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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매거진 Aug 19. 2020

우리 생각; '여자들'이 좋아하는 맛?

'남의 시선'으로부터의 해방



'여자들'이 좋아하는 맛?




 요식업 전문가 B 씨는 방송에 나와서 맛 표현을 할 때 자주 이런 말을 한다. “딱 여자들이 좋아하는 맛.”


▲ [출처: sbs]

 

 주로 그 대상이 되는 음식은 몇 가지로 특정된다. 첫 번째로 크림파스타, 크림소스 떡볶이, 로제 파스타, 크림커리, 크림치즈 붕어빵 등 크림이나 치즈 등 하얗고 느끼한 재료가 들어간 종류가 있고, 두 번째, 매운 닭발, 매운 떡볶이 등 맵고 자극적인 -그러나 매운탕이나 김치찌개처럼 얼큰해서는 안 된다- 종류, 마지막으로 마카롱, 먹기 힘들어 보이는 케이크, 이름이 어려운 디저트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장식이 잘 된 음식 등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달콤한 맛의,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음식이 있다. 이외에도 많이 있겠지만 그래봤자 우리가 실제로 선호하는 음식보다 훨씬 국한된 범위의 음식들만이 여자가 선호하는 음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탕, 국, 찌개 같은 얼큰하고 땀을 흘리는 음식 혹은 자극적이지 않고 달콤한 맛이 별로 없는 향토음식, 냄새가 좀 특이하거나(홍어, 청국장) 모양이 이상한 음식(곱창, 순대 내장, 알탕), 아니면 예쁘게 먹기 힘든 음식(뼈 해장국) 등에 ^여자들이 좋아한다^라는 평가는 절대 붙지 않는다.


 수많은 음식 중에 단 몇 가지 분류로 여성의 입맛을 정의한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고 우습다. 맛에 대한 선호도가 성별에 따라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학적인 근거를 대지 않아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금방 알 수 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은 개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자주 먹는 음식과 아예 시도하지 않는 음식도 각자 다 다르다. 또한, 같은 집밥을 먹고 자란 식구들끼리도 입맛이 달라서 외식 메뉴를 정하기 힘들다. 세대, 나이, 환경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아는 사실은 개개인의 입맛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제각각인 여성들이 특정한 몇 가지의 음식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이 성차별적인 억측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들을 수 있는 팩트가 된 이유가 뭘까.


 ‘여자들은 언제나 예쁘고 착하고 섬세하고 부드러워야 한다.’라는 시선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만연하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도 여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고춧가루가 이빨에 낄지도 모르는 국밥이 아닌 포크로 돌돌 말아 입에 쏙 넣을 수 있거나 우아하게 잘라먹을 수 있는 파스타를 고른다.


  

 여성이 선택한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무엇이 그렇게 선택하게 했냐는 것이다. 피부 화장이 땀에 지워지면 꼴사나우니까. 뜨거운 국을 먹다가 입술 색이 없어지면 창피하니까. 많이 먹으면 배가 나오니까. 같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이유’로 여성들은 진짜 선호하는 음식이 아닌 선호되는 메뉴를 선택한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선호도를 남의 시선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남의 시선’이 여성의 선호도를 정해 놓은 것이다.


 또 비슷한 맥락으로, 이는 어떤 기대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다. ‘여자가 뭘 좋아한다더라’, 는 곧 ‘여자는 뭘 좋아해야 좋다.’는 사람들의 기대가 동반한다.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는 분홍색 운동화와 공주 인형을, 남자아이는 하늘색 가방과 로봇 장난감을 사주는 이유는 다 어른들의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자아이는 예쁘게 자라고 남자아이는 씩씩하게 자랐으면 하는 어른들의 기대. 여자아이가 공룡 그림책을 사달라고 했을 때 부모가 선뜻 내키지 않아 하는 이유는 이미 부모의 마음속에 기대하고 있는 딸의 모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이는 마찬가지다. 달리 딸에게만 우리는 기대를 건다. 자기 부모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부모와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에게 딸은 강요받는다. 아들이야 뭘 먹든 잘 먹고 튼튼하게만 자라면 되지. 딸은 몸매 관리도 해야 하니까, 어디 가서 칠칠맞게 흘리고 먹으면 흉보니까, 게걸스럽게 먹으면 안 되니까. 같은 말들을 앞세워 내 딸에게 거는 기대가 이젠 ‘하지 마라’는 강요로 바뀌어 간다.


 ‘여자는 크림파스타를 좋아한다더라.’라는 말의 숨은 뜻은 ‘여자는 (게걸스럽게 밥을 먹지 않고 예쁜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며 남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내가 기대하기 때문에) 크림파스타를 좋아한다더라.’다. 여자의 선호도를 이야기하면서 주체를 여자가 아닌 타인으로 설정하지만 이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여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주체가 여성이 아닌 경우는 꽤 많다. 음식뿐만 아니라 여성의 행동, 말, 습관, 태도 여성이 보여주는 모든 모습에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집어넣고 그게 꼭 여성이 스스로 원하거나 좋아하는 것처럼 단정 지어 버린다. 그리고 이런 결과가 기득권층의 입을 통해 쌓이면 그것은 곧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공공연한 사실이 된다. 크림파스타를 좋아하는 여성을 보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여자라서, 저렇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맛의 음식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멋대로 생각해 버리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의 모습은 아주 편협하고 단편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그야말로 ‘캐릭터’다. 다른 사람들처럼 여성은 무언갈 정의하고 선택할 수 있는 ‘플레이어’지 누군가가 설정해 놓고 조정당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코르셋을 하나씩 벗어가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정말로 내가 뭘 좋아하고 원하는지 그동안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굳게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나의 모습 중 하나였다. 아직도 나는 진짜로 나의 선호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가끔은 페미니즘과 그것을 비교하며 무엇이 옳은지 고민한다. 여성들에게 이러한 고민이 더는 생기지 않길 바란다. 나의 선호에 대해 어떤 시선도 고려하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남의 시선’으로부터의 해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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