 대표가 “신념 있는 로비스트는 자신의 승리를 믿는다.”라고 말한 슬로운에게, 자신이 본 슬로운에 대해 써서 건넨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신념 있는 로비스트는 자신의 승리만 믿지 않는다.’ 자신의 회사로 와서 같이 총기 규제를 위한 로비 활동을 하자고 제안한 후였다. 슬로운은 그 쪽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그날 밤, 자신이 현재 다니는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로비 회사인) 콜 크래비츠를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다. 그와 동시에 승리전략을 짠다. 그는 본인이 실수가 가능한 인간인 걸 알기 때문에, 그러니까 본인의 승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승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큰 피해를 감수하는 대신 가장 ‘완벽한’ 승리를 얻는 방법을 선택했다.
슬로운이 그 누구보다 신념 있는 로비스트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결정에 있어 고민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건 그 결정이 여러 가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벽 2시에 라면을 끓여 먹는다면 정말 행복하겠지만, 다음날 속 탈이 날 수 있다. 이렇게 행복과 건강 등 2가지 이상의 가치가 충돌할 때 우리는 더 나은 가치를 선택하고 덜 나은 가치를 포기하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나 내 행동에 있어 명확한 한 가지 가치만을 선택한다면 결정에 지장이 없다. 내가 행복만을 신경 쓰기로 선택했다면 건강에 대한 염려는 라면을 끓이는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슬로운은 자신이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가치를 총기 규제에 대한 자신의 신념으로 선택했고, 그에 따라 많은 것을 잃었지만 신념만은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신념에 대한 믿음이 거세지면 맹목적으로 바뀔 수 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청문회 발언 장면, 그의 머뭇거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완벽한 승리를 위해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이들의 불법적인 만남이 담긴 영상을 한 링크에 올려두었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 링크 주소까지 외워왔으며, 사실 그것만을 위해 청문회에 나올 구실을 만들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잠시간의 침묵으로 인해 영상 링크 주소를 밝힐 수 있는 마지막 발언 기회를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왜 그는 잠시간 멈춰있었을까? 그의 머뭇거림은 공교롭게도 자신의 잘못으로 일상을 잃은 동료, 에스미를 본 이후였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신념인 총기 규제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잠을 포기하고, 동료를 잃었고, 청문회를 열 구실을 만들기 위해 범법행위도 기꺼이 해냈다. 하지만 그게 전부 순수한 ‘신념’ 때문이었을까? 에스미를 잃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렇게 믿었을지 모른다. 에스미가 자신의 집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 슬로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을 때 그때 선을 넘은 거예요. 똑똑하니까 그 정도는 알잖아요.” 알았을까? 그는 알지 못해 절망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에스미를 본 이후 잠시간의 침묵은 여태까지 신념에 의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던 자신의 성공을 향한 동기가 승부욕이나 욕심까지 포함하고 있었음을, 그래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해쳐야 했음을, 깨닫고 인정하고 뉘우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대사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성공을 향한 열망이 불건전한 마음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시인한다. 자신은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었고, 승리를 어느 때보다 열망했다고, 집착에 사로잡혀 선을 넘고 가까운 사람들을 배신하는 실수도 저질렀다고 말한다. 자신이 윤리적인 기분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한다. 곧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나는 이때의 그가 그 어느 때보다 ‘신념’적으로 보였다.
‘죄’와 ‘인정’
그렇게 앵글은 옮겨간다. 슬로운이 말하는 장면에서 화면은 돌연 로널드 마이클 스펄링 의원에게로 줌인[1] 한다. "자기 자리만 보전하면 나라도 팔아먹을 자들”, “자신의 정치적 이득” 과 같은 대사를 하는 와중이었다. 그 순간, 대사의 대상이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의원과 동일시되며, 비윤리와 비도덕을 물어야 할 대상 또한 옮겨간다. 이미 뉘우친 슬로운에게서 이제 뉘우쳐야 할 의원에게로. 옮겨졌을까, 혹은 동일시되었을까.
슬로운이 말한 링크 주소를 따라 들어가 다운받은 파일에서는 콜 크래비츠의 대표와 로널드 마이클 스펄링 의원이 한 대화가 나온다. 음악이 고조되며 소란이 된 청문회 현장에 대화만은 선명하다. “자넬 진멸시킬 때까지 멈추지 않을걸. ‘진멸’이란 단어의 어원을 아나?” “끝까지 없애버린단 뜻이지.” 자신의 승리를 위해 가까운 사람을 배신한 슬로운과, 자신의 직위를 지키기 위해 신념을 버리고 청문회를 연 로널드 마이클 스펄링 의원 중 없어질 사람은 누구인가. 그다음 앵글은 로돌포 슈미트가 슬로운에게, 슬로운이 자신의 동료인 제인에게, 제인이 그의 상사에게 건넨 쪽지의 클로즈업 숏이다. ‘신념 있는 로비스트는 자신의 승리만 믿지 않는다.’ 자신의 승리를 믿지 않은 사람은 승리했고, 자신의 승리만 믿는 사람은 패배했다. 가능성과 실수와 잘못을 깨닫고 인정할 수 있는 자는 살아남고, 뉘우치지 못한 사람은 진멸했다. 그리하여 죄는 완전히 대상을 옮겼다.
초토화가 된 청문회 현장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슬로운과 에스미가 서로를 바라보는 각각의 싱글숏[2]이다. 이때, 사각 앵글[3]이 등장한다. 에스미를 바라보는 슬로운을 찍는 카메라는 흔들리고, 그로 인해 에스미를 향한 슬로운의 감정도 큰 진폭을 겪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태까지 영화는 감독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이렇다 할 앵글을 사용하지 않고, 슬로운의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만 클로즈업을 이따금 사용했다. 사각 앵글의 사용은 슬로운의 감정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요동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를 통해 다시 한번 슬로운의 뉘우침과 사과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스미를 향한 미안함이 그저 꾸며진 것이었다면 슬로운의 앵글은 그렇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누구나 슬로운에 대해 좋은 감정들을 가지게 된다. 나 또한 그에 대한 뭉클함과 동경 등 좋은 감정들로 마음이 충만했지만,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몇 번씩이나 영화를 돌려보고, 여러 번 공청회 장면에 이상하게 마음을 빼앗기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슬로운이 멋있는 이유는,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각주]
[1] 카메라의 위치를 고정한 채 줌 렌즈의 초점 거리를 변화시켜 촬영물에 접근하여 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촬영하는 기법.
[2] 화면 안에 한 명이 나오는 숏.
[3] 카메라를 기울여 촬영한 앵글. 불안한 심리나 위기상황을 표현할 때 효과적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